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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요동벌의 한 울음 - 3. 한바탕 울만한 곳 본문

책/한문(漢文)

요동벌의 한 울음 - 3. 한바탕 울만한 곳

건방진방랑자 2020. 4. 4.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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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바탕 울만한 곳

 

 

사람의 정이란 것이 일찍이 이러한 지극한 경지는 겪어보지 못하고서, 교묘히 칠정을 늘어놓고는 슬픔에다 울음을 안배하였다네. 그래서 죽어 초상을 치를 때나 비로소 억지로 목청을 쥐어짜 아이고등의 말을 부르짖곤 하지. 그러나 진정으로 칠정이 느끼는 바 지극하고 참된 소리는 참고 눌러 하늘과 땅 사이에 쌓이고 막혀서 감히 펼치지 못하게 되네. 저 가생賈生이란 자는 그 울 곳을 얻지 못해 참고 참다 견디지 못해 갑자기 선실宣室을 향하여 큰 소리로 길게 외치니, 어찌 사람들이 놀라 괴이히 여기지 않을 수 있었겠소[각주:1].

人生情會, 未嘗經此極至之處, 而巧排七情, 配哀以哭. 由是死喪之際, 始乃勉强叫喚喉苦等字. 而眞個七情所感, 至聲眞音, 按住忍抑, 蘊鬱於天地之間, 而莫之敢宣也. 彼賈生者, 未得其場, 忍住不耐, 忽向宣室一聲長號, 安得無致人驚怪哉?

한나라 때 가의賈誼는 젊은 그의 능력을 시기한 신하들의 모함으로 뜻을 펴보지 못한 채 쫓겨나 실의의 나날을 보냈다. 뒤늦게 다시 임금의 부름을 받은 그는 그간 그 낙담의 시간 속에서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말들을 마치 포효하며 울부짖듯 거침없이 토해내었다. 그때 그의 목소리는 마치 금석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지성진음至聲眞音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뜻하지 않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모두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으리라.

, 여보게 정진사! 비좁은 조선 땅에서 숨 막히듯 답답하게만 살다가 이 드넓은 요동벌로 통쾌하게 나서려니, 나는 그만 한바탕 목을 놓아 울고만 싶네 그려. 마치 그 옛날 가의賈誼의 그 통곡처럼 나도 내 폐부 깊은 곳에서 주체할 수 없이 터져 나오는, 금석이 광광 울리는 듯한 그런 울음을 울고 싶네 그려.

 

 

정진사가 말했다.

이제 이 울음터가 넓기가 저와 같으니, 나 또한 마땅히 그대를 좇아 한 번 크게 울려 하나, 우는 까닭을 칠정이 느끼는 바에서 구한다면 어디에 속할지 모르겠구려.”

내가 말했다.

갓난아기에게 물어 보시게. 갓난아기가 갓 태어나 느끼는 바가 무슨 정인가를 말이오. 처음에는 해와 달을 보고, 그 다음엔 부모를 보며, 친척들이 앞에 가득하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오. 이같이 기쁘고 즐거운 일은 늙도록 다시는 없을 터이니 슬퍼하거나 성낼 까닭은 없고 그 정은 마땅히 즐거워 웃어야 할 터인데도 분노와 한스러움이 가슴 속에 미어터지는 듯 한다오. 이를 두고 장차 사람이란 거룩하거나 어리석거나 간에 한결같이 죽게 마련이고, 그 중간에는 남을 허물하며 온갖 근심 속에 살아가는지라 갓난아기가 그 태어난 것을 후회하여 먼저 스스로를 조상하여 곡하는 것이라고들 말한단 말이지. 그러나 이는 갓난아기의 본 마음이 절대로 아닐 것일세.

鄭曰: “今此哭場, 如彼其廣, 吾亦當從君一慟, 未知所哭. 求之七情所感, 何居?” 余曰: “問之赤子. 赤子初生, 所感何情? 初見日月, 次見父母, 親戚滿前, 莫不歡悅. 如此喜樂, 至老無雙, 理無哀怒, 情應樂笑, 乃反無限啼叫, 忿恨弸中. 將謂人生神聖愚凡, 一例崩殂, 中間尤咎, 患憂百端, 兒悔其生, 先自哭弔. 此大非赤子本情.

정진사는 되묻는다. 자네의 말이 그와 같으니, 나도 자네와 함께 한바탕 시원스런 울음을 터뜨려 보게 싶네. 그러나 나는 아직 모르겠네. 자네의 울음은 그간의 협소한 나를 돌아보는 연민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농조득탈籠鳥得脫의 통쾌함에서 나온 것인가? 기쁨에서인가? 그도 아니면 분노에서이던가?

자네, 저 갓난아이에게 물어 보게. 저가 갓 태어나 고고한 울음을 터뜨릴 때, 그의 심정이 어떠한가를 말일세. 사람들은 곧잘 이렇게 말하곤 하지. 아이가 갓 태어나 울음을 터뜨리는 것은 그가 앞으로 지고 가야할 인생의 고통을 생각할 때에 하도 기가 막혀서 우는 것이라고 말일세.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눈물 시리즈는 준규식 호곡장론

이중섭미술관은 한바탕 울만한 곳이다

1. 드넓은 자연에 대비되는 하찮은 존재

2. 슬퍼야만 눈물 나나?

3. 한바탕 울만한 곳

4. 울고 싶어라

5. 너른 바다를 보며 하찮은 자신을 깨닫다

6. 사해동포지만 무엇이 우릴 나누나

7. 존재의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이어라

 

  1. 漢나라 때 賈誼가 文帝에게 올린 「治安策」에 당시 천하의 형세를 이야기 하며, “可爲痛哭者一, 可爲流涕者二, 可爲長太息者六”이라 한 것을 빚대어 한 말. 宣室은 未央殿 앞에 있던 天子의 正室로 文帝가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다 賈誼에게 귀신의 일에 대해 물어 본 일이 있다. 賈誼는 유능하였으나 다른 신하들의 시기로 長沙王의 太傅로 쫓겨나 있다가 포부를 펴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울울하게 죽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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