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작은 천하와 작은 제국
최후의 승자가 된 2인자
죽는 순간까지 히데요시가 가장 걱정한 것은 여섯 살의 어린 아들 히데요리(秀賴, 1593~1615)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신뢰하던 5대로(五大老)에게 아들을 부탁한다는 특별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그 자신도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아들과 손자를 팽개치고 권력을 잡은 터에 그 유언이 충실히 지켜지기를 바랐다면 지나친 욕심이다. 5대로 중에는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Tokugawa Ieyasu)가 포함되어 있었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를 섬기면서 무려 40년 동안이나 2인자의 역할을 고수한 이에야스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히데요시가 살아 있을 때도 그는 사실상 동국(東國, 교토 동부에서 에도까지)의 지배자로 군림했으며, 히데요시에게서도 실력과 지위를 인정받았다. 두 사람은 자칫하면 껄끄러운 관계가 될 수도 있었지만,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의 통일 사업을 적극 지원하고 오사카 성을 짓는 데도 물심양면으로 협력하는 2인자의 처세술로 자신의 고유한 위치를 확보했다. 더구나 무모한 조선 침략 전쟁으로 많은 다이묘의 재정이 고갈된 데 비해 이에야스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히데요시는 호조 잔당의 도발을 우려해 이에야스에게는 참전을 명하지 않고 동부의 수비를 맡겼던 것이다.
히데요시가 죽자 드디어 천하의 주인이 될 때가 왔다고 여긴 이에야스에게 죽은 상관의 유언이 머릿속에 남아 있을 리 없다. 다만 그 유언을 충실히 따르려는 히데요시의 부하들만이 문제가 될 뿐이다. 오랜 2인자 처신에서 얻은 경험일까? 신중한 이에야스는 먼저 도발하지 않고 상대의 도발을 유도하는 수법을 구사했다.
최고 권력자로 공인된 이상 일단은 칼날을 숨긴 채 히데요시의 오사카 성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그는 은밀하게 독재 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히데요시의 심복으로 이에야스의 맞수인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 1563~1600)는 이미 이에야스를 제거할 속셈을 품고 있었는데, 문제는 이에야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마침 에도(江戶, 지금의 도쿄)의 동북부에서 반란이 일어난 것은 양측 모두에게 좋은 기회였다.
이에야스가 간토 지방으로 원정을 떠나자 미쓰나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오사카 성을 점령했다. 그러나 그 행동은 이에야스의 심모원려(深謀遠慮)에 들어 있었다. 그는 즉각 원정을 취소하고 에도 성으로 들어갔다. 에도는 호조를 정복한 이래로 그의 근거지였으니, 원정을 빌미로 이에야스는 자신의 텃밭으로 돌아간 셈이었다. 어차피 한번 맞붙어야 할 상대라면 전면전으로 붙자는 의도였다.
전운이 무르익으면서 전국의 다이묘들은 일제히 이에야스의 동군과 미쓰나리의 서군으로 나뉘었다. 양측은 지금의 나고야 북쪽에서 결전을 벌였는데, 이것이 1600년의 세키가하라(関ヶ原) 전투다. 9월 15일 단 하루 동안 벌어진 이 전투에서 이에야스는 승리를 거두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일인자의 자리에 올랐다.
오랫동안 2인자 생활을 거치며 ‘준비된 일인자’의 경륜을 닦았던 이에야스는 선배들인 노부나가와 히데요시보다 훨씬 빠르고 체계적으로 권력의 안정을 꾀했다. 우선 서군 측에 참가한 다이묘들의 영지를 몰수해 자기 측의 다이묘들에게 분배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직할지도 크게 늘렸다(이로써 이에야스의 영지는 전국 곡식 총 생산량의 6분의 1을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규모가 되었다).
이런 경제적 실속 외에 이에야스는 정치적 명분을 얻는 데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1603년 그는 교토의 천황에게서 모든 무장이 동경하는 세이이다이쇼군을 제수받았다. 노부나가도, 히데요시도 최고 권력자이기는 했으나 아직 시절이 어수선한 탓에 쇼군의 지위에는 오르지 못했다.
▲ 세키가하라 전투 세키가하라 전투는 향후 300년간의 일본 역사를 결정한 중요한 사건이었다. 여기서 이에야스의 동군이 승리함으로써 에도 바쿠후는 챔피언 타이틀을 방어하고 번영의 에도시대를 열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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