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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요동벌의 한 울음 - 6. 사해동포지만 무엇이 우릴 나누나 본문

책/한문(漢文)

요동벌의 한 울음 - 6. 사해동포지만 무엇이 우릴 나누나

건방진방랑자 2020. 4. 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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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해동포지만 무엇이 우릴 나누나

 

 

중간에 인용된 이덕무의 글은 서해여언西海旅言이란 기행문에서 따온 것이다. 전문은 너무 길어 실을 수가 없고, 일부분만 읽어 보기로 한다.

 

사봉沙峰의 꼭대기에 우뚝 서서 서쪽으로 큰 바다를 바라보니, 바다 뒷 편은 아마득하여 그 끝이 보이지 않는데, 용과 악어가 파도를 뿜어 하늘과 맞닿은 곳을 알지 못하겠다. 한 뜨락 가운데다 울타리로 경계를 지어, 울타리 가에서 서로 바라보는 것을 이웃이라 부른다. 이제 나는 두 사람과 함께 이편 언덕에 서 있고, 중국 등주登州와 내주萊州의 사람은 저편 언덕에 서 있으니, 서로 바라보아 말을 할 수도 있으되, 하나의 바다가 넘실거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니, 이웃 사람의 얼굴을 서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귀로 듣지 못하고 눈으로 보지 못하며 발로 이르지 못하는 곳이라 해도, 오직 마음이 내달리는 바는 아무리 멀어도 다다르지 못할 곳이 없다. 이편에서는 이미 저편이 있는 줄을 알고, 저편 또한 이편이 있는 줄을 알진대, 바다는 오히려 하나의 울타리일 뿐이니, 보고 또 듣는다고 말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령 무언가를 붙잡고서 흔들흔들 구만리 상공에 올라가 이편 언덕과 저편 언덕을 한눈에 다 본다면 한 집안 사람일 뿐일 터이니, 또한 어찌 일찍이 울타리로 막혀있는 이웃이라 말하겠는가?

卓立沙頂, 西望大海, 海背穹然, 不見其涘. 龍鼉噴濤, 襯天無縫. 一庭之中, 限之以籬. 籬頭相望, 互謂之隣. 今余與二生, 立于此岸, 登萊之人, 立于彼岸, 可相望而語然, 一海盈盈, 莫睹莫聆, 隣人之面, 不相知也. 耳之所不聞, 目之所不見, 足之所不到, 惟心之所馳, 無遠不屆. 此旣知有彼岸, 彼又知有此岸, 海猶一籬耳, 謂之睹且聆焉, 可也. 然假令搏扶搖而上九萬里, 此岸彼岸, 一擧目而盡焉, 則一家人耳, 亦何嘗論隔籬之隣哉?

 

높이 올라 멀리를 바라보니, 더더욱 내가 잗단 존재임을 깨달아 아마득히 근심이 일어, 스스로를 슬퍼할 겨를도 없이 저 섬에 사는 사람들을 슬퍼하였다. 가령 탄환만한 작은 섬에 기근이 해마다 들고, 바람과 파도가 하늘과 맞닿아 진대賑貸하는 곡식조차 통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해구海寇가 몰래 쳐들어 와 바람을 타고 돛을 올려도 달아나 숨을 땅이 없어 전부 도륙을 당하게 되면 어찌 한다지? 용과 고래, 악어와 이무기가 뭍을 에워 알을 낳고서 사나운 이빨과 독한 꼬리로 사탕수수처럼 사람을 짓씹어 먹는다면 어찌 하지? 해신海神이 크게 성을 내어 파도가 솟구쳐서 마을 집을 덮쳐 버려 남김없이 쓸어가 버리면 어떻게 하나? 바닷물이 멀리로 옮겨가 하루아침에 물길이 끊어져 외로운 뿌리가 우뚝 솟아 아마득히 바닥을 드러낸다면 어찌 하나? 파도가 섬의 밑둥을 갉아 먹어 오래도록 물에 잠겨 흙과 돌이 견디지 못하고 물결을 따라 무너져 버리면 어떻게 할까?

登高望遠, 益覺渺小. 莽然生愁, 不暇自悲, 而悲彼島人, 假令彈丸小地, 饑饉頻年, 風濤黏天, 不通賑貸, 當奈何? 海寇竊發, 便風擧帆, 逃遁無地, 盡被屠戮, 當奈何? 龍鯨鼉蜃, 緣陸而卵, 惡齒毒尾, 噉人如蔗, 當奈何? 海神赫怒, 波濤盪溢, 渰覆村閭, 一滌無遺, 當奈何? 海水遠移, 一朝斷流, 孤根高峙, 嶷然見底, 當奈何? 波嚙島根, 潏汨旣久, 土石難支, 隨流而圯, 當奈何?

 

객이 말하였다.

섬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대가 먼저 위태롭게 여기네 그려.”

바람에 부딪치자 산이 장차 옮겨가려 하는지라, 나는 이에 내려와 평지에 서서 소요하다가 돌아왔다. 내가 동쪽으로 불태산佛胎山과 장산長山 등 여러 바다에 둘러싸인 산을 바라보다가 탄식하며 말하였다.

이것은 바다 속의 흙일세 그려.”

객이 말하였다.

무슨 말인가?”

자네 시험삼아 도랑을 파보게. 그 흙이 언덕처럼 쌓이겠지. 하늘이 큰 물길을 열면서 찌꺼기를 모은 것이 산이 된 것일세.”

그리고는 두 사람과 함께 뒤쫓아온 막사로 들어가 큰 술잔 하나를 내와 바다에서 노닐던 가슴을 축이었다.

客曰: “島人無恙, 而子先危矣.” 風之觸矣, 山將移矣, 余迺下立平地, 逍遙而歸. 余東望佛胎長山, 諸環海之山, 而歎曰: “此海中之土也.” 客曰: “奚爲也?” “子試穿渠, 其土如阜, 天開巨浸, 拓滓成山.” 仍與二生, 入追捕之幕, 進一大白, 澆海遊之胸.

금사산은 황해도 장연 땅 장산곶의 백사장을 말하니, 바람이 실어온 금모래가 산을 이룬 곳이다. 바람에 따라 산의 모습은 백변百變의 장관을 연출한다. 툭 터진 시야로 서해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육지의 산들은 바다 속의 흙일뿐이다. 모래산 위에 올라 가없는 바다를 바라보다 이덕무가 뜬금없이 던지는 말이다. 태청허공太淸虛空에 날아올라서 본다면, 저 바다란 것도 한 국자의 물에 불과하고, 산이란 것은 개미집이나 한줌 흙더미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 이켠 언덕에서 저켠 언덕을 바라보면 바닷물이 막히어 서로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알래야 알 수도 없지만, 높은 하늘에서 바라본다면 중국이니 조선이니 하는 울타리는 아무 의미가 없고 기실은 한 집안 사람일 뿐이다. 말 그대로 사해동포四海同胞인 것이다. 그러니 중국이니 조선으로 가르고, 노론老論과 남인南人으로 싸우며, 또 양반과 서얼로 울타리를 세우는 분별은 얼마나 허망한 것이냐. 그런 울타리 없는 세상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오직 마음 속으로만 다다를 수 있는 그런 곳이란 말인가? 그리하여 한층 거나해진 흥취를 못 이겨, 숙소로 돌아와서도 그들은 큰 사발에다 술을 듬뿍 따라서 답답했던 가슴을 축였던 것이다.

 

 

 

 

인용

목차

작가 이력 및 작품

눈물 시리즈는 준규식 호곡장론

이중섭미술관은 한바탕 울만한 곳이다

1. 드넓은 자연에 대비되는 하찮은 존재

2. 슬퍼야만 눈물 나나?

3. 한바탕 울만한 곳

4. 울고 싶어라

5. 너른 바다를 보며 하찮은 자신을 깨닫다

6. 사해동포지만 무엇이 우릴 나누나

7. 존재의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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