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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장자수업, 1부 대지를 뛰어올라 - 5. 소인의 힘 소인의 권위, 말로 옮길 수 없는 것 본문

책/철학(哲學)

장자수업, 1부 대지를 뛰어올라 - 5. 소인의 힘 소인의 권위, 말로 옮길 수 없는 것

건방진방랑자 2021. 5. 1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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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로 옮길 수 없는 것

 

대인을 압박하는 소인의 기상, 심지어 대인을 가르치려는 소인의 당당함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이야기는 윤편 이야기일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수레바퀴를 만드는 윤편(輪扁)이라는 장인과 그의 주인인 제나라 환공 사이에 오간 대화를 담고 있습니다. 환공은 춘추시대의 패자로 유명한 군주입니다. 비록 제후의 신분이었지만 천자 국가였던 주()나라(BC 1046 ~ BC 256)를 대신해 실질적으로 중국 전체를 지배했던 권력자가 바로 패자입니다. 환공은 춘추시대를 지배했던 다섯 패자 중 가장 강력한 패자였습니다. 반면 환공을 위해 수레바퀴를 만드는 편은 그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윤편이라는 이름을 보세요. 윤편이라고 기록되어 있긴 하지만 그는 성이 없는 사람입니다. 성은 세습 귀족에게만 허용되었으니까요. 환공이나 관료들은 그를 성 없이 그냥 ()’이라고 불렀을 겁니다. 아마 그의 얼굴이 넓고 납작했겠지요. ‘넓다혹은 납작하다는 뜻이니까요. 편이라고 불린 수레바퀴 장인에게 수레바퀴를 뜻하는 ()’이라는 글자가 덧붙여집니다. 그러니까 윤편은 수레바퀴를 만드는 편이라는 의미입니다. 내편 양생주편의 포정 이야기의 주인공 포정(庖丁)’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를 잡는 정이라는 뜻이거든요. 군주를 위해 소를 도살하는 푸주한 중 아마 그는 네 번째 푸주한이었을 겁니다. , , , . 정은 네 번째를 의미하는 글자니까요.

 

어쨌든 이런 비천한 윤편이 맨바닥에서 수레바퀴를 만들다 환공이 앉아 있는 곳으로 갑자기 터벅터벅 올라오면서 윤편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시작부터 파격이죠. 당하(堂下)에 있어야만 하는 윤편이 환공이 앉아 있던 당상(堂上)으로 올라온 것이니까요. 노예 신분에 지나지 않은 장인으로서는 생각도 못할 일입니다. 상하 신분 질서에 대한 도발이자 도전입니다. 이때 환공은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을 읽고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윤편은 환공이 경전을 읽고 있는 것에 시비를 겁니다. 무언가를 배우려고 경전을 읽고 있던 환공에게 윤편은 말합니다. “공께서 지금 읽고 있는 것은 옛사람들의 찌꺼기가 아닙니까?” 지금 윤편은 환공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넘어 당시 모든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경전마저 깔끔하게 부정한 것입니다. 권위주의에 젖은 다른 군주라면 장인이 당상에 올라오는 순간 아마 칼을 휘둘렀을 겁니다. 하지만 패자 환공은 현실주의자입니다. 그 자신도 주나라 천자라는 상전의 권위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그것을 이용해 실권을 잡았습니다. 자신도 주어진 상하 질서를 우습게 여겼으니, 편의 도발적인 언행에 감정적으로만 반응하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참기 어려웠던 분노를 간신히 참은 환공은 윤편에게 변명할 기회를 줍니다. “수레바퀴나 깎는 장인인 네가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것을 논하려 하는가! 만일 네가 자신의 행위를 해명할 수 있다면 괜찮겠지만, 만일 그러지 못하면 너는 죽을 것이다.”

 

윤편은 경전을 왜 옛사람들의 찌꺼기라고 할 수 있는지, 차분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생명을 구걸하는 비루함이 아니라 어리석은 자를 가르치겠다는 여유로움이 느껴집니다. 하긴 생명에 연연했다면 당상에 올라가지도 않았을 윤편입니다. 윤편은 수레바퀴를 깎는 자신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목재를 손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대응할수 있게 되었죠. 수레바퀴 깎는 노하우(know-how)’를 얻었다고 말해도 좋습니다. 문제는 이걸 다른 사람에게 말로 옮길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이 자전거 타는 방법을 자전거 못 타는 사람에게 알려주는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자신이 들은 자전거 타는 방법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외운다 해도 자전거 못 타는 사람이 자전거를 바로 탈 수는 없는 법이죠. 윤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들에게 끌질이 너무 느려서도 안 되고 너무 빨라서도 안 된다고 아무리 말해도, 아들의 끌질이 나아지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나처럼 타봐라는 말과 함께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자전거 타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이듯, 아들 앞에서 끌질의 시범을 보여주는 것이 그나마 윤편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겁니다. 물론 아버지의 시범을 본다고 해서 아들이 곧바로 아버지처럼 끌질을 하기란 불가능할 테지만 말입니다.

 

 

 

 

인용

목차 / 장자 / 타자와의 소통

4. 바람이 분다 그러니 살아야겠다 / 6. 쓸모없어 좋은 날

소인들의 조용한 자기 혁명

말로 옮길 수 없는 것

성인은 살아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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