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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사, 성리학의 수입과 한국시의 정착 - 2. 한국시의 정착, 2) 최해의 곤돈과 정포의 유려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사, 성리학의 수입과 한국시의 정착 - 2. 한국시의 정착, 2) 최해의 곤돈과 정포의 유려

건방진방랑자 2021. 12. 20.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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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최해(崔瀣)의 곤돈(困頓)과 정포(鄭誧)의 유려(流麗)

 

최해(崔瀣,1287 충렬왕13~1340 충혜왕복위1, 彦明父壽翁, 拙翁. 猊山農隱)이제현(李齊賢)과 동시대의 문인이다. 등제후(登第後) 충숙왕(忠肅王) 때 원()에 들어가 그곳 제과(制科)에 합격하여 개주판관(盖州判官)을 지내고 환국(還國)하여 벼슬이 대사성(大司成)에서 그쳤다. 그는 재기지고(才奇志高)하여 독서와 문사(文辭)에 있어서 사우(師友)의 지도에 힘입지 않고 자득(自得)하였다고 하며 방탕감언(放蕩敢言)하고 권귀(權貴)에게 아첨하기 싫어하여 크게 쓰이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 초기의 선발책자(選拔冊子)동인지문(東人之文)을 편찬했으며 시선집(詩選集) 삼한시귀감(三韓詩龜鑑)을 비주(批注)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동인지문(東人之文)은 사륙(四六)과 오칠(五七)의 잔권(殘卷)만이 전하고 있어 전편의 규모를 알 수 없으나 그의 문집 졸고천백(拙藁千百)동인지문(東人之文)의 서문이 있어 그 개략을 알게 해준다. 현재까지 전하고 있는 그의 시작(詩作)30여수에 이르고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현재설야(縣齋雪夜)(七絶)사호귀한(四皓歸漢)(七絶)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현재설야(縣齋雪夜)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三年竄逐病相仍 3년 동안 쫓겨난 몸 병이 또 따르니
一室生涯轉似僧 일실(一室)에 갇힌 생애 절로 중[]과 같구나.
雪滿四山人不到 왼 산에 눈이 쌓여 사람은 오지 않는데
海濤聲裏坐挑燈 파도 소리 들으며 앉아서 등을 돋운다.

 

다른 시작(詩作)에서도 그러하거니와 이 작품은 특히 서거정(徐居正), 동인시화(東人詩話)권상 19을 보면 곤돈(困頓)한 그의 기상(氣象)을 한 눈으로 읽게 한다.

 

 

정포(鄭誧, 1309 충선왕1~1345 충목왕1, 仲孚, 雪谷)최해(崔瀣)의 문인(文人)이며 추()의 아버지다.

 

그는 소년등제(少年登第)하여 충숙왕(忠肅王)의 사랑을 받았으며 벼슬은 충혜왕(忠惠王) 때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에서 그쳤다. 뒤에 원()에 들어갔다가 승상별가보화(丞相別哥普化)의 사랑을 입어 원제(元帝)에게 천거하려 할 때 그곳에서 병졸(病卒)했다.

 

그는 타고난 시재(詩才)가 있어 고려사(高麗史)』 「정해(鄭瑎)에서는 시어가 간략하고 예스러우며 필적 또한 오묘하다[詩詞簡古, 筆蹟亦妙].’라 하였으며 이색(李穡)설곡시고서(雪谷詩藳序)에서는 설곡의 시는 맑지만 쓰지 않고 곱지만 음탕하지 않아 말의 기운이 우아하고 깊지만 도교의 풍속을 즐기지 않았다[雪谷之詩, 淸而不苦, 麗而不淫, 辭氣雅遠, 不肯道俗].’이라 하였다. 남용익(南龍翼)도 그의 기아(箕雅)서문에서 유려한 시어를 구사하는 이라면 정사간과 진한림과 정설곡과 …… 정원재라 할 것이다[流麗則, 鄭司諫陳翰林鄭雪谷鄭圓齋]’라 하여 그의 아들 추()도 아버지와 시풍(詩風)을 같이 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현전하는 정포(鄭誧)의 시작(詩作)30여편에 이르고 있으나 특히 유려(流麗)한 그의 시편(詩篇)은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된 것이 많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양주객관별정인(梁州客館別情人)(七絶)을 비롯하여 강구(江口)(五絶), 서강잡흥(西江雜興)(七絶), 중구(重九)(五律), 증이천각달존(贈李天覺達尊)(七律) 등이 모두 명작이다.

 

五更燈影照殘粧 오경(五更)의 등촉(燈燭)이 지워진 화장을 비추는데
欲語別離先斷腸 이별을 말하려 하니 애간장을 끊는구나.
落月半庭推戶出 달이 진 뜨락에 내려 문을 열고 나와 보니
杏花疎影滿衣裳 살구나무 성긴 그림자 옷자락에 가득 차네.

 

위의 양주객관별정인(梁州客館別情人)정포(鄭誧)의 맑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정인(情人)과의 이별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내연(內燃)으로 승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인용

목차 / 略史

우리 한시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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