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Ori와 공부의 공통점
오리1과 2를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할애하여 마치고 나니 그동안 잠들어 있던 ‘게임 본능’이 마구 샘솟더라. 그래서 게임을 하며 도전정신을 느끼고 맘처럼 쉽게 되지 않는 상황에서 여러 번 도전한 끝에 이렇게 시원섭섭하게 마무리 지어본지도 정말 오랜만이고, 이것이야말로 게임이 인간에게 주는 열정이란 걸 알게 됐다.
▲ '오리' 동화적인 분위기에 재밌는 조작감까지 재밌는 게임이었다.
게임을 대하는 두 가지 방식
하지만 20대 이후론 이와 같은 도전적인 게임은 그다지 하지 않았었다. 고작 해본 게 GTA5나 툼레이더 리부트가 전부일 정도로 거의 손도 대지 않았고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러니 예전에 했던 ‘샤이닝포스2’나 ‘판타지스타4’나 ‘파이널판타지6’과 같은 피지컬은 요구하지 않고 시간만 요구하는 게임만 하게 됐던 것이다.
더욱이 2018년 임용시험이 끝난 후엔 ‘갤러리 오브 라비린스(폐허의 초상화)’를 도전해보기도 했지만 첫 번째 보스인 듀라한의 미친 패턴에 막혀 접어야 했으며 이 게임보다 훨씬 난이도가 올라간 ‘빼앗긴 각인’ 보통 몬스터의 어마무시한 공격력에 기가 죽어 조금 하다가 접는 수모를 감수해야 했다. 그만큼 피지컬을 요구하는 게임은 전혀 손도 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악마성'을 좋아하기에 호기심에 도전했다가 도중에 그만둔 두 게임.
이런 와중에 2019년 6월엔 ‘메트로바니아’라는 장르를 창조하며 악마성 원작자로 굳어진 이가라시 코지五十嵐孝司(いがらし こうじ)가 마지막 작품인 ‘빼앗긴 각인’을 출시한지 12년 만에 악마성 최신작인 ‘블러드 스테인드’를 출시했다. 물론 기존에 다녔던 코나미를 퇴직하고 독자적인 게임회사를 만들고 킥스타터 모금을 진행하여 두 번 발매 연기를 감행한 끝에 등장한 인고의 작품이다. 악마성이란 게임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당연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고 직접 사서 플레이를 할 시간은 없으니 유튜브를 통해 ‘마넘나 사태’를 우려하며 제발 잘 나왔기를 바라며 감상했다. 다행히도 게임은 ‘월하의 야상곡’이 생각날 정도로 잘 만들었더라.
예전부터 이런 류의 게임을 할 땐 마음을 졸이면서 했었고 나는 잘 못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이전작들을 두 개나 도전해봤지만 도중에 그만두게 됐던 것이다. 그런 영상을 보며 ‘엔딩크레딧’이란 사람이 하는 걸 보니 나와는 게임에 접근방식 자체가 다르더라. 그 사람은 ‘이런 류의 메트로바니아 게임은 앞으로 무엇이 나올까 걱정하며 한 걸음씩 내딛기보다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로 한 걸음씩 게임을 진행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래서 먼저 해본 사람들이 훈수를 둘라치면 “웬만하면 훈수는 두지 말아주세요. 제가 맵을 왔다 갔다 하며 하나씩 알아가볼게요.”라고 말을 했으니 말이다. 그 말대로 어떤 정보에도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해가며 맵을 밝혀나가기 시작했고 결국 끝판까지 마무리 지었다.
이 사람과 나와 게임을 대하는 관점 자체가 달랐다는 점이 중요하다. 나는 게임은 ‘빨리 끝내야 한다’, ‘정보를 최대한 수집하여 최상의 루트로 진행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반면에 이 사람은 ‘느긋히 해도 된다’, ‘정보에 의존하지 않고 나만의 길을 만들며 제작자가 심어놓은 갖가지 장치를 맘껏 느끼며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처럼 나는 게임 또한 하나의 과제처럼 무겁게 대하고 있었던 반면에 이 사람은 게임은 즐기기 위한 놀이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 '엔딩크레딧'의 블러드스테인드 방송은 게임에 대한 관점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조작이 어렵지만 도대체 무언지 알 수 없지만 그래서 재밌는 게임의 속성
그 영상을 보면서 위와 같은 게임을 대하는 두 가지 방식에 대해 알게 됐고 내가 지니고 있던 중압감의 실체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천천히 해도 된다’, ‘그저 한 걸음씩 지금의 상황을 즐기며 해나가면 된다’는 생각이 자리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이런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중도에 그만뒀던 ‘갤러리 오브 라비린스’나 ‘빼앗긴 각인’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고 모두 다 마지막을 깰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빼앗긴 각인’은 악랄하기로 유명한 ‘LV1’ 모두까지 마치는 쾌거를 거둘 수 있었다. 게임에 대한 접근 방식 자체가 달라지니, 게임에 대한 관점 자체가 달라지니 개발자가 곳곳에 마련해 놓은 기믹들이 플레이어를 괴롭히기 위해 마련한 것이 아닌, 적당한 도전정신을 북돋기 위해 고도로 계산하여 설치했다는 생각이 들며 플레이를 하는 재미가 느껴지더라.
바로 이런 생각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조작이 매우 어려워 보이던 ‘오리’를 봤을 때 ‘내가 과연 저런 고난이도 조작을 할 수 있을까?’ 의심을 하면서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저번 주 토요일부터 ‘오리2’를 시작하여 5일 만에 마무리 지을 수 있었고 ‘오리1’은 토요일부터 시작하여 2일 만에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고도의 피지컬을 요구하는데다가 탈출구간과 같이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구간까지 있는지라 죽기를 여러 번 반복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조작이 익숙해지고 긴장에 적응되며 결국은 깰 수 있었다. ‘오리1’의 최고의 탈출 장면은 ‘긴소 나무 탈출장면’이고 ‘오리2’의 최고의 탈출장면은 ‘샌드윔 탈출장면’으로 어렵게 어렵게 깼지만 다시 한 번 도전하고 싶을 정도로 높은 난이도만큼이나 성취감은 그 이상이다.
▲ 최고의 명장면이자 최고의 음악, 그리고 최고의 조작감까지 다시 하고 싶게 만드는 부분이다.
게임 특성과 공부 특성의 공통점
게임은 때론 ‘과연 내가 저걸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난이도 높은 상황이 주어지고 그걸 통과했을 때의 성취감이 들며 계속 할 수 있는 의미를 부여해주듯이, 공부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 나는 임용시험 공부를 하고 있는데 2018년에 7년 만에 한문공부를 다시 잡았을 땐 ‘오리’를 처음 시작할 때 막막하고 도대체 뭘 해야 하는지 몰랐을 때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하지만 게임에 대한 관념이 바뀐 후론 조금씩 즐기며 길은 헤맬지라도 시간을 들여가며 한 걸음씩 나아가듯이 한문공부에서도 겁만 내거나 ‘난 안 된다’며 스스로 금을 긋기보다 하나도 모르는 상황에서 하나라도 알게 되는 상황으로 나가는 걸 즐기며 공부하게 됐다. 또한 게임에선 하나하나 미션을 수행해가며 조금씩 강해지고 여러 기술을 사용하며 예전엔 갈 수 없던 곳도 쉽게 갈 수 있는 캐릭터를 보며 점차 용기를 낼 수 있었듯이 한문공부에서도 『소화시평』이나 『대학』, 『중용』 등의 책을 마무리 지으며 예전엔 미처 보이지 않던 문장의 패턴도 조금이나마 보이게 됐고 그에 따라 새로운 문장도 흥미롭게 볼 수 있게 됐다.
이처럼 게임과 한문공부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이번에 ‘오리’라는 게임을 하면서 그러한 공통점을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작년 임용은 아쉽게도 최종에서 떨어지는 비운을 경험해야 했다. 하지만 이 또한 한 번도 1차를 합격해본 적이 없는 나의 임용 시험 역사에서 그나마 한 걸음 나아간 상황이란 걸 정말 잘 알고 있다. ‘오리’라는 게임은 그런 무수한 실패를 반복한 끝에 한 걸음씩 나아가는 즐거움을 느끼게 했고 그러다 결국 동화 같은 마무리를 보여주며 아쉬움을 자아냈듯이 공부를 하는 이 순간에도 그런 정신은 무척이나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결과에 연연하기 이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나갈 일이고 실패를 두려워하기 이전에 무작정 도전해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주일간 함께 했던 ‘오리’라는 재미와 함께 의미까지 보태줬다는 부분에서 정말로 감사한 선물이다.
▲ 여명이 밝아 온다. 즐기면서 갈 뿐, 모르기에 할 뿐.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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