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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요동벌의 한 울음 - 4. 울고 싶어라 본문

책/한문(漢文)

요동벌의 한 울음 - 4. 울고 싶어라

건방진방랑자 2020. 4. 4.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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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울고 싶어라

 

 

아이가 태속에 있을 때는 캄캄하고 막힌 데다 에워싸여 답답하다가, 하루아침에 넓은 곳으로 빠져 나와 손과 발을 주욱 펼 수 있고 마음이 시원스레 환하게 되니 어찌 참된 소리로 정을 다해서 한바탕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있겠소? 그런 까닭에 마땅히 어린아이를 본받아야만 소리에 거짓으로 짓는 것이 없게 될 것일세. 금강산 비로봉 꼭대기에 올라 동해를 바라보는 것이 한 바탕 울만한 곳이 될 만하고, 황해도 장연長淵의 금사산金沙山이 한 바탕 울만한 곳이 될 만하오. 이제 요동벌에 임하매, 여기서부터 산해관山海關까지 일천 이백 리 길에 사방에는 모두 한 점의 산도 없어 하늘가와 땅 끝은 마치 아교풀로 붙이고 실로 꿰매 놓은 것만 같아 해묵은 비와 지금 구름이 다만 창창할 뿐이니 한 바탕 울만한 곳이 될 만하오.”

兒胞居胎處, 蒙冥沌塞, 纏糾逼窄, 一朝迸出寥廓, 展手伸脚, 心意空闊, 如何不發出眞聲盡情一洩哉? 故當法嬰兒, 聲無假做. 登毗盧絶頂, 望見東海, 可作一場, 行長淵金沙, 可作一場. 今臨遼野, 自此至山海關一千二百里, 四面都無一點山. 乾端坤倪, 如黏膠線縫, 古雨今雲, 只是蒼蒼, 可作一場.”

그러나 자네 한번 생각해 보게. 태중에서 손과 발을 마음껏 펴 볼 수도 없고, 광명한 세상을 바라다 볼 수도 없이 답답하게 열 달을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환한 빛줄기가 쏟아져 들어오고, 손과 발에 더 이상 아무 걸리는 것이 없음을 깨달았을 때, 갓난아기가 느꼈을 통쾌함을 말일세. 그 통쾌함이 한꺼번에 소리가 되어 터져 나온 것이 바로 그 울음일 것이네.

갑갑한 조선 땅에서 나는 지난 몇 십년을 답답하게 살아왔네. 色目으로 갈리고 당파로 나뉘어 싸움질만 해대는 나라,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도 그저 제 한 몸의 보신保身과 영달에만 급급할 뿐인 벼슬아치들, 학문을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도리 아닌 출세를 위한 방편으로만 여기는 지식인들, 손발을 마음껏 펴볼 수도 없게 욱죄는 제도와 이념, 한치 앞을 내다 볼 수조차 없는 암담한 시계視界, 이런 것들에 둘러싸여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네. 그런데 이제 그 복닥대며 아웅다웅 하던 협소한 조선 땅을 벗어나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탁 트인 이 요동벌 앞에 서니, 나는 저 갓난아이의 통쾌한 울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이란 말일세.

이제 이곳부터 산해관까지 일천 이백 리의 길은 사방에 한 점 산도 없어, 보이느니 지평선뿐이요, 아득한 옛날의 그 비는 지금도 내리고, 그 구름이 지금도 창창히 떠가고 있지 않는가? 하늘가와 땅 끝은 마치 아교풀로 붙이고 실로 꿰매 놓은 것만 같을 것이란 말일세. 이 광막한 벌판을 지나며 나는 내 존재의 미약함과, 내 안목의 협소함과, 살아온 날들의 부끄러움을 울어볼 참일세. 새로운 문명 세계를 만나는 설레임과 어제의 나를 과감히 버리는 두근거림을 울어볼 참일세. 그 뼈저린 자각을 울어볼 참일세.

연암집에는 이 요동벌에서의 도저한 감회를 노래한 시 한수가 실려 있다.

 

遼野何時盡 一旬不見山

요동벌 그 언제나 끝이 나려나 열흘이나 산이라곤 뵈이질 않네.

曉星飛馬首 朝日出田間

새벽 별 말 머리로 날리더니만 아침 해 밭 사이서 떠올라오네.

 

제목은 요야효행遼野曉行이다. 열흘을 가도록 요동벌은 단지 지평선만을 보여줄 뿐이다. 가도 가도 도무지 끝이 보이지를 않는 것이다. 산 하나 보이지 않는 벌판, 크게 지르는 소리는 메아리만 남기고 지평선 끝으로 사라진다. 말 머리 위론 새벽 별이 떨어지고, 밭두둑 너머로 아침 해가 누리를 비추며 떠오른다. 物象의 모습이 그 햇빛에 하나 둘씩 제 모습을 드러낸다. ! 대지 위의 내 모습은 너무도 미소微小하구나.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눈물 시리즈는 준규식 호곡장론

이중섭미술관은 한바탕 울만한 곳이다

1. 드넓은 자연에 대비되는 하찮은 존재

2. 슬퍼야만 눈물 나나?

3. 한바탕 울만한 곳

4. 울고 싶어라

5. 너른 바다를 보며 하찮은 자신을 깨닫다

6. 사해동포지만 무엇이 우릴 나누나

7. 존재의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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