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소인의 힘, 소인의 권위
윤편 이야기
환공이 회당의 높은 곳에서 책을 읽고 있었고, 윤편은 회당 낮은 곳에서 수레를 깎고 있었다.
윤편이 나무망치와 끌을 밀쳐두고 올라와 환공에게 물었다.
“공께서는 지금 무슨 말들을 읽고 계십니까?”
환공이 “성인의 말이다”라고 말했다.
윤편이 “그 성인은 살아 있습니까?”라고 묻자 환공은 “그는 죽었다”라고 대답했다.
윤편은 반문했다. “그렇다면 공께서 지금 읽고 있는 것은 옛 사람들의 찌꺼기가 아닙니까?”
환공이 말했다. “수레바퀴 깎는 장인인 네가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것을 논의하려 하는가! 만일 네가 자신의 행위를 해명할 수 있다면 괜찮겠지만, 만일 그러지 못하면 너는 죽을 것이다.”
윤편은 말했다. “저는 그것을 저 자신의 일에 근거해서 본 겁니다. 바퀴를 깎을 때 끌질이 느리면 끝은 나무에서 미끄러져 제대로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빠르면 끝은 나무에 박혀 빠지지 않습니다. 끌질이 너무 느려서도 안 되고 너무 빨라서도 안 된다는 것을 저는 손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대응할 수 있을 뿐, 입이 있어도 말로 옮길 수 없습니다. 끌질하는 동안 몇몇 방법[數]이 있겠지만, 저는 제 아들에게 전달할 수 없고 제 아들도 또한 제게서 배울 수 없습니다. 이것이 나이 일흔이 되도록 제가 바퀴를 깎고 있는 이유입니다. 옛사람은 자신이 전할 수 없는 것과 함께 이미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공께서는 지금 옛사람들의 찌꺼기를 읽고 있는 게 아닙니까!” 「천도」 13
齊桓公讀書於堂上, 輪扁斲輪於堂下.
釋椎鑿而上, 問桓公曰: “敢問公之所讀者, 何言邪?” 公曰: “聖人之言也.”
曰: “聖人在乎?” 公曰: “已死矣.”
曰: “君之所讀者, 古人之糟魄已夫.”
桓公曰: “寡人讀書, 輪人安得議乎? 有說則可, 無說則死.”
輪扁曰: “臣也, 以臣之事觀之, 斲輪徐則甘而不固, 疾則苦而不入. 不徐不疾, 得之於手, 而應於心, 口不能言. 有數存焉於其間, 臣不能以喩臣之子, 臣之子亦不能受之於臣. 是以行七十而老斲輪. 古之人, 與其不可傳也, 死矣. 然則, 君之所讀者, 古人之糟魄已夫.”
‘소인’들의 조용한 자기혁명
『장자』에 실려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한 가지 눈에 들어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들 상당수가 책상이 아니라 치열한 삶의 현장에 던져진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 즉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비천한 신분의 사람들입니다. 맹자(孟子, BC 372 ~ BC 289)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인(大人)이 아니라 소인(小人)이었던 겁니다. 아마도 장자는 춘추전국시대에 활약했던 사상가들, 즉 제자백가 중에서 유일하게 소인으로부터 배우고 소인의 삶을 긍정했던 사상가였을 겁니다. 『장자』 전편에 농사를 짓는 사람, 물고기를 잡는 사람, 소를 도살하는 사람, 투계를 기르는 사람, 수레를 만들거나 수리하는 사람, 악기를 만드는 사람 등등이 진정한 삶의 달인으로 등장해 군주나 고관대작 혹은 철학자에게 지혜를 전해주는 이야기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대인들은 명령만 내리면 고기 요리를 먹을 수 있고, 명령만 내리면 투계장을 열 수 있고, 명령만 내리면 악기를 연주하라고 시킬 수 있죠. 마치 지금 우리가 돈만 내면 이삿짐 나르는 사람들을 살 수 있고, 음식을 배달시켜 먹을 수 있고, 돈만 내면 대리운전 기사를 살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삿짐 나르는 사람이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우리 대신 이삿짐을 옮겨줄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몸소 이삿짐을 날라야 합니다. 바로 그 순간 알게 되죠. 육체노동이 얼마나 힘들고 위대한지, 그리고 이삿짐을 능숙하게 나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춘추전국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권력이 있으면 맛난 음식이나 근사한 음악을 향유할 수 있지요. 하지만 권력자나 지식인들도 소를 도살하는 사람이나 악기를 만드는 사람, 연주하는 사람이 사라진다면 자신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들이 그들, 소인들에 업혀서 살아왔다는 사실, 심지어 그 소인들의 노동을 착취해 호의호식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게 되겠죠. 소인들은 자신들을 부리는 대인들이 없어도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온몸으로 세상과 관계하면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죠. 사실 소인들은 대인들이 없을 때 더 잘 살 수 있습니다. 소인은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강자들이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인들은 대인이 지배하는 억압체제 속에서 자신들이 진정한 강자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도록 훈육되었습니다. 농사를 짓든 사냥을 하든 아니면 물고기를 잡든 자신들의 수확물을 대인들에게 일정 정도 갖다 바칩니다. 대인들의 강제 노동력 동원에도 응하고요.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대가로 수확물 일부를 제공한다고 믿지만, 이는 분명 착취이고 수탈입니다. 어떤 소인들도 대인들에게 보호를 요청한 적이 없습니다. 대인이 요구하는 바를 거부하면 소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보세요. 가공할 폭력에 노출되어 자칫 목숨을 잃는 비극이 발생할 겁니다. 대인들의 집에 거의 노예처럼 근무하던 다양한 기술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도 대인들이 필요로 하는 온갖 것들을 만들고 그것들을 수리하면서 살았습니다. 대인들이 사라진다 해도 기술자들은 아무런 불편함이 없을 겁니다. 자신들이 익힌 기술로 충분히 먹고살 수 있을 테니까요.
장자는 대인들이 사라진 사회, 억압이 사라진 사회를 꿈꾸었을까요? 분명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장자는 혁명에 조바심을 치지는 않습니다. 지배당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특정 지배자를 제거해도 다시 지배 구조를 만들거나 용인하기 쉽습니다. 특정 대인을 몰아내도 소인들이 소인으로 남아 있는 한 대인은 다시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나쁜 왕 대신 좋은 왕이 등장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왕이라는 형식으로 상징되는 억압 구조입니다. 혁명이 완성되려면 대인/소인, 왕/신민 혹은 지배자/피지배자라는 구조 자체가 사라져야 합니다. 그래서 장자는 더 무서운 혁명을 꿈꾸게 됩니다. 소인들의 조용한 자기혁명! 소인들이 더 이상 자신을 작다고 보지 않아야 하고, 자신의 삶과 앎이 위대하다는 사실을 긍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인이 대인이 될 때, 그래서 소인들이 사라질 때, 억압 구조는 들어설 자리가 없을 테니까요. 모두가 대인인 사회, 그래서 누구도 다른 누구를 소인으로 몰아 지배하지 않는 사회, 이것이 바로 장자가 꿈꾸던 사회였습니다. 『장자』 전편에서 소인들, 혹은 육체노동 종사자들이 제(齊)나라(BC 1046? ~ BC 221) 환공(桓公) 같은 위대한 군주들이나 공자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보다 더 심오한 삶의 지혜를 갖춘 성인으로, 흔히 말하는 재야의 고수로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장자』 편찬자들이 장자가 은밀하고 조용한 혁명, 느리지만 확실한 혁명을 꿈꾸었던 것을 모를 리 없죠. 그 흔적이 지금도 외편과 잡편 여러 편에 들어 있습니다. 「변무(騈拇)」편, 「마제(馬蹄)」편, 「거협(胠篋)」편 등이 대표적일 겁니다. 그러나 강조점은 미묘하게 다릅니다. 소인이 사라지는 사회로 억압 구조를 돌파하려는 장자와 달리 그의 후학들은 대인이 사라진 사회를 강조하니까요. 장자의 기대와는 달리 진나라와 한나라가 연이어 등장하자, 장자 후학들은 혁명에 조바심을 치기 시작한 겁니다.
인용
4. 바람이 분다 그러니 살아야겠다 / 6. 쓸모없어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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