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 추
추(墜)
땅 이름이다. 공공이 전욱과 임금자리를 다투다가 노하여 부주산에 부딪히니, 하늘기둥이 꺼꺼이고 땅이 끊어져서 하늘이 서북으로 기울고 땅이 동남에 차지 않으매 물길이 동남으로 기울어졌다는 전설.
추(篘)
용수. 술을 거르는 도구를 가리킨다.
추(諏)
자문(咨問). 바로 왕명을 받은 사신(使臣)이 미진함이 없도록 자신의 직분을 다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자문을 하여 직무 수행에 힘씀을 이른 말이다.
추(鄒)
추는 맹자의 나라로서 맹자를 가리킨다. 『맹자(孟子)』 「진심(盡心)」 上에 “바다를 구경한 사람과는 강물을 가지고 이야기하기 어렵다[觀於海者 難爲水].” 하였다.
추강일필련(秋江一匹練)
이백(李白)의 시에 “누가 이 강물 넓다고 말하는가, 비좁기가 마치도 한 필 비단 같은걸[誰道此水廣 狹如一匹練].”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태백시집(李太白詩集)』 卷13 江夏 寄漢陽輔參事
추계(魋髻)
만이(蠻夷)의 수식(首飾)인 북상투이다.
추고(推敲)
‘퇴고(推敲)’는 시문(詩文)의 자구(字句)를 여러 번 연마하여 고치는 공부를 말한다. 당(唐) 나라 때의 시인 가도(賈島)가 하루는 나귀의 등에서 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이란 시구를 얻어 퇴(推; 밀퇴) 자를 쓸까, 고(敲; 두드릴고) 자를 쓸까 하고 수없이 고심을 하면서 손을 가지고 직접 퇴고하는 형세를 짓곤 하다가, 때마침 지나가던 경조윤(京兆尹) 한유(韓愈)의 행차를 만나서 그 사실을 갖추 말하여 한유로부터 고(敲) 「자로(子路)」 하라는 지시를 받았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추고마비(秋高馬肥)
아주 좋은 가을 날씨를 표현한 고사성어다.
추고연백전(推敲捐白戰)
‘퇴고(推敲)’는 당(唐) 나라의 가도(賈島)가 “새는 못가 나무에 깃들고 중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리네[鳥宿池邊樹 僧敲月下門].”란 시를 지었을 때, 고(敲) 자는 본시 퇴(推) 자로 하려다가 마침 한유(韓愈)의 말에 따라 고 「자로(子路)」 결정한 것을 말한다. 백전은 맨손으로 서로 싸운다는 것으로, 눈(雪)을 시제(詩題)로 정하였을 때 이(梨)ㆍ매(梅)ㆍ아(鵝)ㆍ학(鶴)ㆍ연(練)ㆍ서(絮) 등 눈을 표현하는 체물어(體物語)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추곡(推轂)
장수에 대한 임금의 극진한 예우를 말한다. 옛날 출정(出征)하는 장수를 전송할 때 임금이 수레바퀴를 손수 밀어주면서(推轂) “곤내(閫內)는 과인이 처리할 테니 곤외(閫外)는 장군이 알아서 하라[閫以內者, 寡人制之閫以外者, 將軍制之].”고 말한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사기(史記)』 「장석지풍당열전(張釋之馮唐列傳)」
추곡례(推轂禮)
임금이 장수를 전쟁터로 내보낼 때 “도성문(都城門) 안의 일은 과인이 처리할 테니 도성문 밖의 일은 그대가 알아서 처리하라.” 하면서 무릎을 꿇고 수레바퀴를 밀어주며 전송하는 예를 말한다.
추구(蒭狗)
아직 제사에 진설되기 전에는 훌륭한 대나무 상자에 담고 좋은 비단으로 감싸 두고 시축이 재계를 하고서 받든다. 그런데 진열하여 제사를 마치고 나면 길 가는 사람이 머리와 등을 발로 밟고 지나가기도 하고 풀 베는 사람이 가져다가 불을 지펴 밥을 짓기도 한다[夫芻狗之未陳也, 盛以篋衍, 巾以文繡, 尸祝齊戒以將之. 及其已陳也, 行者踐其首脊, 蘇者取而爨之已]. 『장자(莊子)』 「천운(天運)」
① 풀을 묶어서 개 모양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옛날에 제사를 지낼 때 쓰던 것인데, 제사가 끝나고 나면 바로 내버리기 때문에, ‘소용이 있을 때만 이용하고 소용이 없을 때는 버리는 천한 물건’의 비유로 쓰인다.
② 풀로써 개의 모양을 만들어 제사에 쓰는 것으로, ‘예전 융성하던 제왕의 능에도 세상이 변천하면 풀이 돋아날 정도로 무상한 삶’을 말한다. / 인용: 陶峽叢說
추국(推鞠)
비위(非違)를 따져 묻는 것을 말한다. 신문(訊問)이란 말과 같은 뜻이다.
추극(樞極)
추(樞)는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첫째 별이고 극(極)은 북극성(北極星)을 말한다.
추기(樞機)
언행(言行)을 이른다. 『주역(周易)』 「계사(繫辭)」에, “言行 君子之樞機”라 하였다.
추기급인(推己及人)
자신의 처지를 미루어 다른 사람의 형편을 헤아린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추녀추(醜女醜)
월(越) 나라 때 미인인 서시(西施)가 불쾌한 일이 있어서 얼굴을 찡그리자 어떤 추녀가 그것을 보고 흉내내었다는 뜻인 효빈(效顰)의 고사(故事)에서 온 말로, 무턱대고 남을 따라 하는 것을 말한다. 『장자(莊子)』 「천운(天運)」
추담현산비(鄒湛峴山悲)
진(晋) 나라 양호(羊祜)가 형주(荊州)의 도독(都督)으로 있을 때에 산수 풍경을 좋아하여 매양 현산(峴山)에 올라서 술을 마시며 놀았다. 한 번은 양호가 종사(從事) 추담(鄒湛)을 대하여 탄식하기를, “우주가 있자 이 산이 있었거늘 현인(賢人) 달사(達士)들이 이 산에 올라 놀기를 나와 자네와 같이 하는 자가 많았겠지마는 지금에는 다 매몰되어 이름도 없는 것을 생각하니 나도 슬픈 마음이 생긴다.” 하니, 추담이 대답하기를, “공(公)은 덕이 높고 공이 크니 어진 명망이 반드시 이 산과 함께 전하겠지마는, 담(湛)과 같은 자는 참으로 공의 말씀과 같을 것입니다.” 하였다.
추대왕(皺大王)
얼굴이 주름진 임금이란 뜻으로, 곧 혜종을 가리킨다.
추란(秋蘭)
주자집주(朱子集註)에, “蘭亦香草 至秋乃芳”이라고 보인다.
추량(鶖梁)
객지에 나가 있음을 말한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백화(白華)에 “무수리는 징검다리에 있고 학은 숲에 있도다[有鶖在梁 有鶴在林]”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시는 어느 여인이 집을 떠나 객지에 있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다.
추령(芻靈)
풀을 묶어 만든 허수아비이다.
추로(鄒魯)
공자(孔子)와 맹자(孟子)를 가리킨다. 즉 유가(儒家)의 학문 세계를 뜻하는 말이다. 공자는 춘추시대(春秋時代) 노(魯) 나라 사람이었고, 맹자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추(鄒) 땅 사람이었다.
추로향(鄒魯鄕)
유학자가 많이 배출되는 고장이라는 뜻이다. 추(鄒)는 맹자(孟子)가 난 곳이고, 노(魯)는 공자(孔子)가 난 곳이다.
추루사인(秋𢈢舍人)
추루(秋𢈢)는 반정균(潘庭筠)의 호이며 사인은 벼슬 이름이다.
추림(秋霖)
‘가을 장마’를 말한다.
추만(秋巒)
정지운(鄭之雲)의 호이며 자는 정이(靜而)이니, 사재(思齋) 김정국(金定國)의 문인이다.
추매(椎埋)
사람을 죽이고 파묻어서 그 죄적(罪跡)을 완전히 감춤. 또는 도굴꾼이 무덤을 파헤치고 물건을 꺼내가 버리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전하여 전에 있었던 것이 감쪽같이 없어진 것을 비유한 말이다.
추매(鄒枚)
서한(西漢) 양 효왕(梁孝王)의 상객(上客)이었던 추양(鄒陽)과 매승(枚乘)의 병칭으로, 보통 시종 문신(文臣)의 뜻으로 쓰인다. 이들은 당시에 재변가(才辯家)로 저명했던 사람들이다. 『한서(漢書)』 卷五十一 「가추매로전(賈鄒枚路傳)」
추매자(椎埋者)
방망이로 사람을 쳐죽여 매장한 잔인무도한 자. 여기서는 한(漢)의 고조(高祖)를 말한 것이다. 추매도구(椎埋屠狗). 소순(蘇洵), 「고조론(高祖論)」
추박(椎剝)
한유(韓愈)가 “살을 깎고 골수를 부순다.[剝膚椎髓]”라고 한 데서 온 말로, 가혹한 수탈 정책을 상징하는 말이다. 『韓昌黎文集』 卷15 「鄆州溪堂詩」
추부(萑苻)
춘추시대(春秋時代) 정(鄭) 나라의 강도(强盜)가 출몰했던 늪지대 이른다.
추비전패(追飛電牌)
패면(牌面)에 추비전(追飛電) 3자를 새긴 납으로 만든 패. 연산군 때에 궁중에서 쓰는 물건은 정원(政院)을 경유하지 않고 액정서(掖庭署)에서 직접 사람을 보내어 각사(各司)에 가서 입으로 ‘무슨 물건을 들이라.’ 했는데 그 가는 사람이 차는 패로서, 급하기가 비전(飛電)과 같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추비춘경비(秋悲春更悲)
소동파(蘇東坡)의 법혜사횡취각(法惠寺橫翠閣)에 “봄이 오매 고향에 돌아갈 기약 없으니, 사람들은 말하길 가을이 슬프나 봄은 더욱 슬프다네.” 하였다.
추사(秋社)
입추(立秋)가 지난 뒤 다섯 번째의 무일(戊日)에 토지신(土地神)에게 올리는 제사를 말한다.
추사(樞司)
정치의 중추(中樞)가 되는 기관이라는 뜻으로, 비변사(備邊司)를 가리킨다.
추사(秋史)
추상(秋霜) 같은 역사가란 뜻으로, 즉 ‘서릿발같이 냉철한 의식을 지닌 역사가’라는 의미다. 조선 말기에 금석학(金石學)과 서예(書藝) 등에 크게 뛰어났던 김정희(金正喜)는 냉철하게 역사를 보고 담아내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바람을 담아 자신의 호로 삼았다.
추사재리동(秋事在籬東)
은거하면서 국화나 완상함을 비유한 말이다. 도잠(陶潛)의 「음주(飮酒)」 시에 “동쪽 울타리 밑에 국화를 따면서 유연히 남산을 보노라[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 한 데서 온 말이다.
추산자(秋山子)
박홍중(朴弘中)의 호이다.
추생(鄒生)
전국시대(戰國時代) 제(齊) 나라의 변설가(辯舌家) 추연(鄒衍)을 말한다. 『사기(史記)』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에 “유자들이 말하는 중국이라고 하는 것은 천하 가운데 팔십일 분의 일에 해당하는 것일 뿐이다[儒者所謂中國者 於天下乃八十一分居其一分耳].”라고 말한 추연의 주장이 실려 있다.
추생담해(鄒生談海)
추생은 전국시대(戰國時代) 제(齊) 나라의 추연(鄒衍)을 이른다. 광대한 담론이란 바로 추연이 천상(天象)을 말하는 데 있어 그 변론이 굉원박대(宏遠博大)하였음을 이른 말이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추생영해사(鄒生嶺海死)
전국시대(戰國時代) 제(齊) 나라의 추연(鄒衍)을 가리킨다. 연(燕) 나라 혜왕(惠王)이 참소하는 말을 믿고서 추연을 옥에 가두었는데, 여름인데도 서리가 내리고 오곡(五穀)이 익지 않았다고 한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추생율(鄒生律)
추생은 전국(戰國) 시대 제(齊) 나라 추연(鄒衍)을 가리킨다. 추연은 본디 율(律)에 능하여, 기후가 차가워서 오곡(五穀)이 성장하지 못하는 북방(北方)의 어느 땅에 그가 율을 불어 그곳에 따스한 봄이 오게 해서 벼ㆍ기장 등의 곡식이 잘 자랐다 한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추생취율(鄒生吹律)
추생은 전국시대(戰國時代) 제(齊) 나라 추연(鄒衍)을 이르는데, 그가 연 혜왕(燕惠王)을 섬길 적에 혜왕이 다른 신하의 참소하는 말을 믿고 그를 하옥시키자 때아닌 5월에 서리가 내렸고, 또 북방은 기후가 차서 오곡(五穀)이 자라지 못했는데, 그가 율(律)을 불어 기후를 다습게 하자 벼와 기장이 자랐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추서(墜緖)
쇠퇴해진 사업(事業)이란 뜻으로, 선왕 선성(先王先聖)이 전해 온 사도(斯道)를 의미한다.
추서(鄒書)
임금에게 원통함을 호소하며 올리는 글을 말한다. 한(漢) 나라 추양(鄒陽)이 양 효왕(梁孝王)의 문객으로 있을 때 참소를 받고 하옥되었다가 상서를 하여 석방된 고사가 있다. 『사기(史記)』 「노중연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추서(追胥)
도적을 추격하여 체포하는 역인(役人)을 가리킨다. / 인용: 母別子(김성일)
추서여왕찬(推書與王粲)
중국 삼국 시대 위(魏) 나라 채옹(蔡邕)이 나이 어린 왕찬을 기특하게 여긴 나머지 신발을 거꾸로 신고 나아가 맞이하였는가 하면 자기 집안의 서적을 모조리 왕찬에게 주겠다고 한 고사가 전해 온다. 『삼국지(三國志)』 卷21
추석(酋腊)
잘 익은 독주(毒酒). 『국어(國語)』 「정어(鄭語)」에, “잘 익은 독주라야 사람을 더 빨리 죽일 수 있다.” 하여 유왕(幽王)의 총희(寵姬)인 포사(褒姒)를 독주에다 비하였다.
추성(秋城)
전라남도 담양(潭陽)의 옛 이름이다.
추쇄(推刷)
① 부역(賦役) 또는 병역(兵役)을 기피한 자나 상전(上典)에게 의무를 다하지 않고 다른 지방으로 도망한 노비를 찾아내어, 본고장으로 돌려 보내는 일. 노비추쇄(奴婢推刷) / 인용: 寺奴婢(권헌)
② 빚을 죄다 받아들이는 일.
추수겸가백로징(秋水蒹葭白露澄)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됨을 애석하게 여기는 뜻으로, 『시경(詩經)』 진풍(秦風) 「겸가(蒹葭)」에 “긴 갈대 푸르른데, 흰 이슬이 서리가 되었네. 저기 바로 저 사람이 물 저편에 있도다. 물길 거슬러 올라가나, 험한 길이 멀기도 하네. ……[蒹葭蒼蒼 白露爲霜 所謂伊人 在水一方 遡洄從之 道阻且長……]” 한 데서 온 말이다.
추수판(抽手板)
벼슬을 그만둔다는 것이다. 수판은 홀(笏)의 별칭으로 벼슬아치가 조회 때에 지니는 물건이다.
추신책(抽身策)
벼슬자리에서 몸을 빼서 물러날 계책을 말한다.
추아(驄牙)
한 무제(漢武帝) 때에 건장궁(建章宮) 후합(後閤) 대들보 속에서 동물이 나왔는데, 그 모양이 고라니 비슷했다. 동방삭(東方朔)이 말하기를, “그것은 이른바 추아라는 것이니, 먼 곳에서 마땅히 와서 귀순(歸順)하리라.” 하더니, 그 1년 후에 흉노(匈奴) 혼야왕(混邪王)이 과연 10만 명을 데리고 와 항복하였다.” 『사기(史記)』 「골계열전(滑稽列傳)」
추아(抽芽)
싹을 내밀다.
추야장(秋夜長)
악부의 잡곡(雜曲) 가사의 이른다. 왕융(王融)ㆍ왕발(王勃) 등 많은 사람의 소작이 있다.
추양(鄒陽)
한(漢) 나라 임치(臨淄) 사람으로 문변(文辨)에 뛰어났으며, 경제(景帝) 때의 유세객(遊說客). 한 나라 추양이 양효왕(梁孝王)의 빈객으로 있다가 양승(羊勝) 등의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갇힌 뒤 옥중에서 글을 써서 원통함을 호소한 결과 석방이 되어 상객(上客)의 대접을 받았던 고사가 전한다. 『사기(史記)』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추어(雛語)
어린 아이의 말소리를 이른 말이다.
추역(酋醳)
추는 익은 술, 역은 독한 술.
추연(鄒衍)
전국시대(戰國時代) 사람으로 연(燕) 나라 소왕(昭王)의 신임이 두터워 스승으로 모셔졌으나, 뒤에 소왕이 죽고 혜왕(惠王)이 즉위한 다음 중상(中傷)을 당하여 하옥(下獄)되었다. 이에 여름철이었는데도 서리가 내리니, 사람들은 그의 억울함 때문에 서리가 내린 것이라 하였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추열(趨熱)
부염추열(附炎趨熱). 막강한 권세에 빌붙어 아부하는 것을 말한다.
추엽신성(墜葉晨星)
떨어진 잎새란 이미 죽은 친구를 비유한 말이고, 새벽별이란 마치 새벽별처럼 살아 있는 친구가 드묾을 비유한 말이다.
추영(追榮)
예전에, 종이품 이상인 벼슬아치의 죽은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에게 벼슬의 직위를 내리는 일을 이르던 말 / 인용: 金將軍應河輓(송영구)
추예(醜穢)
추하고 더러움.
추오(楸梧)
산소 앞의 나무
추옹(秋翁)
추포(秋浦) 황신(黃愼).
추요(芻蕘)
꼴 베는 사람과 나무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시경(詩經)』 대아(大雅) 「판(板)」에 “옛 어진이가 이르기를 추요에게 물으라 하였네[先民有言 詢于芻蕘]”하였다.
추우(騶虞)
생물(生物)을 먹지 않는다는 의로운 짐승. 백호(白虎)의 모습에 검은 무늬를 띠었는데, 생물(生物)을 잡아먹지 않으며 생초(生草)를 밟지 않는 인후한 덕을 지녔다는 전설 속의 짐승이다. 지극히 믿음직한 덕이 있으면 나타난다고 한다. 『시경(詩經)』 소남(召南) 「추우(騶虞)」
추우강남(追友江南)
친구 따라 강남간다. 주견 없는 행동을 말한다.
추원보본(追遠報本)
조상의 덕을 추모하여 제사를 지내고, 자기의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음.
추월자(秋月子)
심계 이광석을 가리키니 그의 서재(書齋)가 추월헌(秋月軒)이므로 한 말이다.
추유(樞楡)
추유장은 『시경(詩經)』 당풍(唐風) 「산유추(山有樞)」편을 말한다. 산유추 편에 “산에는 스무나무 진펄엔 느릅나무……그대 만약 죽고 나면 딴 사람만 즐거우리[山有樞 隰有楡……宛其死矣 他人是愉].”라고 하여 너무 고생만 하지말고 인생을 즐기면서 살라는 뜻을 노래하였다. 곧 백성들이 삶을 즐기지 못하고 고생만 한다는 것이다.
추읍만보(郰邑輓父)
공자(孔子)가 어렸을 적에 자기 아버지의 묘를 몰랐었는데, 자기 어머니가 죽었을 때 추읍(郰邑)에 사는 만보(輓父)란 사람의 어머니가 그 묘의 소재를 가르쳐 주자, 자기 어머니를 그곳에 합장하였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
추이(推迻)
속세를 따라 움직이다. 즉 자신의 영달과 안위를 위해 절개를 꺽고 충직함을 저버리고 세태의 심각성을 외면하면서 시류에 편승함을 의미한다. 「어부사(漁父辭)」
추자(鶖子)
석가(釋迦)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사리불(舍利弗)의 음역(音譯)으로, 전하여 승려(僧侶)를 의미한다.
추자서(鄒子書)
참소 당한 억울함을 임금에게 호소를 하기도 했다는 말이다. 추자(鄒子)는 한(漢) 나라 추양(鄒陽)으로, 양 효왕(梁孝王)의 문객(門客)이 되었다가 양승(羊勝) 등의 모함을 받고 하옥되었는데, 옥중에서 상서를 하여 마침내 상객(上客)의 대우를 받게 되었다. 『사기(史記)』 卷83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추자예거(鄒子曳裾)
추자는 한 나라 때 유세객(遊說客)인 추양(鄒陽)을 가리키며, 예거(曳裾)는 긴 옷자락을 늘어뜨린다(曳長裾)의 준말로, 즉 왕후의 문에 출입한다는 뜻이다. 추양이 오(吳)에 벼슬할 적에 오왕(吳王)이 음모(陰謀)를 꾸미자 글을 올려 간하기를 “지금 신(臣)이 만일 간교한 마음을 다한다면 어느 왕후의 문엔들 긴 옷자락 늘어뜨리지 못하겠습니까.” 하였다. 『한서(漢書)』 卷五十一 「추양전(鄒陽傳)」
추자예거(鄒子曳裾)
추자는 한 나라 추양(鄒陽). 그는 오(吳) 나라 양효왕(梁孝王)의 상객(上客)이 되어 말하되, “어느 왕의 문에서 긴 옷자락을 끌지 못하랴.” 했다. 왕후(王侯)의 문객(門客)을 말한 것이다.
추자율(鄒子律)
추자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제(齊) 나라 추연(鄒衍)을 가리키는데, 북방(北方)의 땅이 차가워서 오곡이 자라지 못하므로, 추연이 피리를 불어 기후를 따뜻하게 하자, 벼와 기장이 무럭무럭 자랐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추자취율(鄒子吹律)
전국시대(戰國時代) 제(齊) 나라의 추연(鄒衍)이 연(燕) 나라의 곡구(谷口)에 있을 때, 땅이 비옥하면서도 기후가 썰렁하여 농사가 안 되는 것을 보고, 양률(陽律)을 불어넣어 곡식을 자라게 했다는 전설이 있다. 『태평어람(太平御覽)』 卷54 注
추재(秋齋)
조수삼(趙秀三)의 호인데 시를 잘하였다.
추쟁옹(箒爭擁)
옛날에 빈객을 맞이해 올 때 항상 앞에서 비를 들고 옹위하여 경의를 표하였다.
추정(秋丁)
가을의 첫 정일(丁日)을 말한 것으로, 바로 이날에 석전제(釋奠祭)를 거행한다.
추정(趨庭)
아들이 어버이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을 말한다. 공자(孔子)가 집에 혼자 서 있을 때, 아들 백어(伯魚)가 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나가자[鯉趨而過庭], 시(詩)와 예(禮)를 배우도록 가르쳤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논어(論語)』 「계씨(季氏)」
추정례(秋丁禮)
가을철 정일(丁日)에 향교(鄕校)에서 올린 석전제(釋奠祭)를 말한다.
추정몽(趨庭夢)
고향 집에 대한 꿈을 말한다. 공자(孔子)의 아들이 종종걸음으로 집안의 뜨락을 지나갈 때(趨庭), 공자가 그를 불러 세우고서 시(詩)와 예(禮)를 공부하라고 가르쳐 준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논어(論語)』 「계씨(季氏)」
추정문례趨庭聞禮)
추정(趨庭)은 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공자(孔子)의 아들 백어(伯魚)가 뜰 앞으로 나아가 공자에게 시(詩)와 예(禮)에 대한 가르침을 들은 데서 유래한 말이다. 『논어(論語)』 「계씨(季氏)」
추정문시례(趨庭聞詩禮)
공자(孔子)의 아들 백어(伯魚)는 집에 돌아가 있을 적에 뜰 앞으로 나아가자, 공자는 홀로 서 있다가 “너는 시(詩)를 배웠느냐?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다.” 하였으며, 또 한 번은 “예(禮)를 배웠느냐?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세상에 설 수 없다.” 하였다. 『논어(論語)』 「계씨(季氏)」
추조(鰌潮)
『산해경(山海經)』에, “바다 미꾸리의 출입하는 것이 조수(潮水)가 된다”는 말이 있다.
추조부(趨藻鳧)
이 말은 『후한서(後漢書)』 「유도전(劉陶傳)」에 “군사들이 싸움을 괴롭게 여기지 않고 기뻐하는 모습이 마치 오리가 마름을 만난 듯하다.” 한 글에서 부조(鳧藻) 두 글자를 인용한 것이다.
추지선(秋之扇)
가을 부채로 쓸모 없는 물건을 나타낸다. ‘버려진 궁녀’나 ‘헤어진 연인’을 묘사할 때 시어로 자자주 쓴다. / 인용: 가을 부채에 담긴 사연①, ②
추창(惆愴)
실망하여 탄식하는 모양.
추창(趨蹌)
젊은이가 어른 앞에서 예도(禮度)에 맞도록 허리를 굽히고 종종걸음으로 걷는 것을 말한다.
추천(鞦韆)
‘그네’를 말한다. / 인용: 鞦韆曲(임제),
추천(秋千)
추천(鞦韆)과 같은 뜻으로 그네를 말한다. / 인용: 春詞(박제가)
추초만고소(秋草滿姑蘇)
오왕(吳王) 부차(夫差)가 오자서(伍子胥)의 충성스런 말을 듣지 않고 그를 죽이니, 오자서가 죽으면서 말하기를 “장차 사슴들이 고소대(姑蘇臺)에서 놀 것이다.” 하였다. 여기서는 오나라가 망하여 고소대에 풀이 우거졌다는 말이다.
추추(湫湫)
근심하며 슬퍼하는 모양
추추(啾啾)
벌레 우는 소리, 새의 우는 소리, 말의 우는 소리, 원숭이의 소리, 피리 소리, 망령이 우는 소리
추축(追逐)
‘뒤쫓아 다님’이란 뜻이다.
추충만저치이복(秋虫滿貯鴟夷腹)
뱃속에 시상이나 해학이 무진장 들어 있음을 말한 것으로, 가을 벌레는 특히 울기를 잘하기 때문에 비유한 것이다.
추충성(啾蟲聲)
벌레 우는 소리란 시를 읽는 소리를 말한 것으로 시문은 작은 재주라 하여 조충 소기(雕蟲小技)라 하므로 한 말이다.
추포(秋浦)
황신(黃愼)의 호이다.
추포공(秋浦公)
추포(秋浦)는 황신(黃愼)의 호이다.
추풍(追風)
진시황(秦始皇)의 일곱 명마(名馬) 가운데의 하나로, 천리마와 같은 뜻이다. / 인용: 梨花庵老僧行(최성대)
추풍낙엽(秋風落葉)
시들어 떨어지거나 헤어져 흩어짐의 비유.
추풍두로파모옥(秋風杜老破茅屋)
두보(杜甫). 그의 시에, “초가집이 가을 바람에 부서짐을 탄식한다[茅屋爲秋風的破嘆].”가 있다.
추풍병욕소(秋風病欲蘇)
두보(杜甫)의 시 ‘강한(江漢)’에 나오는 구절로, “지는 해에 마음 되레 비장해지고, 갈바람에 병은 나으려 하네[落日心猶壯 秋風病欲蘇].”하였다.
추풍사(秋風辭)
한 무제가 분수(汾水) 남쪽(汾陰)에서 후토신(后土神)에게 제사를 드린 뒤에 배를 타고 신하들과 술을 마시며 지은 노래로, 지난날을 추억하고 인생의 무상함을 탄식하는 등 애조(哀調)를 띠고 있다.
추풍선(秋風扇)
가을 부채로 쓸모 없는 물건을 나타낸다. ‘버려진 궁녀’나 ‘헤어진 연인’을 묘사할 때 시어로 자자주 쓴다. / 인용: 가을 부채에 담긴 사연①, ②
추형(秋螢)
두보(杜甫)가 장안(長安)을 떠나 봉선현(奉先縣)의 역소(投所)에 우거(寓居)할 때 지은 ‘교릉시 삼십운(橋陵詩三十韻)’을 말한다. 그 시의 마지막 부분에 “늙은 말 같은 내 신세를 현령께서 동정하여, 반딧불 잡아 글 읽는 독서인에게 역소의 한 건물을 빌려 주셨네[主人念老馬 廨署容秋螢].”라는 구절이 나온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卷3
추형모설(秋螢暮雪)
진(晉) 나라 차윤(車胤)이 반딧불을 모아 그 빛으로 책을 읽고, 역시 진 나라의 손강(孫康)이 눈(雪) 빛으로 등잔불을 대신해 책을 읽었다는 ‘형창설안(螢窓雪案)’의 고사가 전해 온다. 『진서(晉書)』 車胤傳ㆍ『몽구(蒙求)』 中 孫康映雪
추혜서(追惠署)
연산군 때 궁인들의 상장관곽(喪葬棺槨) 및 예장(禮葬)에 대한 사무를 맡은 곳을 말한다.
추호(秋毫)
가을철의 가늘어진 짐승의 털로 ‘매우 적다’는 말이다.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에 “나의 시력은 가을 털의 끝부분을 보기엔 넉넉하지만 수레에 실린 섶나무를 보진 못합니다[明足以察秋毫之末, 而不見輿薪].”라는 말이 있다.
추호부(秋胡婦)
추호는 춘추시대(春秋時代) 노(魯) 나라 사람인데, 그의 아내가 시집온 지 5일 만에 그는 진(陳)에 부임하였다. 그로부터 5년 뒤에야 돌아오다가 길가에서 뽕 따는 부인을 보고 좋아하여 금(金)을 주자, 그 부인은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렸는데, 추호가 자기 집에 와서 보니 아까 그 부인이 바로 자기 아내였었다. 그러자 그 부인은 남편의 불효(不孝)와 불의(不義)를 꾸짖고 강물에 투신 자살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추화(推火)
밀양(密陽)의 고호이다.
추환(芻豢)
풀을 먹는 우양(牛羊)과 곡식을 먹는 견시(犬豕)를 가리키는 말로, 감미로운 음식을 말한다. 『맹자(孟子)』 「고자(告子)」에, “의리(義理)가 나의 마음에 좋기가 추환(芻豢)이 나의 입에 좋은 것과 같다[理義之悅我心, 猶芻豢之悅我].” 하였다.
추획사(錐劃沙)
붓을 들어 글씨를 쓸 때 송곳으로 모래를 긋는 것과 같이 한다는 것으로 필법의 정묘함을 말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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