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대부터 전국시대까지 문장의 가치가 살아 있던 시기
성현(成俔)
고대엔 문장이 아닌 게 없었다
文不可變乎? 可變則斯爲變矣, 其變而就卑在人, 變卑而還淳, 亦在人耳.
自「典謨」ㆍ「賡載」之文作, 而爲文之權輿, 虞變而夏, 夏變而殷, 至于成周, 其文大備, 彬彬郁郁. 言宣于口, 無非文也; 事載于冊, 無非文也. 如君臣戒訓, 列國辨命, 兵師誓告, 祭祀祝嘏, 閭巷歌謠, 非文無以發. 故人雖欲不文, 而不得不爲文也.
공자시대엔 모든 게 문장이었다
天生宣尼, 振木鐸之敎, 以天縱之聖, 删定贊修六經之語, 其道德文章, 足以經世垂範. 於是, 三千之徒霧滃而集, 七十二子升堂入室, 高矣美矣, 非後世之所可幾及也.
전국시대의 문장들은 쇠락해졌지만 그럼에도 볼 만한 게 있었다
逮道下衰, 莊ㆍ列之敎虛無, 楊ㆍ墨之言滅裂, 申ㆍ韓主刑名之學, 屈ㆍ宋肇悲怨之詞, 魏牟ㆍ公孫龍作堅白同異之說, 各售其技, 斲喪道眞, 然其文辭則縱橫捭闔, 皆有可觀.
해석
고대엔 문장이 아닌 게 없었다
文不可變乎?
문장은 변할 수 없는가?
可變則斯爲變矣, 其變而就卑在人,
변할 수 있다면 이것은 변할 것이니 그 변하여 낮은 데로 나가는 것도 사람에게 달려 있고
變卑而還淳, 亦在人耳.
낮은 데서 변하여 순정한 데로 돌아오는 것 또한 사람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
自「典謨」ㆍ「賡載」之文作, 而爲文之權輿,
『서경(書經)』의 전모(典謨)【전모(典謨): 전(典)과 모(謨)의 합칭으로, 『서경』의 「요전(堯典)」ㆍ「순전(舜典)」의 이전(二典)과 「대우모(大禹謨)」ㆍ「고요모(皐陶謨)」ㆍ「익직(益稷)」의 삼모(三謨)를 말하는데, 모두 요(堯)ㆍ순(舜)ㆍ우(虞) 임금의 말씀으로 되어 있다.】와 갱재가(賡載歌)【갱재가(賡載歌): 갱(賡)은 계속의 뜻이다. 『서경(書經)』 「익직(益稷)」에 “고요(皐陶)는 이어 받아 노래를 이루어 부르기를, ‘원수(元首)가 밝으시면 고굉(股肱)들이 어질어서 온갖 일이 편안하오리다.’라 했다.”라고 하였다. 순 임금이 신하를 권면하는 뜻의 노래를 부른 데 대해 고요(皐陶)가 임금을 권면하는 뜻으로 화답한 노래를 말한다.】의 문장이 지어짐으로부터 문장의 시작이 되었으니,
虞變而夏, 夏變而殷,
우나라가 변하여 하나라가 되었고 하나라 변하여 은나라가 되었으며
至于成周, 其文大備,
성왕의 주나라에 이르러 문장이 크게 갖춰졌으니
彬彬郁郁.
문장과 바탕이 조화를 이루어 반짝였다.
言宣于口, 無非文也;
말이 입에서 펴지면 문장이 아닌 게 없었고
事載于冊, 無非文也.
일이 책에 실리면 문장이 아닌 게 없었다.
如君臣戒訓, 列國辨命,
예를 들면 군신의 훈계한 가르침과 제국들의 외교문서들과
兵師誓告, 祭祀祝嘏,
병사들이 맹세한 말과 제관들의 제사의 말들과
閭巷歌謠, 非文無以發.
민간의 노래들이 문장으로 발설되지 않음이 없었다.
故人雖欲不文, 而不得不爲文也.
그러므로 사람이 비록 문장을 지으려 하지 않더라도 부득불 문장이 되었던 것이다.
공자시대엔 모든 게 문장이었다
하늘이 중니【목탁은 쇠로 입을 만들고 나무로 추를 만든 큰 방울을 가리키는데, 고대에 정교(政敎)를 낼 때 이것을 친 데서 유래하여 세상 사람을 가르쳐 인도하는 정신적 지도자를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공자(孔子)가 언젠가 위(衛)나라에 있을 때 의(儀) 땅의 봉인(封人)이 공자를 뵙고 나와 시종(侍從)하는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여러분은 공자가 자리 잃은 것을 무엇하러 걱정하는가. 천하가 무도해진 지 오래이니, 하늘이 장차 부자를 목탁으로 삼을 것이다.〔二三子, 何患於喪乎?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라고 하였다. 『論語 八佾』】를 태어나 선포함으로 목탁의 가르침을 진작시켰고
以天縱之聖, 删定贊修六經之語,
하늘이 성인을 내셔서 육경의 말을 산정하고 찬수하도록 했으니,
其道德文章, 足以經世垂範.
그 도덕과 문장이 족히 세상을 경륜하고 법을 드리울 만했다.
於是, 三千之徒霧滃而集, 七十二子升堂入室,
이에 3000명의 무리가 안개가 피어나듯 모이고 72명의 제자들이 당에 오르고 실에 들어와
高矣美矣, 非後世之所可幾及也.
고상하고도 아름다우니, 후세에 미치길 바랄 게 아니었다.
전국시대의 문장들은 쇠락해졌지만 그럼에도 볼 만한 게 있었다
도가 내려와 쇠퇴함에 미쳐 장자와 열자의 가르침은 허무하고
양주와 묵적의 말은 지리멸렬하며,
申ㆍ韓主刑名之學,
신불해와 한비자는 법가【형명(刑名): 명실(名實)의 뜻으로, 전국 시대 한비자(韓非子)가 주장한 학설이다. 유가의 인의(仁義)와는 달리 형벌을 통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법가 사상을 말한다. 관리를 등용할 때에는 그 사람의 의론 곧 명(名)과 그의 실제 성적 곧 형(刑)의 일치 여부를 살펴 상벌과 출척(黜陟)을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韓非子』】의 학술을 주장하였고
屈ㆍ宋肇悲怨之詞,
굴원(屈原)과 송옥(宋玉)은 슬퍼하고 원망하는 말을 시작하였으며
魏牟ㆍ公孫龍作堅白同異之說,
위모(魏牟)와 공손룡(公孫龍)은 견백동이(堅白同異)의 학설【견백동이지설(堅白同異之說): 궤변론자(詭辯論者)를 말한다. 전국 시대 조(趙)나라의 공손룡(公孫龍)이 ‘돌은 하나인 것 같으나 눈으로 돌을 볼 적에는 그 빛깔이 흰 것〔白〕은 알지만 그 돌이 단단한 것〔堅〕은 모르고, 손으로 돌을 만질 적에는 그 돌이 단단한 것은 아나 빛깔이 흰 것은 모른다. 따라서 단단하고 흰 돌의 존재는 동시에 성립할 수 없다.’라는 개념의 논법을 개발하여, 옳은 것을 그르다고 하고 그른 것을 옳다고 하며, 같은 것을 다르다고 하고 다른 것을 같다고 하는 교묘한 변론을 하였다.】을 만들었다.
各售其技, 斲喪道眞,
각각 자기의 재주를 팔아 도의 참됨을 깎아 상하게 했지만
然其文辭則縱橫捭闔, 皆有可觀.
그러나 문사는 종횡으로 열고 닫아 모두 볼 만한 게 있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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