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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정궁인굴씨 비파가(崇禎宮人屈氏 琵琶歌) - 해설. 예인으로서의 굴씨를 형상화하다 본문

한시놀이터/서사한시

숭정궁인굴씨 비파가(崇禎宮人屈氏 琵琶歌) - 해설. 예인으로서의 굴씨를 형상화하다

건방진방랑자 2021. 8. 2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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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예인으로서의 굴씨를 형상화하다

 

이 시는 명의 마지막 황제의 궁녀로 유락하여 마침내 우리나라에 와서 죽은 굴씨를, 그의 유물인 비파에 얽힌 이야기로 엮은 것이다.

 

굴씨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정재륜(鄭載崙)한거만록(閒居漫錄)에서 기록을 남긴바, 이로부터 그의 사적이 차츰 드러나게 되었다. 한거만록에 임창군(臨昌君) 이혼(李焜)이 굴씨를 위해 지은 묘지(墓誌)가 인용되어 있으므로 그 일부를 여기에 소개한다.

 

 

()는 성이 굴씨로 중국 소주부(蘇州府) 소천현(蘇川縣) 사람이다. 7세에 뽑혀서 궁중으로 들어와 효순(孝純) 유태후(劉太后)를 모셨으니 태후는 곧 회종(懷宗)황제의 생모다. 숭정 갑신년(1644) 3월에 유적(流賊)이 황성을 함락하더니 이윽고 청인이 유적을 섬멸하고 눌러앉아 수도로 삼았다. 이때 우리 소현세자는 심양에 볼모로 있었던바 청인은 굴씨를 세자관으로 보냈던 것이다. 드디어 세자의 고면(顧眄, 관심을 받았다. 즉 관계를 맺었음을 뜻함)을 입었으니 그때 나이 22세였다.

 

그해 10월에 세자빈(世子嬪)이 나의 선고(先考) 경안군(慶安君)을 낳으셨는데 역시 세자관에 함께 있어서 굴씨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다 한다. 을유년(1645)에 세자께서 귀국하시매 굴씨는 따라서 우리나라로 온 것이다. 4월에 세자가 돌아가시자 굴씨는 궁중에 남아 장렬왕후를 모셔서 직품이 상기(尙記)에 이르렀다. 상기는 여관의 종6품이다. 왕후가 돌아가시자 나의 집에 나와 있으면서 나의 자녀들을 정성껏 양육하였다.

 

병자년(1696) 겨울에 내가 사신으로 연경에 갔다가 정축년(1697) 봄에 돌아와보니 굴씨는 이미 정월 초하룻날 세상을 떴다. 임금께서 관을 하사하시어 내 선고의 산소가 있는 산 안에 장사를 지냈으니 경기도 고양군의 대자동이다.

 

 

위 글의 는 글을 쓴 임창군 이혼이니 소현세자의 손자다. 굴씨의 일생을 가까이서 서술한 실록이라 하겠다. 그녀는 7세 소녀로 황궁에 들어가고 22세의 처녀로 소현세자의 잉첩이 되었는데, 1년도 지나지 못해 소현세자의 비극과 함께 고독한 신세가 되어 낯선 이국 땅에서 살다 75세로 한 많은 생애를 마친 인물이다.

 

이 굴씨의 사적에 비상한 관심을 표명한 경우로 이규상(李奎象)을 들 수 있다. 그는 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 「풍천록(風泉錄)에서 사실을 서술했으며, 따로 장남행(江南行)이란 제목의 서사시로 노래한 것이다. 강남행에서는 명나라에 대한 회고적 의리의 측면에 초점이 가 있다. 신위의 비파가역시 한거만록의 기록에 의거하였는데 굴씨가 구왕을 비꼬았다는 일화를 보충하고, 또 임종에 훗날 다행히 북벌의 날이 있게 되면 나는 그걸 보겠다. 나를 서쪽 길에 묻어다오라고 유언을 했다는 것이다. 굴씨를 반청적 형상으로 그려낸 셈이다. 한편 홍신유가 지은 굴씨사(屈氏辭)가 있다. 굴씨의 사적을 사부(辭賦)의 형식으로 표출한 것인데, 그의 기구한 인생과 향수의 정서가 애절하게 그려진다. 그런데 굴씨의 새 길들이기 재주는 강조하여 드러내면서 비파의 재주는 전혀 비치지 않고 있다. 굴씨가 비파의 예인으로 부각된 것은 지금 신위의 비파가에 이르러서다.

 

굴씨는 작고하고 백수십년의 세월이 흘러 어느덧 그가 타던 비파는 숯광에 버려졌는데, 그것을 악기로 재현한 감회를 살려서 쓴 것이 이 작품이다. 비파의 발견이 계기가 되어 굴씨의 매몰되었던 예인적 형상이 이 시에서 복원된 셈이다.

 

이 시는 물론 서사적 내용이 매우 풍부하다. 그러나 사실의 구체성을 표출하기보다 서정적 색조로 형상을 드러내는, 주로 낭만적 수법을 구사한 것이 특징이다. 고사를 많이 채용해서 문맥의 파악이 비교적 난삽한 측면도 그 특징적 수법에 기인한 현상으로 생각된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2, 창비, 2020, 497~498

 

산문 조선으로 들어온 비파 명인 굴씨의 파란만장한 삶을 남기게 된 사연
1 비파란 악기에 대해
2 고향을 떠나 조선에 온 비파의 달인 굴씨
3 후대에 되살아난 굴씨의 악기

 

 

 

 

인용

전문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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