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바람이 붑니다
이제 대붕의 등에 탈 시간입니다
통치를 받는다는 것은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리나 지혜 혹은 덕도 없는 것들에 의해 감시되고, 사찰되고, 염탐되고, 지시받고, 법적 통제를 받고, 번호를 받고, 규제되고, 등록되고, 세뇌되고, 설교를 듣고, 통제되고, 제약되고, 평가되고, 가치가 매겨지고, 검열되고, 명령받는 것이다.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 1809~1865), 『19세기 혁명의 일반 관념(Idée générale de la révolution au XIXe siè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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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子)』는 인류가 자랑하는 고전(古典)입니다. 지금 『장자』는 문자로 기록된 책들 중 교양인이 되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텍스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학교 교육을 받는 동안 우리는 고전들의 제목과 저자, 혹은 그 고전들의 개략적 내용을 익히 들어왔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누구도 고전들을 제대로, 꼼꼼히 읽어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고전도 좋고 필독서도 좋습니다.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서든 교양인의 품격을 위해서든 반드시 읽어야 하는 것이 되는 순간, 책(book)은 텍스트(text), 즉 교재(textbook)가 되고 맙니다. 감동과 재미가 없으면 언제 읽기를 멈추어도 되는 것이 책이라면, 읽기 싫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하는 것이 교재입니다. 장자도 필독서나 고전의 아이러니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을 흔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책, 국가나 사회에 쓸모가 있어야 행복해지리라는 우리의 통념을 무너뜨리는 책, 사랑과 인정을 받아야 가치 있는 삶이라는 우리의 맹신을 뒤흔드는 책이 교재로 박제되고 마니까요.
『장자』의 세계에서는 명문대에 입학하거나 스펙을 쌓으려는 젊은이들 혹은 권력이나 부를 얻은 기성세대들은 소중한 삶을 허비하는 불행한 자들, 장자가 하염없이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반대로 경쟁에서 실패했거나 낙오한 사람들은 『장자』에서 자신의 삶을 새롭게 긍정하고 시작할 힘을 얻게 됩니다. 『장자』에 등장하는 ‘거목 이야기’는 말합니다. 쓸모 있는 나무는 베여 대들보나 서까래로 사용되지만, 쓸모없는 나무는 베이지 않고 거목으로 자랄 수 있다고 말입니다. 국가나 사회에 내가 어떻게 하면 쓸모가 있을지 고민하지 말고, 나 자신에게 국가나 사회가 쓸모가 있는지 고민하라는 장자의 도전인 셈입니다. 인재(人材), 즉 체제에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격렬히 거부하자는 것! 타인의 욕망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향유하자는 것! 크게는 국가나 사회, 작게는 회사나 가정에서 정의를 추구하지 말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몸 담고 있는 곳에서 쿨하게 떠나자는 것! 2,500년 전도 그렇지만 지금 시대에도 『장자』가 반체제적이고 혁명적일 수 있는 이유, 체제를 위한 교재가 아니라 우리 삶을 위한 책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미 금서가 되었을 법한 『장자』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진 것은 천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중국의 국가주의가 강력하지도 완전하지도 않았던 탓입니다. 전국시대를 풍미했던 일곱 국가들도 그랬고 단명한 진나라를 이은 한나라도 제국 내부를 엄격하게 통제하기 어려웠습니다. 당시는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국가와 제국의 경계를 넘어갈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천하(天下)라고 불리던 중원 대륙 내부에도 그리고 천하 바깥에도 국가주의가 미치지 않는 곳이 많았으니까요. 그 사이 다행히도 『장자』는 고대 중국인들의 마음을 울린 책이 되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겁니다. 물론 진나라나 한나라가 『장자』를 달가워 했을 리 없습니다. 그런데 체제의 노골적인 탄압도, 간접적인 무시도 『장자』라는 책을 없애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조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체제로서는 선택지가 별로 없습니다. 금서(禁書)로 만들지 못한다면 고리타분한 책, 혹은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 책으로 만들면 됩니다. 중국에서 『장자』라는 고전은 바로 이렇게 탄생한 겁니다. ‘책’이 ‘교재’가 된 가장 강력한 첫 사례죠.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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