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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사, 성리학의 수입과 한국시의 정착 - 2. 한국시의 정착, 1) 이제현과 이곡의 관풍의식(이곡)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사, 성리학의 수입과 한국시의 정착 - 2. 한국시의 정착, 1) 이제현과 이곡의 관풍의식(이곡)

건방진방랑자 2021. 12. 2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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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곡(李穀, 1298 충렬왕24~1351 충정왕3, 仲父, 稼亭)은 초명(初名)이 예백(藝白)이며 이색(李穡)의 아버지다. 그의 가계(家系)는 한산(韓山)의 향리층(鄕吏層)이었으며 이곡(李穀)의 부자대(父子代)에 이르러 중앙에 진출하게 되었다. 충숙왕(忠肅王) 때에 등제(登第)하여 예문검열(藝文檢閱)로 있다가 원()의 제과(制科)에 합격하여 그곳에서 한림국사원검열(翰林國史院檢閱)까지 지냈으며 그 뒤에도 원()과의 왕래가 자주 있었다.

 

그의 문학에 대해서는 고려사(高麗史)與中朝文士, 交遊講劘辭嚴義興, 典雅高古, 不敢以外國人視也.’라 한 것으로 보아 중국에까지 그 이름을 떨쳤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시는 시문집(詩文集)가정집(稼亭集)에 전하는 것 외에도 동문선(東文選)등 선발책자(選拔冊子)30여편이 수록되고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도중피우유감(途中避雨有感)(七絶), 설야소작(雪夜小酌)(五律), 칠석소작(七夕小酌)(七律), 정조설(正朝雪)(七律), 원정숭천문하(元正崇天門下)(七律), 수도한강(水渡漢江)(七律) 등 수작(秀作)이 많으나 재원(在元) 시절에 쓴 것이 대부분이다.

 

도중피우유감(途中避雨有感)은 다음과 같다.

 

甲第當街蔭綠槐 길 가에 덩실한 집 푸른 회나무에 덮였는데
高門應爲子孫開 높은 문은 응당 자손 위해 열렸겠지.
年來易主無車馬 근년(近年)에 주인이 바뀌어 찾아드는 거마(車馬)도 없는데
惟有行人避雨來 지나가는 나그네만 비를 피하고 있구나.

 

변전(變轉)을 거듭하던 려말(麗末)의 정국(政局)을 직절(直截)하게 고발하고 있지만 사어(辭語)가 근엄(謹嚴)하여 품위를 돋보이게 한다. 앞에서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그는 문풍(文風)이 떨치지 못하고 있는 당시의 현실을 개탄한 바 있거니와 그에게 있어서의 문풍(文風)은 곧 교화 또는 풍교(風敎)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시작(詩作)에 있어서도 이러한 관풍(觀風)의 의지가 그의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음을 본다.

 

 

 

 

인용

목차 / 略史

우리 한시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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