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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정만조 - 조선시문변천(朝鮮詩文變遷) 본문

산문놀이터/조선

정만조 - 조선시문변천(朝鮮詩文變遷)

건방진방랑자 2019. 3. 2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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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문장과 시의 흐름, 그리고 한문폐지론에 대해

조선시문변천(朝鮮詩文變遷)

 

정만기(鄭萬朝, 1858~1936)

 

 

중기부터 문학을 경시하고 경학만 중시하게 되었다

自是以後, 文化界有三大瘼. 前者, 經學人, 亦皆由科學進身, 必欲致君而澤民. 故自功令, 至舘閣之文賡酬之詩, 無不涉獵用力.

自中葉以後, 自命以學者, 着袍危坐, 談性說理, 株守訓詁, 不屑爲詩文. 故經學與文章, 判爲二道, 此一瘼也.

 

중기 이후론 과거만을 위한 글쓰기가 성행했다

朝廷, 以科第取士, , 有後周人雙冀, 指授以詩, 此所謂科文六體也.

朝鮮, 亦繼用此法. 而詩賦表, 篇有定句, 句有定字. 策義疑, 行數有限, 體裁有段, 皆各先定排寘, 不得違越.

而中葉以前, 猶不甚拘礙, 先觀其製作之善否;

中葉以後, 文章漸不逮前. 而赴擧者日增, 考試者, 先察其格式, 一毫有違, 則黜之. 故赴擧者, 規規於守其定式, 惴惴於或有失法, 何以盡其才而展其意乎. 此又一瘼也.

 

당파(黨派)의 극성으로 서로를 비난하는 풍토가 확산되다

一自黨論之劇, 士習, 以傾軋攻擊爲, 一有聲譽, 衆輒抑之.

自是, 文章之士, 多在於草野巖穴之間; 而朝廷之上, 鮮有可觀焉, 此又一大瘼也.

 

박지원과 정약용과 이광려, 능력은 출중했지만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해 문학 풍조를 바꾸지 못하다

正祖, 正祖, 經學文章, 爲帝王家刱有.

故名士輩出, 朴趾源丁若鏞李匡呂之流, 以曠前絶後之才學, 起於文運中衰之餘. 文酷似韓愈, 詩直接杜甫, 長於經濟, 故不專工于詩文. 而其出於筆下者, 字字皆可讀, 眞皆命世之才. 而亦爲時議所沮, 俱不得通顯, 故其力不能挽古而變今也. 此三人, 皆不着袍危坐, 故俗人不知其爲經學者, 是尤可慨也.

 

정약용 이후 문학과 시에 뛰어난 이들도 근본은 경학에 두었다

然自是, 文風稍振, 文而洪良浩以博雅, 金邁淳以蒼健, 洪奭周以醇正, 宗匠文苑; 詩而所謂四檢書, 始祛偏邦固陋, 而猶未盡善. 申緯, 而獨步當時, 號爲大家. 此諸家, 皆以文章自命, 而其學必本之乎經也.

 

한문 폐지론이 나오고 있지만 한문은 필요하다

嗣後百年來, 作者, 非無可稱, 而氣力稍稍降矣.

(中略)

此爲最近之變遷興替者也.

一自西潮東來, 廣開學校, 專治科學. 往往有漢文無用之說, 小學則幷廢漢文之敎科, 人皆曰: “漢文種子絶矣.”

余則以爲不然. 秦始皇, 坑儒焚書, 至有挾書偶語之律, 隨何陸賈叔孫通之輩, 接武而起矣.

今人雖欲廢漢文, 其可得乎. 且功令之束縛者, 已永廢矣; 黨派之沮軋者, 已盡消矣; 着袍危坐之俗學者, 皆無效矣. 凡爲文學界障碍者, 廓已掃除, 從玆以後, 必眞經學, 眞文章, 出而有十培於先輩者也. 又況時運變遷, 有替則有興耶. 余拭目以俟之. 鄭萬朝(1858~1936), 朝鮮詩文變遷

 

 

 

 

 

 

해석

 

중기부터 문학을 경시하고 경학만 중시하게 되었다

 

自是以後, 文化界有三大瘼.

이로부터 이후로 문화계엔 세 가지 병통이 있게 되었다.

 

前者, 經學人, 亦皆由科學進身,

앞선 시대의 경학자들은 또한 모두 과거공부로 출세하여

 

必欲致君而澤民.

반드시 임금에게 충성을 바치고 백성에게 은택을 끼치려 했었다.

 

故自功令, 至舘閣之文賡酬之詩,

그러므로 과거시험의 여러 문체功令: 고려와 조선 시대, 문과 과거의 시험에서 보이는 여러 가지 문체를 이르던 말로부터 공문서의 문장과 수창한 시에 이르기까지

 

無不涉獵用力.

섭렵하여 힘을 쓰지 않는 게 없었다.

 

自中葉以後, 自命以學者, 着袍危坐,

중엽 이후부턴 스스로 배운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두루마기를 입고 정자세로 앉아

 

談性說理, 株守訓詁, 不屑爲詩文.

본성(本性)과 이치를 말하고 훈고학에만 얽매여 시나 문장 짓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故經學與文章, 判爲二道, 此一瘼也.

그러므로 경학과 문장이 판연히 두 가지 길이 되었기 때문에 이것이 하나의 병통이다.

 

 

 

중기 이후론 과거만을 위한 글쓰기가 성행했다

 

朝廷, 以科第取士,

조정에서 과거로 선비를 선발한 것은

 

, 有後周人雙冀, 指授以詩,

고려 때 후주 사람인 쌍기가 시부와 표책과 의의로 지시하여 가르쳤기 때문이니,

 

此所謂科文六體也.

이것이 소위 과거 문장의 여섯 문체다.

 

朝鮮, 亦繼用此法.

조선에서도 또한 고려의 과거법을 계승하여 썼다.

 

而詩賦表, 篇有定句, 句有定字.

시와 부와 표문은 한 편에 정해진 구절이 있고 구절엔 정해진 글자수가 있다.

 

策義疑, 行數有限, 體裁有段,

책문과 의의는 행수에 제한이 있고 체재엔 구분이 있으니,

 

皆各先定排寘, 不得違越.

모두 각각 먼저 배치할 것을 정하고 어겨선 안 된다.

 

而中葉以前, 猶不甚拘礙,

중엽 이전엔 오히려 구애됨이 심하지 않아

 

先觀其製作之善否;

먼저 쓰여진 글이 좋은지 아닌지를 보았었다.

 

中葉以後, 文章漸不逮前.

그러나 중엽 이후엔 문장이 점차 전대에 미치지 못하게 됐다.

 

而赴擧者日增, 考試者,

과거를 보려는 사람이 날로 늘어가니 고시 보는 사람들은

 

先察其格式, 一毫有違, 則黜之.

먼저 격식을 살피고 터럭만큼이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내쳐지게 된다.

 

故赴擧者, 規規於守其定式,

그러므로 과거를 보는 사람들은 정해진 법칙을 지키는 것에만 급급해하고

 

惴惴於或有失法,

혹 실수라도 할까 벌벌 떠니,

 

何以盡其才而展其意乎. 此又一瘼也.

어찌 재주를 다하고 뜻을 펼쳐낼 수 있겠는가. 이것이 또 하나의 병통이다.

 

 

 

당파(黨派)의 극성으로 서로를 비난하는 풍토가 확산되다

 

一自黨論之劇, 士習, 以傾軋攻擊爲,

한번 당론이 심해짐으로부터 선비들이 익혀 모함하고경알(傾軋): 남을 함정에 빠뜨림. 공격하는 것으로 급선무를 삼았고,

 

一有聲譽, 衆輒抑之.

한 번 명성이라도 나면 여럿이 갑자기 그를 억누르기까지 했다.

 

自是, 文章之士, 多在於草野巖穴之間;

이로부터 문장하는 선비들이 대부분 초야와 동굴 속에 있게 되었고

 

而朝廷之上, 鮮有可觀焉, 此又一大瘼也.

조정의 위에서는 볼 만한 게 드물어졌으니 이것이 또한 하나의 큰 병통이다.

 

 

 

박지원과 정약용과 이광려, 능력은 출중했지만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해 문학 풍조를 바꾸지 못하다

 

正祖, 正祖, 經學文章,

정조의 시기에 이르러 정조는 경학과 문장으로

 

爲帝王家刱有.

제왕의 집안을 창조해낼 수 있다고 여겼다.

 

故名士輩出, 朴趾源丁若鏞李匡呂之流,

그러므로 명사가 배출되었으니 박지원과 정약용과 이광려의 무리들이

 

以曠前絶後之才學, 起於文運中衰之餘.

공전절후(空前絶後)한 재학으로 문장의 운세가 쇠미한 나머지에 일어났다.

 

文酷似韓愈, 詩直接杜甫,

박지원의 문장은 한유와 흡사하고 이광려의 시는 두보에 곧장 접해 있으며

 

長於經濟, 故不專工于詩文.

정약용은 경제에 장점이 있었기 때문에 온전히 시문만을 전공하진 않았다.

 

而其出於筆下者, 字字皆可讀,

그럼에도 붓 아래에서 나온 것들이 글자마다 모두 읽을 만하니

 

眞皆命世之才.

참으로 모두 일세에 뛰어난 재주로다.

 

而亦爲時議所沮, 俱不得通顯,

그러나 또한 당시의 의론에 막힘을 당해 모두 통달하고 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故其力不能挽古而變今也.

힘으로 옛것을 끌어당겨 지금을 변화시킬 순 없었다.

 

此三人, 皆不着袍危坐,

이 세 사람은 모두 두루마기를 입거나 정자세로 앉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故俗人不知其爲經學者, 是尤可慨也.

일반 사람들이 경학자임을 알지 못했으니 이것이 더욱 슬퍼할 만한 것이다.

 

 

 

정약용 이후 문학과 시에 뛰어난 이들도 근본은 경학에 두었다

 

然自是, 文風稍振,

그러나 이때로부터 문풍이 조금 진흥되었으니

 

文而洪良浩以博雅, 金邁淳以蒼健,

문장에선 홍양호로 인해 박식하고 우아해졌고 김매순으로 인해 우아하고 굳건해졌으며

 

洪奭周以醇正, 宗匠文苑;

홍석주에 이르러 순수하고 바르게 됐으니 문단의 으뜸이었고

 

詩而所謂四檢書, 始祛偏邦固陋,

시에선 소위 네 명의 검서관四檢書: 朴齊家·柳得恭·李德懋·徐理修)이 처음으로 치우친 나라의 고루함을 제거했음에도

 

而猶未盡善.

오히려 지극히 좋지 못했다.

 

申緯, 而獨步當時, 號爲大家.

신위에 이르러 당시에 독보적이었기에 대가라 불리었다.

 

此諸家, 皆以文章自命,

이러한 여러 작가들은 모두 문장으로 스스로 인정했지만

 

而其學必本之乎經也.

학문은 반드시 경학에 근본하고 있었다.

 

 

 

한문 폐지론이 나오고 있지만 한문은 필요하다

 

嗣後百年來, 作者, 非無可稱, 而氣力稍稍降矣.

그 후 100년 이래로 작자들이 칭송할 만한 게 아님이 없었지만 기력은 점점 하강해갔다.

 

(中略)

 

此爲最近之變遷興替者也.

이것이 최근에 변천하고 교체된 것이로다.

 

一自西潮東來, 廣開學校,

한 번 서양의 학문이 점점 동양으로 오게 되자 두루 학교가 열었고

 

專治科學.

온전히 과학을 다스리게 되었다.

 

往往有漢文無用之說, 小學則幷廢漢文之敎科,

그러자 이따금 한문무용론이 나왔고 소학교에선 한문 교과를 함께 폐지하자고 하며

 

人皆曰: “漢文種子絶矣.”

사람들은 모두 한문이란 종자는 멸절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余則以爲不然.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秦始皇, 坑儒焚書,

옛날에 진시황이 분서갱유를 했고

 

至有挾書偶語之律,

협서율挾書律: 秦始皇 34년에 李斯의 말을 채택하여 민간에는 醫藥, 卜筮, 種樹 등에 관한 서적 이외의 서적은 소장하지 못하도록 금한 律令을 가리킨다.과 우언기시偶語棄市: 秦始皇이 천하를 통일한 뒤 백성들을 무식하게 만들기 위하여 책을 불태우고 선비를 죽였는데, 옛일을 옳게 여기고 현재를 그르게 여기는 자는 滅族하였으며, 서로 마주 대하고 詩書를 말하는 자는 처형하여 저자에 버린 것을 말한다.의 법을 만듦에 이르렀지만

 

隨何陸賈叔孫通之輩, 接武而起矣.

수하와 육가와 숙손통의 무리들은 병기를 맞대고 일어났었다.

 

今人雖欲廢漢文, 其可得乎.

지금 사람들이 비록 학문을 폐지하고자 하나 할 수가 있겠는가.

 

且功令之束縛者, 已永廢矣;

또한 과거공부에 속박된 사람들이 이미 영원히 폐지되었고

 

黨派之沮軋者, 已盡消矣;

당파로 모함하는 사람들이 이미 모두 사라졌으며,

 

着袍危坐之俗學者, 皆無效矣.

두루마기를 입고 정자세로 앉았던 속세의 학자들도 모두 본받을 게 없어졌다.

 

凡爲文學界障碍者, 廓已掃除,

모든 문학세계에 장애가 되는 것들이 환하게 이미 제거되었으니

 

從玆以後, 必眞經學, 眞文章,

이로부터 이후로 반드시 참된 경학과 참된 문장이

 

出而有十培於先輩者也.

나올 것이고 선배들보다 10배나 있게 될 것이다.

 

又況時運變遷, 有替則有興耶.

또한 하물며 시운은 변천하니 바뀐다면 흥함이 있을 것이다.

 

余拭目以俟之. 朝鮮詩文變遷

나는 눈을 비비고 기다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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