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상간
Incest
그리스의 도시 테베(Thebes)의 왕은 아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리라는 신탁을 받고 고민하다가 갓난 아들을 산에 버린다. 그 아들은 농부에게 구출되어 다른 도시에서 자란다. 청년으로 성장한 그 역시 장차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리라는 비극적인 신탁을 알게 된다. 그는 이 비극적 운명을 피하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결국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 자살로도 자신의 죄를 씻을 수 없다고 여긴 그는 스스로 눈을 멀게 하고 딸이자 동생인 안티고네와 함께 참회의 여행을 떠난다.
잘 알려진 오이디푸스의 신화인데, 이와 같은 근친상간(近親相姦)에 관한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오늘날에는 근친상간이 관습적으로 터부시(taboo視)되고 제도로 금지되어 있지만 이는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근친상간의 점잖은 표현인 근친혼은 세계 어느 역사에나 흔히 있었다. 유학을 통치 이념이자 생활의 윤리로 삼았던 우리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신라 초기에 성골(聖骨)의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왕족 내의 근친혼이 많았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유학의 기본 이념이 도입된 뒤에도 근친혼을 배제하는 분위기는 없었다. 7세기에 신라의 김춘추(金春秋)는 김유신의 누이를 아내로 맞고 김유신(金庾信)에게 딸을 시집보내 두 사람은 처남-매부이자 장인-사위 관계가 되었다【비슷한 시기에 중국 당나라에서는 태종이 후궁으로 들였던 측천무후를 그의 아들인 고종이 아내로 삼았는가 하면, 당 현종은 정식 며느리로 들어온 양귀비를 빼앗아 비로 삼았다】. 또 10세기에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은 고려를 건국한 왕건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에게 사촌누이를 시집보냈고 그 보답으로 왕건은 경순왕에게 자기 딸을 준 일도 있었으며, 고려의 5대 왕인 경종(景宗)은 친자매를 둘 다 정비(正妃)로 삼기도 했다.
처음부터 성리학을 국가의 이념으로 삼은 조선의 경우에도 그런 관습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조선의 5대 왕인 문종(文宗)이 죽고 어린 단종(端宗)이 즉위했을 때 단종의 삼촌인 수양대군(首陽大君)은 동생 안평대군(安平大君)과 실권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 당시 그는 안평대군이 숙모(세종의 동생으로 젊어서 죽은 성녕대군의 아내)와 정분을 통했다고 비방했는데, 진상은 알 수 없지만 왕실에도 이런 루머가 돌 정도였다면 일반 사회에서도 근친혼의 관습이 드문 일은 아니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성리학이 조선의 지배 이데올로기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윤리로 자리 잡은 것은 16세기 초 조광조(趙光祖)가 『여씨향약(呂氏鄕約)』을 널리 보급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왕실은 물론 일반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으로 근친혼을 금기시하게 되었다. 성리학의 근친혼에 대한 거부감은 심지어 동성동본(同姓同本)의 결혼을 법으로 금지하는 세계사적으로 보기 드문 강박증적 관념까지 낳았다. 1997년에야 비로소 헌법재판소에서 동성동본의 결혼 금지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결이 내려져 이 문제는 해결된다.
그 반면에 비공식적인 근친혼과는 달리 근친상간을 금지하는 사회적 원칙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며, 문명화되지 않은 원시 사회에서도 일반적이었다. 프랑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는 현존하는 다양한 인간 사회들을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 근친상간의 금지가 사회를 이루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 Strauss, 1908~2009)가 말하는 근친상간은 친족적인 의미보다 공동체적인 의미가 강하다.
근친상간이 금지되어 있다면 공동체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자손을 번식시키려면 남자와 여자가 결합해야 하는데, 공동체 내의 결혼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반드시 다른 공동체와의 교류가 필요하다. 이 교류는 곧 여자의 교환으로 나타난다(모계 사회라면 남자로 교환이 될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이렇게 결혼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가 인간사회의 보편적인 특징이라고 말한다. 두 개 이상의 공동체가 여자를 주고 받음으로써 친족 관계가 형성되고 이것이 곧 사회구조의 기초가 된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3~5세의 유아기 심리를 설명하면서, 아들은 아버지를 적대하고 어머니에게 애정을 느끼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진다고 주장했다【유아기의 딸이 겪는 그 반대 심리를 가리키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후대의 학자들이 만든 개념이다】. 그가 말하는 것은 무의식적 심리 과정이므로 자신에게 과연 그런 적이 있었던가 굳이 기억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근친혼이 근친상간의 역사적 표현이라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근친상간의 심리적 표현에 해당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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