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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통서 인류문명전관 -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태일생수(太一生水)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통서 인류문명전관 -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태일생수(太一生水)

건방진방랑자 2021. 5. 2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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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태일생수(太一生水)

 

 

쿠푸왕은 제4왕조의 둘째왕이다. 그러나 피라미드는 제3왕조로부터 제18왕조 초에 이르기까지 100여 개 만들어졌다. 최근 호북성(湖北省) 형문(荊門) 곽점(郭店) 1호묘에서 발견된(199310) 죽간(竹簡) 중에 태일생수(太一生水)라고 하는 전국중기(戰國中期)의 우주론관계 문헌이 하나 있다. 그 문헌에 보면 태일(太一, the Great One)이 물을 생()하고, 물이 거꾸로 태일을 도와 하늘을 이루고, 하늘이 거꾸로 태일을 도와 땅을 이루고, 하늘과 땅이 다시 서로 도와, 신명(神明, 생명)을 이룬다[太一生水, 水反輔太一, 是以成天. 天反輔太一, 是以成地. 天地復相輔也, 是以成神明]’라는 말이 있다. 피라미드도 바로 이러한 태일생수적인 세계관을 반영하는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피라미드는 대부분 나일강 범람의 한계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피라미드 자체가 천지창조의 시기에 물에서 솟아오르는 태초의 동산을 상징하며, 그 동산에서 신명(神明) 즉 생명이 탄생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피라미드는 사후의 다시 탄생즉 부활을 상징한다. 그 영혼이 같이 묻어준 범선을 타고 밤하늘을 항해하여 영원불멸의 별이 된다고 하는 믿음을 구현한 것이다. 쿠푸왕의 현실에도, 왕비의 현실에도 밤하늘로 통하는 공기 통로가 남ㆍ북면으로 뚫려있다. 그 통로야말로 왕과 왕비의 영혼이 밤하늘로 올라가는 길일 것이라는데 사계의 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

 

그레코ㆍ로만의 신전들을 바라보면서 테베지역의 거대한 카르낙신전전체면적이 347에이커에 이르는 인류사상 최대의 신전이나 룩소르신전의 프로토타입을 연상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찬란한 문명의 업적을 바라보면서도 종교적 광신에 사로잡힌 포악한 파라오만을 연상하거나, 기껏해야 맑스의 역사발전단계도식에 의한 노예제사회의 참혹한 현실을 상상하면서, 관념적으로는 원시사회의 낙후성만을 개탄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념과 현실의 갭을 메꾸기 위해 외계인이 비행접시를 타고 와서 지어놓고 갔다는 등, 황당무계한 낭설을 기발한 학설인냥 유포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문명의 성취에 대한 모독도 이러한 조잡한 모독이 있을 수 없다. 이집트 석조건축의 노우하우(knowhow)는 이미 사계의 학자들에 의하여 치열하게 연구되었다.

 

이러한 연구업적들을 외면하고 피상적인 인상만을 운운하는 것은 진실로 인간문명의 위대한 가능성을 외면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 그 자체에 대한 모독이다. ‘포악한 파라오(우리나라 구약성서의 발음은 바로)’의 이미지는 대부분 출애굽기라는 후대의 유대문학에서 온 것이다문헌성립의 최후층대는 BC 4세기초에까지 내려온다. 물론 그것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민족적 위기의식을 대자적으로 설정하여 이스라엘의 정신적 단일성을 확보하기 위한 문학적 상상력의 소산이다. 포악하기로 말한다면 인류사에서 유대교-기독교로 이어지는 유일신 신앙처럼 포악한 종교형태는 없다. 파라오에게 그러한 포악한 이미지를 덮어씌우는 것처럼 포악한 폭력은 없다.

 

일례를 들면, 쿠푸왕의 피라미드나 왕들의 계곡(Valley of the Kings)의 네크로폴리스가 노예에 의하여 건설되었다는 것은 완벽한 낭설(浪說)이다. 칼 맑스의 역사 발전도식의 편견은 인류의 고대사에서 통하지 않는다. 그것은 귀납적 연구에 의한 사실이 아니라 관념적 연역의 소산일 뿐이다. 한두 개의 사례로 인류사의 발전단계를 획일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만 해도 연 35천 명으로 추산되는 노동인력이 소요되었다. 과연 이러한 대규모인원의 잡졸 노예들이 채찍질의 위협 아래서 이토록 정교한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21세기 오늘날에도 영화촬영장에서 동원되는 엑스트라들을 다루는 일만 해도 보통 문제가 아닌데 하물며 하등의 의식없는 노예들의 강제노역만으로 왕들의 계곡의 정교한 벽화들이 조각되고 그려질 수 있겠는가?

 

 

룩소르 카르낙신전. 134개의 파피루스모양 기둥에 성각문자가 새겨져 있다.

 

 

 나일강의 범람은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홍수(Flood)가 아니다. 그것은 이넌데이션(Inundation)이라고 부르는 특수한 자연현상으로 찬란한 태양빛 아래 전개되는 나일강의 예측 가능한 수위의 변화일 뿐이다. 게다가 범람의 결과는 해마다 비옥한 뻘흙으로 경작지를 개토해주기 때문에 비료의 필요성이 거의 없었다.

 

이러한 범람의 주기에 따라 나일강역은 아케트(akhet, 범람기), 페레트(peret, 경작기), 쉐무(shemu, 건조기)3절기로 나뉜다. 대체로 6월에서 10월에 이르는 아케트기(범람기)에는 전국민이 나일강의 수위의 변화만을 기다릴 뿐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BC 5세기 중반에 이집트를 여행한(BC 449-430?) 희랍의 사가 헤로도토스(Herodotus, BC c.484~c.420)는 하늘을 쳐다보고 농사를 짓는다는 이야기를 신기하게 생각하는 이집트인들의 표정을 묘사해놓고 있다. 이집트인들에게는 비는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 아니라, 나일강에서 쏟아졌다. 매일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태양과 비옥한 경작지, 그리고 풍부한 수량이 확보된 천혜의 조건은 이 지구상에 나일강밖에는 찾아볼 수가 없다. 블루나일(Blue Nile), 화이트나일(White Nile), 아트바라(Atbara) 세 강이 유입되어 6741km나 뻗쳐 흐르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긴 이 강의 경작조건은 BC 9000년부터 BC 5000년 사이에 오늘의 조건으로 정착된 것이다. 문명의 발상을 규정하는데 가장 핵심적 요인은 식량의 생산(food production)이다. 어떠한 문명도 풍성한 식량생산의 확고한 기반이 없이 발생할 수가 없는 것이다(No civilization has ever developed without the sure base of a prosperous food production. The Penguin Encyclopedia of Ancient Civilizations, 17)

 

그러니까 나일강을 빼놓고 이집트문명을 이야기할 수가 없다. 그리고 고왕조(Old Kingdom, BC 2687~2190)로부터 신왕조(New Kingdom, BC 1569~1076)에 이르는 찬란한 문명의 업적을 토인비의 도전(challenge)과 응전(response)이라는 각박한 도식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나일강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가장 밀도 높은 문명의 조건을 호모 사피엔스에게 제공했던 것이다. 그것을 도전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가장 풍요로운 도전이었다.

 

 

왕들의 계곡(valley of the kings) 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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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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