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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논어』, 라이프니츠의 『단자론』이나 스미스의 『국부론』과 같은, 체제를 위한 텍스트만 고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장자의 『장자』, 스피노자의 『에티카』나 마르크스의 『자본론』 등 인간의 자유를 위한 책도 고전이 되니까요. 중세 시절 바티칸의 금서 목록에 들었던 『에티카』가 지금 서양 근대철학 합리론의 고전이 된 걸 생각해보세요. 근대 합리론의 또 다른 고전 『단자론』 옆에 꽂히면서, 가장 급진적인 책 『에티카』는 곰팡이 냄새에 젖어들게 됩니다. 『자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경우만 보더라도 1980년대까지 『자본론』은 금서였습니다. 소지만으로도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던 시절이니, 『자본론』은 그야말로 목숨 걸고 읽었던 책입니다. 그러나 지금 마르크스의 이 금서는 19세기 말 자본주의를 다룬 경제학 고전으로 스미스의 『국부론』 옆에 나란히 꽂혀 있습니다. 자기 노동력을 팔아야만 먹고 살도록 저주받은 사람들, 한때 그들의 피를 뜨겁게 만들었던 책은 이렇게 먼지를 품은 채 서가에 방치된 겁니다. 장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논어』 옆에 놓이면서 『장자』도 무언가 삶의 격언이나 늘어놓는 경전이 되어버리니까요.
『논어』, 『단자론』 그리고 『국부론』은 아무리 잘 읽어도 책이 되기는 힘듭니다. 체제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삶을 받아들이거나 정당화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이니까요. 그렇지만 『장자』, 『에티카』 그리고 『자본론』은 조금만 제대로 읽어도 교재가 되기는 힘듭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힘, 새로운 삶과 공동체를 모색하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에서 책을 구출하기! 동시에 교재와 책, 혹은 텍스트와 북(book)을 구분하기! 고전이 필독서로 추앙받는 지금, 인문정신이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제 중 하나입니다. 이 책에서 제가 하고자 하는 건 바로 이 일입니다. 스피노자와 마르크스가 아닌 장자에 집중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스피노자와 마르크스가 정착 삶을 전제로 한다면, 장자의 사유는 정착민적 삶과 더불어 유목민적 삶도 아우르는 인류학적 안목과 사유의 폭을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1000년 이후 장자가 살았던 시대까지 예속 복종을 강요하는 정착 농경생활을 떠나 자발적으로 유목생활에 뛰어들었던 자유인들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바로 유라시아를 풍미했던 유목민적 전통에 장자는 접속하고 있었죠. 스피노자와 마르크스가 부러워할 만한 장자의 운 좋은 상황입니다.
어느 동물도 같은 종을 지배와 복종이라는 관계로 길들이지는 않습니다. 국가의 탄생과 함께 인간 사회의 모든 측면에 관철되는 지배와 복종 관계를 국가주의(statism)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주인-늑대와 노예-늑대 혹은 주인-토끼와 노예-토끼를 보신 적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인간만큼은 주인-인간과 노예-인간으로 구분됩니다. 왕-인간과 신하-인간이나 자본가-인간과 노동자-인간의 구분은 모두 이런 반자연적인 참담함의 변주일 뿐이죠. 최소한 장자에게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기보다 만물의 허접, 혹은 동물 중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끔찍한 돌연변이일 뿐입니다. 장자가 국가나 사회, 나아가 문명에 대해 냉소적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인간농장을 없애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정착민적 삶과 단절하면 되는 겁니다. 무엇보다 먼저 노예-인간, 신하-인간, 노동자-인간은 더 이상 주인-인간, 왕-인간, 자본가-인간에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쓸모가 없어져 지배의 표적이 되지 않거나, 아니면 몰래 인간농장을 떠나는 겁니다. 장자의 소요유(逍遙遊)는 바로 이 문맥에서 그 자리를 잡습니다. 장자가 맹목적으로 정착생활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반대하는 것은 인간 가축화의 논리입니다. 농경국가보다 약하더라도 국가주의가 지배하는 유목국가도 이론적으로 가능하고 역사적으로도 가능했으니까요. 유목국가가 탄생해 또 예속과 복종을 강요하면, 유목민들은 또 다른 유목생활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장자의 속내입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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