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우리 학단의 소자들이 광간하구나
5-21. 공자께서 진나라에 계시었을 때, 말씀하시었다. “돌아가자! 돌아가자! 오당의 어린 제자들이 박력있고 뜻이 커서, 찬란하게 문장을 이루었으나, 그것을 어떻게 다듬어야 할지를 모르는구나.” 5-21. 子在陳曰: “歸與! 歸與! 吾黨之小子狂簡, 斐然成章, 不知所以裁之.” |
모든 교육자들에게는 가슴을 설레게 하는, 멋드러진 『논어』의 한 구절이다. 교육자로서 이와 같은 설레임을 느낄 수 없다면 어찌 그를 교육자라 이를 수 있을까보냐! 이것은 공자의 생애에 있어서 하나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귀로(歸魯)라는 사건을 직면하고 있는 공자의 인간적 ‘그리움’을 묘사한 탁월한 파편이다. 문학적으로도 아름다운 문장을 발하고 있다. 후학의 교육이란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다. 교육이란 백년지계(百年之計)요, 한 계절이나 한 해, 단기간에 뿌리고 거두는 수확의 증험이 없다. 공자는 자신이 배움에 뜻을 둔 이래로 그는 줄곧 배우면서 가르쳤다. 평생을 그는 교육자로서 사(士)의 학단을 형성하고 살았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성숙한 모습을 보기 전에 기나긴 방랑의 길에 올라야만 했던 것이다.
진(陳)은 나라 이름이다. 주무왕(周武王)이 은나라를 멸망시킨 후에, 푸대접 받고 있던 순임금의 후예를 다시 찾아내어 진(陳)지역에 봉하였다. 그래서 발탁된 사람이 규만(嬀滿, 꿰이 만, Gui Man)이니, 이가 바로 진(陳)의 시조 호공(胡公)이다. 진나라는 춘추시기, 현재의 하남(河南) 개봉(開封) 동쪽으로부터 안휘(安徽) 박현(亳縣) 이북 일대의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 도읍지는 완구(宛丘)였는데 지금의 하남(河南) 회양현(淮陽縣)이다【혹설에는 하남성(河南省) 복양현(濮陽縣이라 한다】.
「세가」의 기록을 따른다면, 공자는 56세에 노나라 대사구의 지위를 잃고 유랑길에 올라 68세 때 다시 고국인 노나라에 돌아오기까지 열국(列國)을 주유하였는데 진(陳)나라에는 두 번 체재하였다. 두 번 체재했을 때 모두 이 장의 내용이 인용되고 있는데, 아마도 이 장의 주제는 그 성격상 두 번째 체재 시에 이루어진 상황 속에서 발설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계환자(季桓子)가 병이 들어 죽음의 병상에서 그의 아들 계강자(季康子)에게 탄식하여 말한다: “내 생애 가장 큰 실수는 공자라는 위대한 친구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었다. 그가 집권했을 때 노나라는 크게 일어나는 기운이 감돌았다. 그의 말을 계속 들었더라면 우리나라는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공자에게 죄를 지었다. 내가 죽으면 너는 반드시 노나라의 재상이 될 것이다. 그러면 너는 반드시 공지를 다시 불러야 한다[我卽死, 若必相魯; 相魯, 必召仲尼].”
수일 후 계환자는 격동의 생애를 마감한다. 계강자가 대를 이어 재상의 자리에 오르고 부친의 장례를 끝내자마자, 공자를 부르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계강자의 의지는 대부 공지어(公之魚)의 저지로 안타까웁게도 또 무산되고 만다. 그러나 공자 대신 공자의 제자인 염구(求)를 부른다. 공자는 자신의 곁을 떠나는 염구를 바라보며 부러운 듯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노나라 사람이 구를 데려가는 것을 보니, 이것은 작게 쓰려는 것이 아니라, 장차 크게 쓰려하는 것이다.
魯人召求, 非小用之, 將大用之也.
여기 ‘소용(小用)’이라는 말에 대하여 ‘대용(大用)’이라 한 것은, 지금은 비록 귀로(歸魯)의 길이 좌절되었지만, 필연코 앞으로 자기를 크게 쓰기 위한 길을 예비하고 있다는 뜻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유랑의 생활을 청산하고 싶은 심정과 보람 있는 귀로(歸魯)의 계기에 대한 갈망이 ‘대용(大用)’이라는 한마디 속에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바로 이 장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돌아가자! 돌아가자[歸與! 歸與!]!
그 얼마나 긴박감 있는 표현인가? 그러나 이 발설의 순간에 공자는 노나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오직 그의 제자 염구가 그의 곁을 떠났을 뿐이다. “돌아가자! 돌아가자!”는 기실 “돌아가고 싶구나! 돌아가고 싶구나!”의 에두른 표현이다. 가고파도 갈 수 없는 애절한 심정의 표현인 것이다. 이때 공자는 환갑이 넘은 노인이었다(63세 정도).
‘오당지소자(吾黨之小子)’란 표현은 직역하면 ‘우리동네의 꼬마들’이라는 뜻이다. 『주례(周禮)』 「대사도(大司徒)」에는 오가(五家)를 비(比)라 하고, 오비(五比)를 여(閭)라 하고, 사려(四閭)를 족(族)이라 하고, 오족(五族)을 당(黨)이라 한다는 표현이 있다. 중국고대의 행정구역이 반드시 이 말대로 되어있던 것은 아니지만, 하여튼 당(黨)이란 500헌(軒) 정도의 큰 마을을 가리키는 것이다. 여기서 오당지소자(吾黨之小子)라고 하는 것은, 노나라 고향에 남겨두고 온, 보고싶은 나의 어린 제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광(狂)’이란 뜻은 현재는 ‘미침(Insanity)’의 뜻으로 쓰이고 있으나 예로부터 광(狂)이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그러한 비정상의 뜻이 아니다. 광(狂)이란 서투르나 닳아빠지지 않은 모습이요, 문명의 억압에 짓눌리지 않은 패기나 의욕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그리고 ‘간(簡)’이란 것도 간략함과 동시에 거대함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즉 좀 엉성하지만 스케일이 큰 모습, 즉 젊은이의 야망이 큰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志大而略於事也].
문명에 닳아빠진 세련된 인간보다는 항상 크루드(crude)한 원래의 모습이 더 바람직 한 것이다. 정제되기 이전의 원유의 모습이 정제된 이후의 휘발유보다는 더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자들이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은 휘발유 같은 사람들이 아니요 원유 같은 사람들이다. 여기 ‘광간(狂簡)’이라는 표현은 바로 원유의 거친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말이다. 아! 보고 싶은 나의 고향의 제 자들이여! 그들은 거칠지만 박력에 넘치는 인간들이었다!
‘비연성장(斐然成章)’이란 의미적으로는 ‘광간(狂簡)’과 대비되는 것이다. 여기 성장(成章)의 장(章)이란 문명이요, 질서요, 교육을 거쳐 함양된 교양인의 모습이다. 비연(斐然)이란 그 문화적 소양의 찬란한 모습을 형용하는 형용사다. 그 광간(狂簡)의 인간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드디어 찬란하게 문명의 질서를 꽃 피웠구나! 아~ 돌아가고파라! 정열과 예술이 넘치는 내 고향 그 젊음 속으로!
마지막 ‘부지소재지(不知所以裁之)’는 「세가」에는 ‘오부지소재지(吾不知所以裁之)’로 되어 있어, 앞에 ‘오’라는 주어가 첨가되어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 구절의 주어는 공자가 된다. 그렇게 되면 이것은 ‘아~ 내가 그들을 어찌 교육 시켜야 할지를 모르겠구나!’하는 식의 표현이 되고 만다. ‘재(裁)’라는 것은 문 자 그대로 ‘가위질’이다. 즉 ‘모양’이나 ‘스타일’을 창출하는 최종적인 행위를 일컫는 것이다.
‘나 이제 어떻게 그들을 마름질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탄식은 그들이 질서 있게 발전한 모습에 대한 더 없는 찬탄일 수도 있고, 밖에 떨어져 있어 그들을 지도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한탄으로 풀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오(吾)’가 없는 『논어』의 텍스트가 보다 원양에 가깝다고 판단한다. ‘부지소이재지(不知所以裁之)’의 주어는 바로 제자들이 되어야 한다. 즉 광간(狂簡)한 그들이 비연(斐然)하게 성장(成章)했으되 그 최종적 단계인 재지(裁之)를 어떻게 하는지를 모르고 있는 현황에 대한 스승으로서의 안타까움의 표현인 것이다. 재지(裁之)란, 즉 제자들 각기의 인간들이 문명 속에서의 자신들의 역량의 가능성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어떤 삶의 스타일을 창출하는 마지막 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들을 다시 지도하면서 그들의 찬란한 역량 들을 마름질해줄 수 있을 텐데, 아~ 안타깝도다! 공자가 귀로(歸魯)의 꿈을 실현한 것은 이로부터 5년 후의 일이었다.
‘여(與)’는 평성이다. ‘斐’ 비(匪)라고 발음한다. ○ 이것은 공자께서 천하사방을 주류(周流)하셨으나 도가 행하여지지 않자,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시며 발하신 탄성이다. ‘오당소자(吾黨小子)’는 노나라에 남아있는 문인(門人)을 가리킨 것이다. ‘광간(狂簡)’은 이상은 크나 구체적인 사상(事象)에는 소략한 것이다. ‘비(斐)’는 문채나는 모습이요, ‘성장(成章)’은 그 배운 문리(文理)가 성취가 있어 볼 만한 것이 있는 것을 말함이다. ‘재(裁)’는 잘라서 바르게 하는 것이다. 부자의 초심(初心)은 그의 도를 천하에 정치적으로 실현시켜 보려는 것이었으나, 이 시점에 이르게 되면 끝내 그러한 기회가 주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비로 소 후학들을 성취시켜서 내세(앞으로의 세상)에 도를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중도(中道: 치우치지 않은 정도)를 실천하는 선비를 얻지 못한다면 그 다음 단계의 인재를 생각하게 된다. 광사(狂士)들은 지의(志意)가 고원(高遠)하므로 가히 더불어 도에 같이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단지 그 광간의 젊은이들이 중도를 넘고 정도를 잃어 이단에 빠지지 않을까 염려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빨리 돌아가서 그들을 바르게 인도해주고 싶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與, 平聲. 斐, 音匪. ○ 此孔子周流四方, 道不行而思歸之歎也. 吾黨小子, 指門人之在魯者. 狂簡, 志大而略於事也. 斐, 文貌. 成章, 言其文理成就, 有可觀者. 裁, 割正也. 夫子初心, 欲行其道於天下, 至是而知其終不用也. 於是始欲成就後學, 以傳道於來世. 又不得中行之士而思其次, 以爲狂士志意高遠, 猶或可與進於道也. 但恐其過中失正, 而或陷於異端耳, 故欲歸而裁之也.
주희가 ‘이단에 빠지지 않을까‘ 운운하는 것이 좋은 표현이 아니지만, 주희의 이 장 해석은 별 문제가 없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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