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을 무시하는 사회의 단면을 보다
일을 마치고 친구분 집에 가서 남은 통닭과 닭도리탕을 먹었다. 그런 모든 순간들이 시골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행복한 광경이다. 일도 해보고 민가에 들어가 밥도 먹고 그분들이 나누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여과 없이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제야 여행다운 여행을 하고 있다. 우연에 타고 노닐며 그 행복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농사 짓는 사람에게 퇴직금을 줘야 해
친구분은 이장님 댁 아들들을 보고 부모님 잘 모시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렇게 오순도순 모여 함께 일하러 오는 모습이 보기 좋으시단다. 그러면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도 퇴직금을 줘야 해”라는 말을 하셨는데, 그 말엔 뼈가 있었다. 갈수록 농사를 짓고 자식을 키우며 사는 게 힘이 든단다. 그렇다고 사회적으로 농업인을 존중하거나 대우해주는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다.
조선시대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하여 농업을 선비 다음으로 여겼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굴원의 「귀거래사(歸去來辭)」라는 작품도 관직에 혐오를 느낀 지식인이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텃밭을 가꾸며 사는 이상향으로서의 농촌만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그 글엔 농촌의 서글픈 현실이 들어설 공간이 없다. 차라리 그보단 정약용의 「애절양(哀絶陽)」이란 시가 훨씬 현실의 농촌 분위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농촌의 문제는 단순히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농촌은 도시를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농촌은 한 사회의 밑바탕이기 때문이다. 왠지 친구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우리네 농촌의 아픔을 보는 것만 같아 가슴 한 구석이 짠해져 왔다.
농업인들이 시름시름 앓고 있다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 살 수 없다는 절규는 울림이 되어 가슴 한구석에 남았다. 그건 체념이었고 자포자기(自暴自棄) 같은 심정이었다. 열심히 일하는 농민들이 다시 대접받는 날이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단순히 경제논리만을 따져 농민들을 볼모로 삼는 한ㆍ미 FTA 추진단이 바로 이런 체험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들에게 농사와 자동차 산업은 돈이란 단일 가치로 치환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 미국과 교류할 때 어떤 분야에서 돈이 더 되느냐만을 고려하여, 돈이 되지 않는 분야는 넘겨줘도 된다고 생각한다. 자동차 산업은 돈이 되는 산업이고, 농업은 경제적 손해만 끼치는 산업이니, 미국 농산물의 수입은 허용해주고, 자동차 산업을 수출함으로 손해를 메우려고만 한다.
그때 농민들이 피해를 본다고, 우리의 식량주권이 침해당한다고 아무리 얘길 해봤자 경제논리에 빠진 사람들은 ‘괜한 시비거리’로만 듣는다. 자동차 수출을 통해 얻은 이익을 선진농법 개발에 투자하면 된다고, 농민들이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농업을 완전히 내팽게 치며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그저 시혜적인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했다고 떠드는 꼴이 가관이다.
시골의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관료가 되고, 도시의 혜택만을 누린 사람들이 정책 입안자가 되니 사회는 망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회는 기본이 바로 서지 않은 사회이니 희망이 없을 수밖에 없다. 이날 저녁에 들은 아저씨의 절규는 도시에서 자라오며 시골에 대해 무관심하기만 했던 나에겐 하나의 화두로 들렸다.
다시 홀로 서기
6시가 좀 넘어서야 이장님 댁으로 돌아왔다. 깨끗이 씻고 소파에 앉아 이장님 막내딸과 신나게 놀았다. 그저 하루 지났을 뿐인데 꼬마 아가씨와 이렇게 친해졌다. 이런저런 유치한 장난을 하며 같이 껄껄대며 웃고 놀다가 느즈막하게 차려진 저녁을 먹고서야 경로당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틀간,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행을 한다면 이래야 한다’는 생각에 가장 적합한 순간이었던 셈이다. 내일부턴 다시 이곳을 떠나 혼자가 된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돈다. 혼자가 더 편하고 익숙해진 줄만 알았는데 그것만도 아니었나보다. 갑작스런 인연이었지만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것 같은 친근함이 있어서 더 그랬던 거 같다. 피곤함보다 아쉬움이 더 짙게 피어올랐다. 오죽했으면 어제 초평으로 향하던 그 늦은 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었을까? 언젠가 다시 이 분들을 보게 될 날도 있을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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