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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장자수업, 1부 대지를 뛰어올라 - 4. 바람이 분다 그러니 살아야겠다, 타자의 세계로 이끄는 바람 본문

책/철학(哲學)

장자수업, 1부 대지를 뛰어올라 - 4. 바람이 분다 그러니 살아야겠다, 타자의 세계로 이끄는 바람

건방진방랑자 2021. 5. 1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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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자의 세계로 이끄는 바람

 

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너무 답답하고 갑갑했습니다. 북쪽 바다가 충분히 넓어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었다면 곤은 불행하지도 않고 다른 세계를 꿈꾸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곤이 붕이 되는 과정을 상상해보도록 하죠. 분명 곤은 얕은 물에 잘못 들어갔다가 물 밖으로 밀려 나오기도 했을 겁니다. 물고기로서는 매우 불쾌한 경험이지요. 처음 경험한 대기의 느낌도, 바람의 움직임도 낯설기만 할 테니까요. 물 바깥의 바람을 우연히 접한 대부분의 작은 물고기들은 두려움을 느끼며 물 속으로 깊이 들어가려 할 겁니다. 바람은 낯선 세계,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는 타자의 세계를 상징하니까요. 당연히 곤도 가급적 물가 근처에서는 헤엄치려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럴수록 운신의 폭이 더 좁아지고, 자기 세계의 협소함이 더욱 뼈저리게 다가오겠죠. 불행한 곤은 자신도 모르게 물 바깥을 보는 일이 많아집니다. 바람에 출렁이는 표면은 물 바깥에 북쪽 바다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세계가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럴수록 북쪽 바다에서의 삶은 더 갑갑하고 더 답답해지겠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곧은 물 바깥으로 머리를 내밀어 드넓은 하늘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더 넓은 세계가 있다는 유혹이었고, 자기가 사는 북쪽 바다가 작다는 것을 알려주는 죽비 같은 것이었죠. 이제 상상해보세요. 물에 반쯤 잠긴 채 별빛이 비처럼 쏟아지는 밤하늘을 응시하는 거대한 물고기를,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는 섬처럼 고독한 곤이라는 물고기를 말입니다.

 

이제 곤이 새가 되려는 의지를 갖는 것은 한 걸음이면 족합니다. 바람이 건네는 손을 잡고 비좁지 않은 곳으로 날아가려면 새가 되어야 하니까요.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곧은 마침내 붕이 됩니다. 불행한 세계에 사느니 죽는 것이 낫다는 각오가 물고기로서의 곤을 죽이고 새로서의 붕을 탄생시킨 겁니다. 이제 온몸이 물 바깥에 있어야 편하고, 오히려 물 안이 불편하기만 합니다. 그렇지만 붕은 아직 완전한 대붕은 아닙니다. 마치 날지 못하는 오리처럼 물에 떠 있거나 물가를 거닐 뿐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붕이 마음껏 바람을 맛보며 창공을 응시하게 되었다는 점이죠. 제대로 대붕이 되려면 붕은 대붕의 세계를 얻어야 합니다. 아직 날지 못하는 붕은 물속 세계도 아니고 그렇다고 창공의 세계도 아닌 애매한 세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물에서는 나왔지만 북쪽 바다 전후좌우로 높은 산들이 에워싸고 있기 때문이죠. 물고기가 새가 되었지만, 협소한 세계에 사는 것은 곤이었던 시절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너무나 좁아서 거대한 붕이 날아오르기에 충분한 이륙 거리를 확보하기도 힘듭니다. 그렇다고 해서 수직으로 비상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수천 리 크기의 날개는 산에 가로막혀 날갯짓 한번 제대로 하기도 힘드니까요. 붕은 곤이었던 시절보다 더 안타까운 갑갑함과 답답함을 느낍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새가 되었는데 날지도 못하니까요. 불행의 세계는 아쉽게도 아직 끝나지 않은 겁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 곤이 사라지면서 그의 불행은 끝나지만, 붕과 함께 새로운 불행의 세계가 탄생한 겁니다. 이번에도 불행에 대한 자각은 행복에의 의지를 기르게 됩니다. 붕은 마침내 날 수 있는 희망을, 물가를 탈출할 수 있는 희미한 길을 찾아냅니다. 생략된 주석 부분에 등장하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오르는 거리가 구만리다[搏扶搖而上者九萬里]”라는 표현은 붕이 대붕이 되는 길을 보여줍니다.

 

이번에도 바람입니다. 처음 곤이 붕이 되도록 유혹했던 것이 바람이었듯, 지금도 바람은 행복의 세계로 인도하는 동아줄입니다. 붕은 알게 됩니다. 살랑살랑 깃털만 날리는 바람이 부는 경우가 많지만, 잠시 동안이나마 강한 바람이 몰아치는 때도 있다는 것을요. 거대한 나무들을 풀처럼 흔드는 강한 바람이 불면 그 바람은 산맥에 부딪혀 찢어지고 다시 합류되며 강한 상승기류를 만들기도 합니다. 바로 이걸 타야 합니다. 그래야 날개 밑에 자신을 띄울 바람을 충분히 모을 수 있습니다. 마치 물이 충분히 쌓여야 큰 배가 뜰 수 있듯 말입니다. 마음껏 날개를 휘저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려 해도 붕은 반드시 상승기류를 타 야 하죠. 얼마나 실패했을까요? 상승기류가 충분하지 않을 때도 있었을 테고, 혹은 충분한데도 상승기류를 제대로 타지 못할 때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붕은 대붕이 됩니다. 회오리바람을 제대로 타 구만리 상공에 오르는 데 성공한 것이죠. 이제 그 무엇도 대붕의 비행을 막을 수 없습니다. 단지 그의 위로는 푸른 하늘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불행한 세계는 끝나고 행복한 세계가 시작됩니다. 이제 수천 리나 되는 자신의 크기는 거추장스러운 것이 아닌 솜털처럼 가벼운 것이 됩니다. 갑갑함과 답답함 대신 시원함과 상쾌함이 대붕의 몸을 감싸죠. 곤이 죽어 붕이 탄생하고 붕이 대붕이 되는 과정은 이렇게 완성됩니다. 이미 그리고 벌써 대붕은 우리 곁을 떠나갔는지도 모릅니다. 그의 날갯짓이 만든 바람 소리만이 우리 귀에 속삭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세계가 불행하다는 것을 직면할 만큼 용기가 있느냐고.

 

 

 

 

인용

목차 / 장자 / 타자와의 소통

3. 소유하라 당신의 삶을 / 5. 소인의 힘 소인의 권위

은 어떻게 이 되었나

타자의 세계로 이끄는 바람

바람을 따를 것인가, 피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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