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정체
‘서구’란 무엇인가? 그것은 서방로마를 중심으로 기술되어온 역사를 일컫는 것이다. 서방로마라는 것은 로마제국권 내에서의 동방세계(the Orient)를 의식하여 점차적으로 형성된 개념이지만 그것이 세계사의 주원(主源)인 것처럼 인식되게 된 것은, 로마황제 중에서도 유례를 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포악하고 사악하기 그지없었던 콘스탄티누스가 쓰러져가는 로마를 재건하기 위하여 박해의 대상이던 기독교를 우대받는 특권의 기독교로 전환시킨 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6명의 분권 황제를 단 하나의 유일절대 권력의 황제로 통합시키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유일신관이야말로 가장 적절한 이데올로기라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범용한 사가들이 기술하는 것처럼 그 사건으로 인하여 로마가 재건되었던 것도 아니요, 로마사회의 해체가 역전되었던 것도 아니다. 결국 서로마는 기독교의 수용과 무관하게 멸망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향후 모든 서양역사의 전개에 가톨릭의 이념을 확고하게 뿌리내렸다. 그러니까 우리가 서양역사를 인류역사의 주류처럼 인식하는 모든 기술방식의 저변에는 기독교를 중심으로 인류사를 바라보는 매우 협애한 편견이 깔려있는 것이다. 그러나 AD 313년의 밀라노칙령(Edict of Milan) 이후의 기독교를 중심으로 기독교를 이야기하면, 말(末)을 숭상하여 본(本)을 파기하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본시 밀라노칙령이란 로마제국 내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에 대한 평등한 관용을 의미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 칙령을 계기로 모든 법적 권리를 독점했다. 더 불행한 사실은 그 특혜적 입지를 활용하여 그들이 한 200여년간 받아온 박해보다 몇천배 가혹한 박해를 타종교에 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세기를 대변하는 서양의 위대한 철학자 화이트헤드(A. N. Whitehead, 1861~1947)가 지적했듯이 로마가 공인한 이후의 기독교는 차라리 ‘황제교’ 아니면 ‘시저교’라 해야 옳을 것이다.
로마인들은 기독교를 국교로서 정식화하는 과정에 있어서, 유대인들이 메시아에 관하여 그릇된 관념을 품어왔다는 사실을 단순히 유대인의 탓으로 돌리면서 또다시 매우 하찮은 형태의 종교관에 매달렸다. 거기에는 매우 뿌리 깊은 우상숭배가 숨어있다. 즉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이집트ㆍ페르시아ㆍ로마제국의 황제의 이미지로서 형상화시켰던 것이다. 로마교회는 하나님에게 시저에게만 속하였던 모든 속성을 거침없이 부여하였던 것이다(Process and Reality, 342).
오늘날 상식이 있는 신학도라고 한다면 기독교의 본질을 논구하는데, 교회사적 혹은 교리사적 탐구를 제외하고는, 밀라노칙령 이후의 황제교를 가지고 기독교를 운운하지는 않는다. 말틴 루터가 이미 ‘오직 성서(sola Scriptura)’라는 캣치프레이즈를 그의 신학의 핵심적 테제로 삼았듯이, 오늘날의 대부분의 신학자들도 성서 27편의 성립시대와 로마국교화 이전의 초대교회사를 중심으로 신학적 논쟁의 광장을 마련하려 한다. 그런데 초대교회사의 직접적 터전은 로마제국이지만, 당대의 로마제국의 정신적 토양은 헬레니즘문명의 모든 성과를 흡수한 것이었다.
예수도 로마제국의 사람이었다. 그에게 던져진 질문 중의 하나가 로마황제인 시저(캐사르=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하는 문제였다(막 12:14, 눅 20:22). 부당하다고 말하면 그는 정치적 혁명가가 될 것이요, 정당하다고 말하면 그는 민족적 반역자가 될 것이다. 이에 대한 예수의 답변은 레토릭하게 매우 세련되어 있지만 실내용인즉슨 사뭇 애매하다. 아마도 자신의 사역이 정치적인 목적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함으로써 자기를 골탕 멕이려는 자들의 피상적 논쟁의 함정을 회피했을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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