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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시대 서사시 - 후기. 오랜 세월 동안 제생과 함께 만들다 본문

한시놀이터/서사한시

이조시대 서사시 - 후기. 오랜 세월 동안 제생과 함께 만들다

건방진방랑자 2021. 8. 2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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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오랜 세월 동안 제생과 함께 만들다

 

나는 사람이 사는 이야기라면 보고 듣기 좋아한다. 내가 공부하는 한문학 유산(遺産)에서도 사람이 사는 이야기만 나오면 흥미를 느끼고 챙기는 편이다. 이조시대 서사시(李朝時代 敍事詩)는 이런 개인적 취향과 직접 관계된 것이다.

 

한문학, 그 중에도 개인 서정을 읊어대는 양식으로 여겨지던 한시 속에서 서사시의 발견은 당초에 경이로움이었다. 그 첫 만남은 허균(許筠)노객부원(老客婦怨)이었다. 나는 이 작품을 유력한 근거로 들어 우리 한문학에서 서사시의 존재 가능성을 짚어본 바 있었다. 한국한문학연구회를 결성한 직후 제1회 한문학월례발표회 자리에서였으니 그때가 19755월이었다. 16년 전 일이다.

 

처음 관심을 두었던 때로부터 강산도 변하는 세월을 넘겨서야 이 책자를 엮어낸다. 딱히 계획을 세워놓고 진행한 일은 아니니 늑장을 부렸다할 것도 없다. 그저 유의해서 선인들의 문집들을 들추어보다가 눈이 뜨이는 대로 수습하는 한편, 대학원의 전공 제생(諸生)들과 작품의 독해를 갖고 의견을 나누었다. 책의 부피는 16년의 나이테로 견주면 얄팍하지만 그래도 나 자신, 그리고 나의 동학들의 한문학에 대한 인식을 넓힌 자취의 축적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서사시는 아무래도 시의 본령으로 간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시의 전통에서 서사한시만 중시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깊은 정감과 아름다운 언어로 정제된 저 서정시의 다양의 실재는 물론 값진 것이다. 하지만 서사한시를 주목할 이유 또한 충분히 있다. 우리의 당대문학은 현실주의의 방향으로 정립하고 있다. 이 현실주의 문학은 자기의 과거에 뿌리를 튼튼히 내려야하다고 본다. 연구자는 우리의 문학유산 속에서 현실주의 문학의 풍부한 자산을 발굴해내야 할 터인데 지금 이 서사한시는 그 귀중한 부분이다.

 

세상사가 대개 그렇듯 이 책자는 혼자의 공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여러모로 깃들어 있다. 번역이 전공 제생과의 독해를 거쳐 이루어진 경우, 제생들이 맡아 해온 초역을 함께 검토하는 절차를 거쳤었다. 작품을 찾아내는 과정은 막막한 일이었다. 대부분은 나 자신이 일차 자료에서 찾아낸 것이지만 다른 분들이 엮은 책이나 연구 논문에서 정보를 얻은 것도 없지 않다. 그리고 자료를 직접 소개받은 것도 있다. 조신의 제심원(題深院)은 진재교, 안수의 피병행(疲兵行)과 강이천의 남성관희자(南城觀戱子)는 박희병, 허격의 2편과 최성대의 이화암노승행(梨花庵老僧行)은 이종호, 홍신유의 여러 작품은 강명관, 김두열의 옥천정녀행(沃川貞女行)은 김혈조. 이처럼 여러 동학들이 나의 작업을 위해 제공한 것이다. 북한 학계의 성과물인 조선고전문학선집 중에 한시선집을 늦게야 얻어 보았는데 번역의 방식에서 배운 바가 있다. 이민성의 숙봉산동촌(宿鳳山東村)과 이광려의 양정모(良丁母)는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정약용의 여러 작품들은 송재소 교수가 편찬한 다산시선을 참작하였다.

 

번역ㆍ주석의 작업에서 풀리지 않은 대목이 적지 않았다. 오역과 미상을 극소화하려고 애는 썼지만 자신하지는 못한다. 우전(雨田) 신호열(辛鎬烈) 선생께는 마지막 해결처로 삼고 종종 여쭈어보았다. 벽사(碧史) 이우성(李佑成) 선생께도 의난처와 함께 작품의 존발(存拔)에 고견을 들었다.

 

이조시대 서사시는 여러분들에게 빚을 지고 있지만 선발ㆍ번역ㆍ주석ㆍ해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나의 책임이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해서 빠뜨린 좋은 작품이 있을지도 모른다. 모두 제현의 질정을 바라 마지않는다.

 

끝으로 이 책의 간행을 흔쾌히 맡은 창작과 비평사, 난감한 일을 마다 않고 추려 주신 정해렴 선생께 감사를 드린다.

 

 

1991년을 보내는 마지막날에

임형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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