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신(金得臣, 1604 선조37~1684 숙종10, 자 子公, 호 柏谷)은 시화서(詩話書) 『종남총지(終南叢志)』를 저술한 시론가이며 시인이다.
그는 정두경(鄭斗卿)ㆍ임유후(任有後)ㆍ홍석기(洪錫箕)ㆍ홍만종(洪萬宗) 등 당대의 시인들과 망년의 사귐을 맺었다. 그가 교유했던 이들이 대체로 당시(唐詩)를 숭상하였거니와 그 자신도 또한 당풍(唐風)에 경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의 시를 평할 때의 기준이 당시에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그는 타고난 천재로 시를 쓴 시인이기보다 후천적인 단련으로 좋은 시를 남긴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독수기(讀數記)」에서 「백이전(伯夷傳)」을 일억독(一億讀)했다고 하고 자신의 서재를 ‘억만재(億萬齋)’라 이름 붙였다 하거니와, 그를 곁에서 본 홍만종(洪萬宗)도 서슴없이 그의 재질이 노둔하다고 『소화시평(小華詩評)』 권하 84에서 증언하였다[金栢谷得臣, 才稟甚魯, 多讀築址, 由鈍而銳].
그러나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평생 시업(詩業)에 정진하였으며, 꾸미고 단련하는 일에 힘썼다[金柏谷得臣平生工詩, 雕琢肝腎, 一字千鍊, 必欲工絶. 『수촌만록(水村漫錄)』].
이렇게 하여 그의 시는 『소화시평(小華詩評)』 권하 84에선 “매우 당시와 핍진하다[極逼唐家]”라 했고, 『수촌만록(水村漫錄)』에선 “어찌 당나라 시인에게 사양하리오[何讓唐人]?”이라 했으며, 『동시화(東詩話)』에선 “모두 당나라 시인의 기풍과 격조가 있다[皆有唐人氣調].”라고 하여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의 시작(詩作) 가운데서도 특히 「전가(田家)」(五絶)와 「목천도중(木川途中)」(七絶)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籬弊翁嗔狗 呼童早閉門 | 울타리 무너져 늙은이가 개를 꾸짖으며, 아이 불러 일찍 문을 닫게 하네. |
昨夜雪中跡 分明虎過村 | 어젯밤 눈 속에 발자욱 보니, 분명히 호랑이가 마을을 지났으리라. |
『백곡집(柏谷集)』에는 위와 같이 기록하고 있으나, 『대동시선』에는 전구(轉句)와 결구(結句)의 ‘작야(昨夜)’와 ‘분명(分明)’의 자리가 서로 바뀌어 “분명설중적 작야호과촌(分明雪中跡, 昨夜虎過村)”으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은 측기식(仄起式)으로 되어 있으므로 근체(近體) 율격(律格)에서 보면 『대동시선』의 기록이 옳다. 임방(任埅)은 『수촌만록(水村漫錄)』에서 이 시와 손필대(孫必大)의 「전가(田家)」를 비교하고, 시골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핍진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김득신의 시가 더 나으며 아마도 김득신의 시 가운데서도 가장 훌륭한 시일 것이라 칭찬하였다[孫必大田家詩云: ‘日暮罷鋤歸, 稚子迎門語. 東家不愼牛, 齕盡溪邊黍’ 金柏谷得臣亦有田家詩云: ‘籬弊翁嗔狗 呼童早閉門, 昨夜雪中跡 分明虎過村兩’ 兩作俱絶佳, 莫上莫下, 睡村李子三謂余曰: “柏谷絶句, 世以爲古木寒烟雲 爲絶唱,” 而余則曰: “籬弊翁嗔狗爲勝, 以其模寫情境逼眞故也.” 子三之言信然.].
전인(前人)들의 평가에서처럼 공을 들인 흔적은 역력하지만, 드날림이 없는 아쉬움은 어찌하지 못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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