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평판보다 스스로 만족하는 글을 쓸 줄 알며 스스로를 잘 아는 사람이길 바라며
자지암기(自知菴記)
이천보(李天輔)
人之患, 不在於不知人, 而在於不知己. 惟其不知己, 故人譽之而以爲喜, 人毁之而以爲慽. 夫天下之色, 吾視以吾目, 而不借人之目; 天下之聲, 吾聽以吾耳, 而不借人之耳. 今乃閉吾之目, 而求人之視; 掩吾之耳, 而求人之聽, 是豈理也哉? 聲與色, 自外而至者也, 然吾之所以視聽之者, 其權在吾而不在人, 况吾不能知吾, 而僕僕然仰人之齒牙, 得不病乎?
是以, 古之君子, 獨立不屈, 紛然爲取於人, 而無所加益; 脫然爲棄於人, 而無所加損者, 其自知甚明, 吾之爲吾者, 一也.
吾友杞溪兪泰仲, 少而有奇志, 耻與今之人相俯仰, 一朝廢擧, 隱居海濱. 人有問其故者, 泰仲輒笑而不言, 而名其室曰自知. 嗟乎! 若泰仲者, 可謂信於己, 而不求於人者也. 夫得於天者, 失於人; 合於古者, 乖於今, 泰仲惟自知其己而已, 無怪乎人之不知之也.
或者曰: “泰仲喜著書, 其書累萬言, 後之人庸詎無讀其書而知其人者乎?” 余曰: “揚子雲作太玄, 以俟後之子雲, 余嘗謂使玄藏之名山, 列之學官, 不足爲玄之榮; 焚之毁之, 而不足爲玄之辱. 且子雲, 卽子雲也, 何有於後之子雲哉? 然則泰仲旣自知之矣, 其書之傳不傳, 又何必爲泰仲道也?”
以此爲其菴記 『晉菴集』 卷之六
▲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해석
人之患, 不在於不知人, 而在於不知己.
사람의 근심은 남을 알지 못하는 데 있지 않고 자기를 알지 못하는 데 있다.
惟其不知己, 故人譽之而以爲喜,
오직 자기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남이 나를 칭찬함을 기쁘게 여기고
人毁之而以爲慽.
남이 나를 헐뜯음을 근심으로 여긴다.
夫天下之色, 吾視以吾目, 而不借人之目;
대체로 천하의 색은 내가 나의 눈으로 보지 남의 눈을 빌리지 않고
天下之聲, 吾聽以吾耳, 而不借人之耳.
천하의 소리는 내가 나의 귀로 듣지 남의 귀를 빌리지 않는다.
今乃閉吾之目, 而求人之視;
이제 이에 나의 눈을 감고 남의 봄을 구하고
掩吾之耳, 而求人之聽, 是豈理也哉?
나의 귀는 닫고서 남의 들음을 구한다면 이것이 어찌 이치이겠는가?
聲與色, 自外而至者也,
소리와 색은 밖으로부터 이른 것이지만
然吾之所以視聽之者, 其權在吾而不在人,
내가 보고 들은 것은 그 권한이 나에게 있지 남에게 있지 않은데
况吾不能知吾, 而僕僕然仰人之齒牙,
게다가 내가 나를 알 수 없음에도 번거롭게【복복(僕僕): 1.형용이 번쇄하고 자꾸하는 모양이다[形容煩瑣. 屢屢之意]. 2. 분주하게 애쓰는 모양이다[奔走勞頓貌].】 남의 구술(口述)만을 우러러 보니
得不病乎?
병이 아닐 수 있겠는가?
是以, 古之君子, 獨立不屈,
이런 이유로 옛적의 군자는 홀로 서서 굽히지 않아
紛然爲取於人, 而無所加益;
어지러이 남에게 취해져도(인용되어도) 더 보탤 게 없었고
脫然爲棄於人, 而無所加損者,
씻은 듯이 남에게 버려져도 더 덜어낼 게 없었던 것은
其自知甚明, 吾之爲吾者, 一也.
스스로 앎이 매우 분명하여 내가 나됨을 한결 같이 했기 때문이다.
吾友杞溪兪泰仲, 少而有奇志,
나의 벗 본관이 기계 사람인 유태중은 젊어서 기특한 뜻이 있어
耻與今之人相俯仰,
지금 사람들과 서로 굽어보고 우러러 봄(사귐)을 부끄러워하여
一朝廢擧, 隱居海濱.
하루아침에 과거공부를 그만 두고 바닷가에 은거했다.
人有問其故者, 泰仲輒笑而不言,
사람 중 이유를 묻는 자가 있었지만 태중은 번번이 웃을 뿐 말하지 않았고
而名其室曰自知.
방을 ‘자지(自知)’라 이름 지었다.
嗟乎! 若泰仲者,
아! 태중과 같은 이는
可謂信於己, 而不求於人者也.
자기를 믿고 남에게 구하지 않은 사람이라 할 만하구나.
夫得於天者, 失於人;
대체로 선천적인 데서 얻은 사람은 인공적인 데서 잃고
合於古者, 乖於今,
옛 것에 합치된 이는 지금에 어긋나게 마련이지만
泰仲惟自知其己而已,
태중은 오직 스스로 자기를 알았을 뿐이기에
無怪乎人之不知之也.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或者曰: “泰仲喜著書, 其書累萬言,
어떤 이는 말했다. “태중은 기쁘게 글을 써서 글이 수만 마디가 되었는데
後之人庸詎無讀其書而知其人者乎?”
후대의 사람 중에 그 책을 읽고 그 사람을 알아줄 이가 어찌 없겠습니까?”
余曰: “揚子雲作『太玄』, 以俟後之子雲,
내가 말했다. “양자운이 『태현경』을 짓고서 후대의 자운을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余嘗謂使玄藏之名山, 列之學官,
제가 일찍이 생각하기로 『태현경』을 명산에 감추거나 학관에 나열되더라도
不足爲『玄』之榮;
『태현경』의 영예로움 되기에 부족하고
焚之毁之, 而不足爲玄之辱.
그것을 불태우거나 훼손시키더라도 『태현경』의 욕됨이 되기에 부족합니다.
且子雲, 卽子雲也, 何有於後之子雲哉?
또한 자운은 곧 자운이니 어찌 후대의 자운에게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然則泰仲旣自知之矣,
그러하다면 태중은 이미 스스로 이것들을 아니
其書之傳不傳, 又何必爲泰仲道也?”
책이 전해지느냐 전해지지 않느냐가 또한 하필 태중을 위한 도겠습니까?”
以此爲其菴記 『晉菴集』 卷之六
이 때문에 암기를 짓는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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