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의 적통, 법가적 합리성의 새 국면 개척
오늘날 법제가 발달한 사회일수록 이러한 순자(荀子)의 명제는 매우 적확한 의미를 지닌다. 순자(荀子)는 유ㆍ법을 통합하고 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儒)의 적통성을 지키면서 법가적 합리성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묻건대, 사람의 임금(人君)된다 함이 무엇이뇨? 대답컨대, 예를 기준으로 하여 신하들에게 관작과 봉록을 나누어주는데 공평하고 두루 미치게 하여 어느 한편에 치우침이 없어야 임금이다.
請問爲人君? 曰, 以禮分施, 均徧而不偏.
묻건대, 사람의 신하[人臣] 된다 함이 무엇이뇨? 대답컨대, 예를 기준으로 하여 임금을 대하고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와 따르고 나태함이 없어야 신하이다.
請問爲人臣? 曰, 以禮待君, 忠順而不懈.
묻건대, 사람의 아비[人父] 된다 함이 무엇이뇨? 대답컨대, 자식에게 관대하고 자혜를 베풀며 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 아비이다.
請問爲人父? 曰, 寬惠而有禮.
묻건대, 사람의 자식[人子] 된다 함이 무엇이뇨? 대답컨대,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하며 예를 극진히 하는 것이 자식이다.
請問爲人子? 曰, 敬愛而致文.
묻건대, 사람의 형[人兄] 된다 함이 무엇이뇨? 대답컨대, 자비로운 마음으로 동생을 사랑하며 우애를 나타낼 줄 알아야 형이다.
請問爲人兄? 曰, 慈愛而見友.
묻건대, 사람의 동생[人弟] 된다 함이 무엇이뇨? 대답컨대, 형에게 굽힐 줄도 알고 공경하며, 가급적 형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행동해야 동생이다.
請問爲人弟? 曰, 敬詘而不苟.
묻건대, 사람의 남편[人夫]된다 함이 무엇이뇨? 대답컨대, 부인에게 공을 세우면서도 그것을 자랑치 아니 하며, 부인과 허물없이 화합하면서도 음란치 아니 하고, 위엄을 나타내면서도 정확한 분변이 있어야 남편이다.
請問爲人夫? 曰, 致和而不流, 致臨而有辨.
묻건대, 사람의 아내[人妻] 된다 함이 무엇이뇨? 대답컨대, 남편이 예가 있으면 부드럽게 따르고 잘 들어 모실 줄 알고, 남편이 예가 없으면 두려운 마음을 지니고 송구스럽게 대하면서도 스스로의 위엄을 잃지 않아야 아내이다.
請問爲人妻? 曰, 夫有禮則柔從聽侍, 夫無禮則恐懼而自竦也.
이러한 사람의 윤리의 도(道)야말로, 한 편으로 치우치면 가정과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것이요, 쌍방적으로 같이 제 길을 가면 가정과 나라가 평화롭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야말로 사람들이 계고(稽考)하고 또 계고해야 할 일이다.
此道也, 偏立而亂, 具立而治, 其足以稽矣. 「군도(君道)」
여기 「군도(君道)」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편립이란, 구립이치(偏立而亂, 具立而治)’라는 명제이다. 인간의 윤리는 쌍방적이고 호혜적일 때만이 그 진정한 가치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간들은 서로를 존중하면서 깊게 깊게 생각할 줄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순자(荀子)의 합리주의는 시대적 한계 즉 군주제의 기미(羈縻)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인권’이나 ‘개인’의 개념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순자(荀子)를 통해서 바라볼 수 있는 선진시대의 일반적 사회윤리가, 맹자(孟子)를 적통으로 해서 생각한 송대 이후의 가치관에 비하면, 오히려 발랄한 평등적 인간관을 깔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삼강행실도』에서 가장 문제시 삼았던 효의 충화(忠化)라는 테제에 있어서도 순자(荀子)는 명료하게 합리적인 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무조건 윗 사람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효인가? 물론 오늘날에도 대 교회조직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신도들이 하나님의 이름 아래 무조건 복종하는 것을 행복하게 여길 것이고, 국가 정치조직을 이끌어가는 우파나 좌파나 모두 국민들이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명령에 무조건 따르는 것을 행복하게 여길 것이다.
순자(荀子)는 인륜관계에 있어서 그 관계를 설정케 하는 인간 개체 항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개체항목들을 초월하는 도(道)나 의(義)와 같은 추상적 원리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도의(道義)의 객관성이 보장되지 않고, 그것이 인간의 주관적 임의성에 굴복되면 그것은 결코 순종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이슬람(Islam)’이 일차적으로 ‘복종’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사태이다. 그 나름대로 어떠한 정당성이 부여된다 하더라도 복종을 통해서만 평화를 얻는다는 것은 인간세에서 배제되어야 할 윤리이다. 아무리 추상적 절대자일지라도, 인간의 사유나 언어를 초월하는 그 무엇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복종이라는 인간적 윤리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 초월적 타자를 기만적 존재로 비하시키는 것이다. 초월자이기 때문에 언어를 초월한다고 하면 인간의 모든 협애한 도덕도 초월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로운 영혼은 복종되어서는 아니 된다. 순자(荀子)는 말한다.
집에 들어오면 어버이께 효도를 다하고, 밖에 나가면 어른에게 공경을 다하는 것, 이런 것은 인간의 소행(小行)이라고 하는 것이다. 윗사람에게 고분고분 따르고, 아랫사람에게 두터운 인정을 베푸는 것, 이런 것은 인간의 중행(中行)이라고 하는 것이다.
入孝出弟, 人之小行也. 上順下篤, 人之中行也.
오직 도(道)를 따르고 임금을 따르지 아니 하며, 오직 의(義)를 따르고 아버지를 따르지 아니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대행(大行)이라고 하는 것이다.
從道不從君, 從義不從父, 人之大行也.
만약 이 위에 그 뜻이 예를 기준으로 하여 평온함을 유지하고, 그 말이 정확한 논리를 기준으로 하여 아름답게 구사된다면 유도(儒道: 지식인의 합리성)가 완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지극한 효자인 순(舜) 임금이라 할지라도 한 터럭 만큼이라도 이에 더할 것은 없을 것이다. 「자도(子道)」
若夫志以禮安, 言以類使, 則儒道畢矣, 雖舜不能加毫末於是矣.
순자(荀子)의 모습을 잘그려내고 있는 초상화. 남훈전(南薰殿) 장(藏) 『역대성현명인상(歷代聖賢名人像)』에 실려 있다. 청(淸)나라 내부(內府)에 전해 내려오는 유서깊은 초상화로서 순자(荀子)의 기품을 잘 표현하고 있는 명작이다. 자신에 넘치는 당당한 풍도와 말끔한 자태는 그의 합리주의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전국시초난릉령순황(戰國時楚蘭陵令荀況)’【전국시기의 초나라 난릉의 令, 순황】이라고 쓰여져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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