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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Ⅳ. 말과 길 - 3. “사물들은 우리가 그렇게 불러서 그런 것처럼 보인다[物謂之而然].”, 현실주의에 저항하는 법 본문

고전/장자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Ⅳ. 말과 길 - 3. “사물들은 우리가 그렇게 불러서 그런 것처럼 보인다[物謂之而然].”, 현실주의에 저항하는 법

건방진방랑자 2021. 7. 3.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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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현실주의에 저항하는 법

 

 

특정한 개념 체계를 통해서 다양한 세계들이 다르게 분절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해석된 세계들 너머로 하나의 유일한 세계가 실재하는 것은 아니냐는 반문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반문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역사적 존재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인간은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로 되어가는 이념적 존재다. 물론 인간이 특정한 공동체 속에 던져져서 이 특정한 공동체의 규칙을 맹목적으로 배운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규칙이든 인간을 철저하게 규정할 수는 없다는 점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인간은 이 규칙을 문제삼고, 이 규칙을 넘어서서 새로운 규칙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이 점이 인간이 지닌 역사성을 설명해 준다.

 

우리는 현실 세계가 특정한 관념들과 이념들로 구성된 세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의 많은 현실주의자들은 세계화 시대에 어울리게 영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많은 대학들과 회사들도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에게 미국인 수준의 영어 능력을 요구하고 있고, 그래서 많은 젊은 주부들도 경쟁적으로 자신의 아이들에게 영어를 조기에 숙지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나 특정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언어의 분류체계가 함축하는 특정한 세계관 또는 삶의 규칙을 배운다는 것을 함축한다. 일제시대에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미명으로 이루어진 창씨개명과 일본어 교육을 강조했던 그 당시 식민지 지식인들에 대해서, 현재의 많은 지식인들은 그들을 친일파라고 규정하고 그들의 반민족적 행위를 개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거의 모든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행하고 있는 모습은, 언젠가 우리가 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친미파라고 규정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어느 명문 사립대학의 총장은 영어로 강의할 수 있는 교수를 채용한다고 의기양양하게 떠들고 있고, 또 어느 명문 공대 대학원은 아예 수업을 영어로 진행한다고 자랑하고 있다. 또 민족사관학교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어느 사립 고등학교는 많은 학생들을 미국의 명문대에 직접 진학시키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친일이 자명한 현실이었다면, 지금에는 친미가 자명한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현실주의자들은 특정한 관념체계만을 유일한 현실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관념론자라고 할 수 있다.

 

고착화된 관념론에 불과한 이른바 현실주의라는 것에 저항하기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관념(= 이념)을 고안하고 이것에 어울리는 새로운 현실을 창조해야만 한다. 바로 여기에 철학의 존재 이유가 있다. 철학이 이런 새로운 이념의 창조행위가 아니라면 무엇일 수 있겠는가? 따라서 철학은 주어진 현실을 정당화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철저하게 비판적인 사유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의 위기, 좁게는 철학의 위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기존의 제도권 내의 인문학과 철학이 창조의 작업을 한 번이라도 수행했던 적이 있었는가? 우리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나라에 인문학이나 철학이 존재했던 적이 없었다고 말해야 한다. 이런 솔직한 술회(述懷)로부터 우리의 철학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보조국사 지눌(知訥)의 말처럼 우리는 자신이 넘어진 자리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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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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