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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장자수업, 1부 대지를 뛰어올라 - 7. 허영 애달파하기에는 너무나 치명적인,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본문

책/철학(哲學)

장자수업, 1부 대지를 뛰어올라 - 7. 허영 애달파하기에는 너무나 치명적인,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건방진방랑자 2021. 5. 17.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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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사실 미인 이야기는 객사 이야기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객사는 우리가 살고 있는 허영의 세계, 혹은 허영이 지배하는 세계를 상징하니까요. 미녀뿐만 아니라 나머지 객사 식구들, 심지어 추녀까지도 모두 자신의 허영을 충족하기 위한 투쟁에 참여합니다. 이렇게 장자는 객사 전체를 인정 투쟁의 장이자 허영의 감옥으로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이것이 철학자이기에 앞서 장자가 일급 소설가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의 기본 모티브가 미인과 관련되었기에 기억하기 쉽게 미인 이야기라고 부르지만,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때 객사 이야기라고 불러도 좋을 듯합니다. 어쨌든 이제야 우리는 미인 이야기가 표면적으로 왜 겸손을 강조하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비교 우위에 서려는 욕망을 가진 인간, 즉 허영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더 고민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왜 그리고 어떻게 인간은 허영의 존재가 되어 타인들에 대해 비교 우위에 서려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비교 우위에 서려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삶, 비교 개념과는 무관한 삶에 들어가려는 장자의 분투하는 모습이 분명해질 겁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루소라는 철학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 ~ 1778)는 자신의 진정한 주저 인간 불평등 기원론(Discours sur l'origine et les fondements de l'inégalité parmi les hommes)에서 불평등한 사회 구조가 우리 인간을 허영의 존재로 만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죠.

 

각자의 지위와 운명은 재산의 많고 적음이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거나 해가 될 수 있는 능력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정신이나 미모, 체력이나 재주, 장기나 재능 등에 의해서도 결정되었다. 그리고 이런 자질을 지닌 사람들이라야 남의 존경을 받을 수 있었으므로 그것을 실제로 갖추든지 적어도 갖고 있는 척이라도 해야만 했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실제의 자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래서 실제와 외관은 서로 전혀 다른 것이 되었고 이 차이에서 엄숙한 겉치장과 기만적인 책략과 이에 따른 모든 악덕이 나왔다.”

 

여기서 각자의 지위와 운명이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이미 지배/피지배라는 위계질서, 그 사이에 위계질서를 유지하는 복잡한 신분 질서가 구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서러운 일이지만, 이제 대부분의 인간은 파란만장한 자유보다는 평온한 굴종에 적응하고 만 것입니다. 도망쳐서는 살 수 없어서 도망치지 않는 노예와 같은 신세죠.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말, “어떤 사람을 복종시킨다는 것은 그를 다른 사람이 없이는 살아가지 못하는 처지에 두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말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루소의 말이 서늘한 이유는, 지금 현재 우리 대부분이 다른 사람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취업을 하든 무엇을 하든 돈을 주는 사람을 떠나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도 없습니다. 도망을 생각하지도 못했던 과거 노예나 지금 우리나 자신의 필요를 증명해야만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억압체제는 우리에게 먹이를 주지 않을 테니까요. 자신이 쓸모가 없더라도 쓸모 있는 척이라도 해야만 합니다.

 

파스칼은 인간은 자신을 찬양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이것이 인간의 허영을 설명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억압체제에 길들여져, 억압체제라도 이곳을 떠나서는 살 수 없게 된 인간의 서글픈 면모가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찬양이 아니더라도 인정을 얻지 못하면 생존이 어렵습니다. 그러니 더 찬양받고 더 인정받는 자리로 가려 하고, 적어도 동료들보다 비교 우위에 있으려 하는 것입니다. 평온한 굴종에 이미 적응해버린 인간, 도망치려는 의지가 없는 노예나 자본주의에 순응한 우리에게만 허영의 논리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라캉(Jacques Lacan, 1901 ~ 1981)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했습니다. 비교 우위를 꿈꾸는 허영 논리의 정신분석학적 버전이죠. 그러니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 ~ 1939)나 라캉의 정신분석 담론을 인간 내면의 본성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평온한 굴종의 메커니즘에만 적용되니까요. 결국 우리는 억압 체제에서 벗어나야 허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정신분석이 말하는 일체의 정신병들로부터 치유될 수 있습니다. 미인 이야기를 빌리자면 등불이 빛나는 따뜻한 객사를 떠나 어둡고 차가운 밖으로 나가야만 합니다. 객사는 바로 허영의 각축장이니까요. 객사라는 공간을 설정하면서 그 밖을 상상하도록 만들었다는 것, 바로 이것이 장자의 위대함일 것입니다. 소요유편의 표현을 빌리자면 객사 안이 전체 세계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객사 밖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고향’,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이나 쓸쓸한 들판’, 광막지야(廣莫之野)’일 것입니다. 객사 밖 그 어둠, 그 낯섦, 그 추움이 익숙해지면 무하유지향은 어디에나 있는 고향으로, 광막지야는 파란만장한 자유의 땅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 장자의 속내는 바로 이것일 겁니다.

 

 

 

 

인용

목차 / 장자 / 타자와의 소통

6. 쓸모없어 좋은 날 / 8.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네

모든 인간은 허영의 존재

거대한 허영의 감옥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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