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룡(鄭士龍, 1491 성종22~1570 선조3, 자 雲卿, 호 湖陰)은 관각(館閣)의 큰 솜씨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이른바 ‘호소지(湖蘇芝)’ 삼가(三家) 중의 한 사람이다. 이들은 모두 문형(文衡)의 영예를 누리었지만 그들이 재능을 발휘한 것은 시(詩)이기 때문에 시(詩)로써 이름 높은 세 사람의 문형(文衡)을 골라 ‘호소지(湖蘇芝)’라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시(詩)를 할 때에는 이행(李荇)과 경향을 같이 하였으며 생활인으로서도 이행(李荇)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이행(李荇)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사사로이 시작(詩作)을 주고 받기도 하였으며 이행(李荇)의 시(詩)를 스스로 간행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칠언율시(七言律詩)에 뛰어나 그의 득의구(得意句)도 모두 칠율(七律)에 있다. 김창협(金昌協) 『농암잡지(農巖雜識)』 외편 33의 말과 같이 호소지(湖蘇芝) 삼가(三家) 가운데 풍격(風格)은 노수신(盧守愼)을 따르지 못하지만 그의 조직(組織)ㆍ단련(鍛鍊)은 이상은(李商隱)의 서곤체(西昆體)를 방불케 한다.
정사룡(鄭士龍)의 시편(詩篇)은 시선집(詩選集)에서 뽑아준 것만으로도 40편에 이르고 있어 그는 선문가(選文家)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시인이기도 하다. 그가 제작한 명편(名篇)들도 모두 칠율(七律) 중에 있거니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기회(記懷)」, 「황산전장(荒山戰場)」, 「후대야좌(後臺夜坐)」도 모두 칠율(七律)이며 특히 「후대야좌(後臺夜坐)」는 평가(評家)들의 화제에 자주 올랐던 작품이다.
기작(奇作)으로 널리 알려진 「기회(記懷)」는 다음과 같다.
四落階蓂魄又盈 | 뜰 앞 명협초 떨어지니 달이 또 차는데 |
悄無車馬閉柴荊 | 말 탄 사람 사립문을 드나들지 않네. |
詩書舊業抛難起 | 시서(詩書) 읽던 옛 공부 한번 놓으면 다시 하기 어렵고 |
場圃新功策未成 | 전가(田家)의 새로운 일도 생각대로 되지 않네. |
雨氣壓霞山忽瞑 | 우기(雨氣)가 노을을 눌러 산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
川華受月夜猶明 | 시냇물 달빛 받아 밤인데도 훤하네. |
思量不復勞心事 | 생각하는 일 이제는 심사(心事)를 또다시 수고롭게 하지 못하니 |
身世端宜付釣耕 | 이 몸 오직 밭 갈고 낚시질이나 해야지. |
허균(許筠)은 『성수시화(惺叟詩話)』 35에서 이 작품을 천년(千年) 이래의 기작(奇作)이라 하였으며 특히 “우기압하산홀명 천화수월야유명(雨氣壓霞山忽瞑 川華受月夜猶明).”은 신(神)의 도움이 있었을 것이라 하며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짜임새와 다듬은 솜씨는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는 그의 것임에 틀림없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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