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허영, 애달파하기에는 너무나 치명적인
미인 이야기
양주가 송나라로 갈 때 어느 객사에서 하룻밤 머물렀다. 객사 주인에게는 부인이 두 명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아름답고 한 명은 못생겼다. 그런데 못생긴 부인은 귀한 대접을 받고, 아름다운 부인은 홀대를 받았다.
陽子之宋, 宿於逆旅. 逆旅人有妾二人, 其一人美, 其一人惡. 惡者貴而美者賤.
양주가 그 이유를 묻자 객사의 어린아이가 말했다. “아름다운 여자는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녀가 아름다운 줄 모르겠습니다. 못생긴 여자는 자신이 못생겼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녀가 못생긴 줄 모르겠습니다.”
陽子問其故, 逆旅小子對曰: “其美者自美, 吾不知其美也; 其惡者自惡, 吾不知其惡也.”
양주는 말했다. “제자들은 명심하라!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자신이 능력자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버린다면, 어디에 간들 아낌을 받지 않겠는가!” 「산목」 9
陽子曰: “弟子記之: 行賢而去自賢之行, 安往而不愛哉!”
모든 인간은 허영의 존재
현대 서양 지성인들은 사변적 생각에 몰두하는 사유 경향을 ‘데카르트적(Cartesian)’이라고 하고, 반면 현실을 냉혹할 정도로 응시하려는 사유 경향을 ‘파스칼적(Pascalian)’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파스칼(Blaise Pascal, 1623 ~ 1662)은 서양철학자들 중 최고 수준의 현실 감각을 자랑하는 지성이죠. 이런 그의 눈에 우리 인간들은 어떻게 보였을까요? 기본적으로 그에게 인간은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기보다 만물의 ‘허접’이었습니다. 인간 삶에 대한 비정한 진단서라고 할 수 있는 주저 『팡세(Pensée)』에서 파스칼은 말합니다. “허영(vanité)은 사람의 마음속에 너무도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것이라서 병사도, 아랫것들도, 요리사도, 인부도 자기를 자랑하고 찬양해줄 사람들을 원한다. 심지어 철학자들도 자신의 찬양자를 갖기를 원한다. 이것을 반박해서 글을 쓰는 사람들도 훌륭히 썼다는 영예를 얻고 싶어한다. 이것을 읽는 사람들은 읽었다는 영광을 얻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아마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또한 이것을 읽을 사람들도 아마 그러할 것이다.” 인간은 이성의 존재라기보다는 허영의 존재라는 이야기입니다. 파스칼의 말은 알 듯 모를 듯합니다. 허영(虛榮)이라고 번역되는 불어 ‘바니테(vanité)’ 혹은 영어로는 ‘배너티(vanity)’라는 개념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죠. 다행히도 파스칼은 허영이 무엇인지 친절하게 설명해줍니다. 모든 인간은 타인의 찬양을 원한다는 이야기로 그의 설명은 시작됩니다. 그의 말대로 병사, 아랫것들. 인부마저 남들의 찬양을 욕망할 정도이니 장군, 윗사람, 고용주들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사실 장군, 윗사람, 고용주가 되거나 혹은 이 지위를 유지하려는 것도 남들로부터 받는, 혹은 받을 찬양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한다기보다 남의 시선이나 평판을 의식해서 행동합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자신의 자유와 자신의 의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모습과 상상한 모습 사이의 괴리도 서글픈 일이지만, 남의 시선과 평판에 따라 일희일비를 반복하니 인간의 삶은 경망스럽기까지 합니다. 바로 이것이 ‘바니테’의 의미이고, 이 말이 ‘허영’이라고 번역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행동을 이끄는 찬양, 즉 ‘영광’ ‘헛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가장 지혜롭다는 철학자들도 허영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인간, 사회 혹은 신에 대해 논쟁할 때조차도 그들의 진정한 목적은 진리 탐구가 아니라 “자신의 찬양자”를 갖는 데 있으니까요. 똑똑하다는 혹은 심오하다는 찬양을 듣고 싶었다는 이야기죠. 심지어 철학책을 읽은 독자들마저 어려운 책을 읽는 사람이라는 남들의 찬양을 들으려 한 것입니다. 파스칼의 냉정함은 자신마저도 허영의 논리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토로하는 데 있습니다. 인간의 허영을 폭로한 자신의 글도 타인의 찬양을 받기 위한 허영의 표현일 수 있다는 이야기죠. 물론 파스칼의 통찰을 읽고 인간은 허영의 존재라고 떠드는 독자도 예외는 아닙니다. 인간은 허영의 존재라고 떠드는 사람조차도 허영의 존재일 수 있다는 것, 파스칼의 철저함이자 무서움이 드러나는 대목이죠.
파스칼이 분명히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허영의 논리를 숙고하다 보면 우리는 ‘비교’라는 중요한 개념에 이르게 됩니다. 인간이 허영의 존재라는 말은 인간은 ‘비교 우위’에 서려는 존재라는 말과 같으니까요. 장군, 윗사람, 고용주 등은 아무나 될 수 없고 소수의 사람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런 지위를 갖는 사람은 선망과 찬양의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특정 장군을, 특정 윗사람을, 그리고 특정 고용주를 쉽게 찬양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를 찬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비교 우위에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는 자신이 비교 열등에 있음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허영의 존재인 인간으로서 자신의 열등함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자신도 비교 우위에 서서 남들로부터 찬양을 받고 싶기 때문이죠. 결국 자신이 비교 우위에 서려는 사람은 남들이 열등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병사, 아랫것들, 인부들은 겉으로는 자신의 장군, 윗사람, 고용주를 찬양하지만, 뒤돌아서서 혼자 있거나 아니면 자기들끼리 모여서는 그들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는 겁니다. 물론 장군, 윗사람, 고용주 등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죠. 그래서 그들은 진정으로 찬양받기 위해 헛된 노력에 빠져들기 쉽습니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진정으로 찬양하게 되었다면, 열등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차원에서 비교 우위에 있으려고 노력합니다. 비교의 대상만 바꾸면 됩니다. “나는 여가 시간에 철학책을 읽지” “여기서 내가 가장 아름다워!” “내가 패션 감각이 더 뛰어나!” 등등, 인간은 비교 우위에 서려는 욕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흥미로운 일입니다. 헤겔, 나아가 현대 독일 철학자 호네트(Axel Honneth, 1949 ~)가 강조했던 ‘인정 투쟁(Kampf um Anerkennung)’은 모두 인간은 허영의 존재라는 파스칼의 통찰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출된다는 것이 말이죠.
인용
6. 쓸모없어 좋은 날 / 8.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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