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형술쌤이 초대한 한시의 세계에서 한바탕 춤을 추다
긴 시간 돌고 돌아 다시 한문 임용을 준비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는 걸 느끼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단재학교에서 교사로서의 경험과 무수한 얘기들을 썼던 글쓰기가 한문공부를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교사 경험이나 글쓰기 경험은 학문을 하는 진정성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사태를 제대로 보려는 진지한 마음이 있는 것이고, 그걸 그 누구의 말이 아닌 나의 말과 나만의 이해방식으로 흡수하는 것이니 말이다.
▲ 웰 컴 투 더 월드 오브 한시 ~ 그 매력에 빠져보실까요^^
한문과 마주 보고, 한문과 한바탕 어우러지다
예전엔 무언가를 고민하기도 전에, 뭘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모든 게 나에게 닥쳐 있었다. 인간을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 생각하는 것마냥, 이미 이 세상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무작정 수용해야만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 것과 똑같다. 그러니 왜 읽어야 하는지 생각도 해보지 않은 『논어』, 『맹자』와 같은 어렵디 어려운 책을 읽어야 했고 한시사와 같은 통시적(通時的) 시각에서 한시의 흐름을 꿰뚫어 놓은 문학사를 통째로 외워야 했다. ‘어떤 의미 따윈 필요 없다. 그저 임용에 합격하기 위해서 해야 한다’는 외재적 목적만을 버겁게 붙잡은 채 참으며 공부했야만 했다. 그러니 내 나름대로는 ‘즐겁게 공부하자’, ‘한문을 알아가니 즐겁다’고 되뇐들 그건 헛된 구호에 그치고 말았던 것이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다시 임용공부를 해보겠다고 전주에 왔을 때 가장 크게 걱정됐던 것도 바로 그거였다. 한문임용에서 처절한 패배를 했기에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위에서 밝혔다시피 시험의 무게에, 한문의 중압감에 짓눌려 그 시기를 지내왔던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다시 그 속으로 나를 몰아세우고 밀쳐 넣는 건 자살행위가 아닐까?’하는 걱정이 드는 건 당연했다. 그건 단순히 걱정이라기보다 왜 하필 이 시기에 다른 꿈을 맘껏 꿔도 되는 이 시기에 회귀하려 하는가에 대한 의문 제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맘을 먹기 전까지는 끙끙 앓았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임용공부의 길로 다시 들어선 지금은 그때의 수많은 고민들과 걱정들이 ‘해보지도 않은 사람의 기우(杞憂)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에 충분했다. 6년 간 단재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며 쌓인 경험들, 그리고 여러 글을 쓰며 갈고 다듬던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됐으니 말이다. 이럴 때마다 다시 한 번 더 느끼게 된다. ‘세상엔 쓸 데 없는 경험 따윈 없다’는 생각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지를.
▲ 6년 간의 단재학교의 교사 생활과 글쓰기 작업이 임용공부의 밑천이 될 진 생각도 못했다.
형술쌤 한시의 세계로 들입다 초대하다
더욱이 이렇게 한문과 한껏 어우러져 놀 수 있도록 도와준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바로 『소화시평』 스터디가 그것이다. 작년에 새 교수님 두 분이 부임하면서 한문교육과 내에선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바로 교수님이 진행하는 『소화시평』 스터디가 열렸다는 것이다.
학생들끼리 하는 스터디야 자연스럽게 각자의 의견을 말하고 내용을 정리하면 되지만 교수님과 함께 하는 스터디는 그렇지 않다. 강의식으로 이끌어가는 경우가 태반이고 교수님이 하는 말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무조건 받아들이고 이해해야만 하니 말이다. 그래도 새로운 교수님이 왔다고 했을 때 교수님이 진행하는 스터디는 어떨지, 더욱이 한시 같이 난해한 과목의 경우엔 어떨지 기대가 됐다.
스터디에 대한 소감들은 이미 여러 군데서 밝힌 적이 있으니, 여기선 길게 얘기하진 않겠다. 단지 교수님이 하는 스터디인데도 학생들끼리 하는 스터디처럼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고 그것을 진지하게 생각해주고 답해주는 모습, 그리고 한시를 분석해야할 대상이 아닌,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대상이 되도록 이끌어주는 모습이 각별하게 느껴졌다.
나의 경우 한시, 물론 한시든 국문시든 이미 시에 대한 선입견을 상당히 지니고 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시는 분석의 대상이었고 정답을 맞춰야하는 정답 찾기의 대상이었지 한 번도 감상이나 느낌, 그리고 왜 작가는 이 얘기를 썼는지 서술해야 할 대상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한문 자체도 매우 난해하기 때문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는데 더욱이 한시는 짧은 구절임에도 해석조차, 그리고 뭘 말하고 싶은지조차 명료하지가 않아 늘 고통만 안겨주던, 그래서 되도록 피하고 싶었던 영역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분명한 건 ‘소화시평 스터디’는 한시를 전혀 다르게 느끼게 했다는 것이고, 한시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한시가 재밌어지니, 연쇄적으로 한문 자체가 즐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 소화시평 스터디와 그로 인해 만난 인연들.
인용
'연재 > 배움과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형술 한시 특강 - 3. 훅하고 들어가 좌중을 압도한 16세기 한시 이야기 (0) | 2021.12.19 |
---|---|
김형술 한시 특강 - 2. 건빵이 한시특강을 듣는 이유 (0) | 2021.12.19 |
김형술 - 조선후기 한시 쇄신의 방향과 주자학 목차 (0) | 2021.12.19 |
조선후기 한시 쇄신의 방향과 주자학 - 9. 시(詩)의 실상: 情의 울림② (0) | 2021.12.19 |
조선후기 한시 쇄신의 방향과 주자학 - 8. 시(詩)의 실상: 情의 울림① (0) | 2021.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