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ㆍ부(君父)라도 도의(道義)를 구현치 않으면 따르지 말라
여기 「자도(子道)」의 충격적인 메시지는 ‘종도부종군(從道不從君), 종의부종부(從義不從父)’이다. 송ㆍ명ㆍ청대의 윤리와는 너무도 다른 것이다. 임금이라도 도(道)를 구현하는 자가 아니면 따라서는 아니 되는 것이요, 아버지라도 의(義)를 구현하는 인간이 아니라면 따라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도와 의는 인간 개체의 임의성을 초월하는 객관적 사회적 원리요 기준이다.
효자가 어버이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경우, 그 이유는 다음 세 가지가 있다. 어버이의 명을 따르면 오히려 어버이가 위태롭게 되고, 어버이의 명을 따르지 않으면 어버이가 안전하게 되는 경우, 효자라면 어버이의 명을 따르지 않는 것이 충정(衷情)【여기서 ‘충(忠)’ 대신 ‘충(衷)’이라는 어휘를 택한 것도 순자(荀子) 표현의 특징에 속한다】이다.
어버이의 명을 따르면 어버이가 욕을 보게 되고, 어버이의 명을 따르지 않으면 어버이가 영예롭게 되는 경우, 효자라면 어버이의 명을 따르지 않는 것이 의(義)로운 것이다.
어버이의 명을 따르면 어버이가 금수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되고, 어버이의 명을 따르지 않으면 어버이가 예절을 되찾게 되는 경우, 효자라면 어버이의 명을 따르지 않는 것이 경(敬)이다.
孝子所以不從命有三, 從命則親危, 不從命則親安, 孝子不從命乃衷,
從命則親辱, 不從命則親榮, 孝子不從命乃義,
從命則禽獸, 不從命則脩飾, 孝子不從命乃敬.
그러므로 마땅히 어버이의 명을 따라야 할 때 따르지 아니 하는 것은, 자식된 도리가 아니요[不子], 마땅히 어버이 명을 따라서는 아니 될 때 어버이 명을 따르는 것은 자식의 충정이 아니다[不衷]. 따라야 할 것이냐! 따라야 하지 말 것이냐! 그 의로운 기준을 명백하게 하여, 공경(恭敬)과 충신(忠信: 진실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믿음)과 단각(端慤: 정성어린 단정함)을 다하여 신중하게 실천하여 나간다면 비로소 그것을 일컬어 대효(大孝)라 할 수 있는 것이다.
故可以從而不從, 是不子也, 未可以從而從, 是不衷也, 明於從不從之義, 而能致恭敬忠信, 端慤以愼行之, 則可謂大孝矣.
여기서 이미 우리는 ‘존재할 것이냐, 존재하지 않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를 외치는 햄릿의 처절한 독백의 함성을 들을 수 있다. 햄릿에게서 존재(to be)와 비존재(not to be)의 명제가 삶과 죽음의 선택의 기로를 의미했다면 이미 ‘따를 것이냐[從], 아니 따를 것이냐[不從]’ 놓고 고민하는 효자의 독백 속에도 삶과 죽음의 무수한 기로들이 오가고 있는 것이다. 존재와 비존재, 따름과 따르지 아니 함의 ‘아이더 오아(either or)’를 근원적으로 초탈하는 객관적 규범을 순자(荀子)는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순자(荀子)가 말하는 대효(大孝) 속에는 소효(小孝)의 갈등들이 극복되어 있다. 『부모은중경』이 제시하는 보편적 담론이 이미 예시되어 있다. 이것은 전국시대에 이미 효(孝)라는 개념에 대한 모든 갈등구조가 충분히 노출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국시대의 사상가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정직한 대답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효는 사회적 담론(episteme)으로서 정착되어간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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