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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다시 열하로!(2012년 여름) - 중국의 장관은 ‘상의실종’과 ‘슬리퍼’에 있다?! 본문

문집/열하일기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다시 열하로!(2012년 여름) - 중국의 장관은 ‘상의실종’과 ‘슬리퍼’에 있다?!

건방진방랑자 2021. 7. 11.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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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장관은 상의실종슬리퍼에 있다?!

 

 

청문명의 장관은 버려진 기왓조각과 똥부스러기에 있다[壯觀在瓦礫 曰壯觀在糞壤]!” 열하일기』 「일신수필(馹汛隨筆)에 나오는 명문징이다. 기왓조각과 똥부스러기 하나도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재활용하는 하는 걸 보고 연암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거기에는 자기 삶에 대한 존중감이 깊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변방의 가난한 사람들까지 이렇게 자기 삶을 배려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태평천하가 아니겠는가, 이것이 바로 연암의 생각이었다.

 

그럼 지금 중국은 어떤가? 연암이 갔던 그 중국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일단 무지하게 먹고 가차 없이 버린다. 한마디로 쓰레기 천국이다. 이번엔 더 심했다. 단동과 책문 근처의 작은 마을들은 폭격을 맞은 듯 황폐했다. 자본주의하에서 가난과 더러움은 동의어다. 돈이 되지 않으면 그대로 방치해버린다. 반면 도시의 호텔과 빌딩은 눈부실 정도로 화려하다. 하지만 그것은 자발적 청결과는 거리가 멀다. 엄청난 자본이 투여되었다는 뜻일 뿐이다. 이렇듯 중국을 지배하는 건 오직 돈이다. 그래서 중국 곳곳은 공사중이다. 백탑에 갔을 때도, 또 공자묘를 갔을 때도, 또 산속의 사찰에도 공사가 한창이다.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20세기 내내 역사적 실험의 현장이었다. 대장정에 항일전선, 그리고 사회주의의 건설, 문화혁명과 실용주의, 천안문 사태, 티벳과 위구르에 대한 침략 등등, 국가와 혁명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본 셈이다. 그럼 지금 중국의 구호는? 이성평화(理性平和) 문명규범(文明規范)! 단동시를 비롯하여 북경의 곳곳에서 발견한 구호다. 온갖 실험을 다 거치고 도달한 결론이 결국은 근대화. 20세기 초 근대화의 모토가 이성과 문명 아니었던가. 게다가 지금의 이성과 문명은 자본의 논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혁명에서 문명으로? 이건 어떤 역사발전의 법칙일까? 아니 그 이전에 역사는 과연 진보하는가? 혹은 더 나아가 진보는 과연 좋은 것인가? , 정말 헷갈린다. 이제 정말 루쉰을 만나야할 때가 된 것 같다. 루쉰이야말로 이 모든 가치들이 각축하는 시대의 어둠을 정면으로 돌파한 인물이 아닌가.

 

연암은 청문명의 실체를 파악하느라 모든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우리의 여행은 그 점에서는 별로였다. 중국의 빌딩들은 우리에겐 너무 익숙했고 각종 럭셔리한 상품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여, 시선은 아주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거리 곳곳에 남성들이 훌러덩 벗고 다니는 모습이 그것이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불법으로 규정해서 많이 사라졌는데, 그래도 습관은 어쩔 수 없단다. 한국에선 여성들의 하의실종이 있다면, 중국의 남성들은 상의실종중이다. 물론 둘이 의미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 한국 여성들의 하의실종은 지극히 부자연스럽다. 아이돌을 흉내내는 패션이다보니 획일적일뿐더러 그로 인해 여성들의 하체는 날로 빈약해진다. 반면, 중국의 상의실종은 패션이나 인기를 위한 것이 아니다. 벗고 있는 남성들의 몸매도 각양각색인데, 대개는 배불뚝이가 대세다. 그야말로 벗어야 편하니까 벗는 것이다. 처음엔 깜짝 놀랐지만 점차 익숙해지니 혐오스럽기보다는 절로 웃음이 나온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니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이 지독한 더위에 얼마나 거추장스러울 것인가. 국가와 자본은 외국인을 끌어들이기 위해 각종 문화재들을 리모델링하고 있지만, 인민들의 몸은 외국인이고 뭐고, 돈이고 나발이고 일단 벗고 보자는 것. 쉽게 말하면 자본에 포획되지 않은 신체인 것이다.

 

한편 두 대의 차를 전세냈기 때문에 기사님도 두 분이었다. 둘다. 호인형이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특히 우리 여행의 진맛을 더해 주었다. 우리는 그를 한따꺼라 불렀다. 처음 그의 존재성이 드러나게 된 건 다름아닌 슬리퍼 때문이었다. 여행 초반, 배불뚝이 몸매를 가진 그가 편안한 반바지 차림에 짝짝이 신발을 신고 있지 않은가. 사연인즉, 꽤 비싼 샌들을 샀는데 하필 그때 한쪽 발을 다치는 바람에 두짝을 다 신을 수가 없었던 거다. 그러면 보통 발이 나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정상이나 한따꺼는 일단 한쪽만 신고 다른 한쪽은 발가락이 노출되는 싸구려 슬리퍼를 신기로 한 것이다. 그 모습만으로도 웃긴 데 사연을 듣고 나선 모두가 터졌다. 이건 서곡에 불과했다. 이후 그는 가는 곳마다 웃음을 전파하는 유머의 달인이었다. 촬영이 시작되면 하염없이 차를 대기해야 하는데, 그럴 때면 그는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과 친교를 나눈다. 그야말로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특히 여성들에겐 인기 짱이어서 한두마디만 나누면 벌써 오랜 친구가 되어 있다. 와우~ 연암의 친화력이 저런 것이었을까?

 

더 놀랍게도 그는 운전기사가 직업이 아니라 농업대학 관리직이라는 꽤 번듯한 직업을 갖고 있으며 북경에 집이 세 채나 된다고 한다. 아니, 그런 부자가 왜 이런 알바를? 나이차가 꽤 되는데도 쭌과는 오랜 친구지간이었는데, 그 인연으로 방학 때면 이렇게 차를 운전하면서 쭌과 함께 중국 곳곳을 돌아다니는 게 낙이란다. 오호, 참으로 흥미로운 캐릭터였다. 어떤 권위와 관습에도 기대지 않고 자유롭게 흘러다니는 야생적 신체! 타인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내는 생기발랄함! 유머와 친화력의 원천도 거기에 있으리라.

 

이제 디지털은 제국의 경계와 그 제국을 떠받쳐온 거대담론들을 여지없이 격파할 것이다. 남는 건 시작도 끝도 없이,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여기로 흘러가는 유동적 흐름만 존재할 뿐! 국가 혹은 자본은 그 유동성을 포획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다. 하여 이제 본격적으로 자본과 신체 사이의 생극(상생과 상극)의 파노라마가 펼쳐질 터, 그러므로 연암을 어설프게 흉내내어 나는 이렇게 말하리라. —— 21세기 중국의 장관은 상의실종슬리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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