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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사전 - 313. 최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313. 최

건방진방랑자 2020. 6. 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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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

 

 

최가사훈(崔家司勳)

() 나라 때의 시인(詩人)으로 사훈원외랑(司勳員外郞)을 지냈던 최호(崔顥)를 가리킨다.

 

최갈고(催羯鼓)

당명황(唐明皇)이 갈고(羯鼓) 치기를 좋아하였는데 봄에 궁중에서 갈고를 두드리니 봉오리만 맺혔던 꽃이 활짝 피었다.

 

최고운(崔孤雲)

신라(新羅) 말엽의 유학자인 최치원(崔致遠)을 말한다. 고운은 그의 호이다.

 

최관국수(崔瓘之麵)

광해조에 이충이란 자는 잡채로써, 최관이란 자는 국수로써 광해군에게 때마다 진상하여 아부함으로써 높은 벼슬을 얻게되자 당시 사람들이 기롱하여 부른 말이다.

 

최귀(催歸)

자규(子規)의 일명(一名). 울음소리가 마치 불여귀(不如歸)라는 말처럼 들린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최귀를 글자로 풀이하면 돌아가기를 재촉한다는 뜻이 되므로 이렇게 인용한 것이다.

 

최기(崔琦)

후한(後漢) 사람으로 자는 자위(子瑋). 문장이 뛰어나 외척잠(外戚箴)ㆍ백곡부(白鵠賦) 등을 지었다. 후한서(後漢書)』 「최기전(崔琦傳)

 

최기옥루(催記玉樓)

() 나라 이하(李賀)에게 낮에 어떤 붉은 옷 입은 사람이 와서, “옥황상제가 백옥루(白玉樓)를 지었는데 당장 그대를 불러 기문을 지으려 한다.” 하더니, 이하가 곧 죽었다.

 

최노(崔盧)

최씨(崔氏)와 노씨(盧氏). 두 성씨가 다 육조(六朝) 시대부터 당()에 이르기까지의 망족(望族)이었음. 구당서(舊唐書)』 「두위전(竇威傳)

 

최대립(崔大立)

자는 수부(秀夫), 호는 창애(蒼厓) 또는 균담(筠潭). 역관이다. 시집 한 권이 전한다.

 

최대용(崔大容)

대용(大容)은 최유해(崔有海)의 자()이다.

 

최동고(崔東皐)

동고는 최립(崔岦)의 호이다.

 

최로화벌(崔盧華閥)

육조(六朝) 시대와 당() 나라 때에 최씨ㆍ노씨 두 성씨가 명문(名門)으로 일컬어진 데서 온 말이다.

 

최리(崔李)

당 나라 때의 시인인 최융(崔融)과 이교(李嶠)를 가리킨다.

 

최보순(崔甫淳)

고려때 사람. 벼슬은 판이부사(判吏部事)에 이르렀고 시호는 문정(文定)이다.

 

최북(崔北)

영조(英祖) 때의 화가(畫家). 자는 성기(聖器)ㆍ유용(有用), 호는 성재(星齋)ㆍ기암(箕庵)ㆍ거기재(居其齋)ㆍ삼기재(三奇齋)ㆍ호생관(毫生館), 본관은 무주(茂朱)인데, 그의 이름자인 북()자를 파자(破字)하여 최칠칠(崔七七)로 불렸다 한다. / 관련 글: 崔七七傳, 答崔北, 崔北, 崔北歌

 

최성지(崔聖止)

성지(聖止)는 최유연(崔有淵)의 자()이다.

 

최시우(催詩雨)

두보(杜甫)의 시에 조각 구름이 머리 위에 모여드니[片雲頭上黑] 알겠노라 비로 시를 재촉하려는 줄을[知是雨催詩]” 하였다.

 

최식(崔寔)

후한(後漢) 때 사람. 자는 자진(子眞). 환제(桓帝) 때 낭()이 되어 당시 시행하여야 될 수십 조를 적은 정론(政論)을 바쳤음.

 

최언명(崔彦明)

언명(彦明)은 최황(崔滉)의 자이다.

 

최융(崔融)

당 나라 문장가로 자는 안성(安城)이었는데, 문장이 뛰어나 봉각 사인(鳳閣舍人)으로 있으면서 조정의 중요한 문자를 모두 다루었다. 신당서(新唐書)이하전(李賀傳)ㆍ최융전(崔融傳)

 

최자겸(崔子謙)

자겸(子謙)은 최명길(崔鳴吉)의 자()이다.

 

최자적(崔子迪)

자적(子迪)은 최명길(崔鳴吉)의 동생 혜길(惠吉)의 자()이다.

 

최장(催粧)

장가 가는 것을 이른다. 몽화록(夢華錄)무릇 장가들 때에는 혼인 하루 앞서 신부에게 단장을 재촉하는 뜻으로 관피(冠帔)와 화분(花盆)을 보낸다.” 하였다. 그리고 당 나라 사람이 성혼하는 저녁에는 최장시가 있으므로 육창(陸敞)이 운안공주(雲安公主)를 위하여 최장시를 지었음.

 

최전(崔澱)

조선조 명종~선조 연간의 문인(文人). 율곡(栗谷)의 문인으로 시ㆍ서ㆍ화(詩書畵)에 모두 능했으며 저서로 양포유고(楊浦遺稿)가 있다.

 

최제수인(榱題數仞)

고대 광실(高臺廣室)의 뜻으로, 매우 사치스러운 생활을 비유한 말이다. 최제는 집 서까래머리라는 뜻으로 맹자(孟子)』 「진심(盡心)()의 높이가 두어 길이나 되고 서까래머리가 두어 자나 나오는 것을, 나는 뜻을 얻더라도 하지 않겠다[堂高數仞, 榱題數尺, 我得志弗爲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최졸옹(崔拙翁)

졸옹(拙翁)최해(崔瀣)의 호이다. 예산농은(猊山農隱)이라고도 한다.

 

최중령(崔中令)

최충(崔冲). 그는 현종(顯宗) 때로부터 문종(文宗) 때까지 문()ㆍ무()의 큰 공으로 중서문하성령(中書門下省令)이 되고, 아들 유선(惟善)이 중서령(中書令), 유길(惟吉)은 상서령(尙書令)이 되어, 왕이 베푸는 국로연(國老宴)에 두 아들이 아버지를 부액(扶掖)하고 참예하니, 희한한 성사(聖事)라 일렀다. 고려사(高麗史)』 「최충전(崔冲傳)

 

최최(崔崔)

산이 우뚝하게 높은 모양, 높고 큰 모양

 

최해(崔瀣)

경주인(慶州人)인데 자는 언명(彦明)이고 호는 졸옹(拙翁)이다. 고려 충숙왕(忠肅王) 8년에 원()의 제과(諸科)에 합격하여 개주 판관(蓋州判官)에 제수되었는데 병을 칭탁하고 본국으로 돌아와 검교성균대사성(檢校成均大司成)이 되었다. 이지현의 폐흥(廢興)의 전말을 기록한 비문을 지었음.

 

최해주(崔海州)

광해군 8년 해주 목사(海州牧使)로 있으면서 이른바 해주옥(海州獄)’을 다스렸던 최기(崔沂)를 말한다. 이때 이이첨(李爾瞻)의 일파인 박희일(朴希一)과 박이빈(朴以彬)을 무고죄로 처형하여 이이첨의 미움을 받은 나머지 남형죄(濫刑罪)로 투옥되어 고문을 받고 옥사(獄死)했으며, 뒤에 다시 대역죄(大逆罪)로 몰려 멸문(滅門)의 화를 당하면서 부관참시(剖棺斬屍)되었다.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최호(崔顥)

당 현종(唐玄宗) 때의 시인인데 일찍이 무창(武昌)의 황학루(黃鶴樓)에 올라가 지은 시가 이백(李白)의 극찬을 받은 일을 비롯하여 세상 사람들의 입에 회자됨으로써 등루시(登樓詩)의 명작으로 꼽힌다.

 

최호음청천(崔灝吟晴川)

당나라 시인(詩人) 최호(崔顥)가 황학루(黃鶴樓)에 올라서 지은 황학루(黃鶴樓)시에, “비 갠 강에 한양의 나무 역력하다[晴川歷歷漢陽樹].”라는 구가 있다.

 

최화과갈고(催花過羯鼓)

서방의 갈()이라는 부족(部族)이 치는 북이다. 그것이 중국으로 들어와서 유행되는데, 그 중에도 현종이 제일 잘 쳤다. 어느 날 이원(梨園)에서 새로 작곡한 관현악을 연주한다 하여 화악루(花萼樓) 아래에서 연주하였는데, 그 작곡이 매우 잘못되어서 현종이 그것을 중지하도록 명령하고 다시, “갈고(羯鼓)를 가져오라. 이 더러운 소리를 들은 것을 씻겠다.” 하고, 갈고를 가져다가 한 곡조 쳤더니 그때에 아직 봄이 일러 꽃봉오리가 피지 않았는데도, 그 곡조가 끝나면서 그 근처의 꽃들이 일시에 피었다 한다. 그래서 현종은 누가 나더러 하느님만 못하다고 하겠는가, 하고 좋아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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