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야 제육(雍也 第六)
편해(篇解)
이 편의 대체적 구성에 관하여 주희는 매우 재미있는 주석을 달아놓고 있다: ‘「옹야」편은 2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편의 제14장 이전은 그 대의가 「공야장(公冶長)」편과 같다[범이십팔장(凡二十八章). 편내제십사장이전(篇內第十四章以前), 대의여전편동(大意與前篇同)]’ 이것은 곧 「옹야」편의 28장이 앞의 14장과 뒤의 14장으로 그 성격이 대별되며, 앞 14장은 전편인 「공야장」과 그 대의가 연속성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주희는 「공야장」편의 성격을 ‘옛과 지금의 인물들의 현부 득실을 논함[논고금인물현부득실(論古今人物賢否得失)]’이라 규정했으므로, 이것은 「옹야」편의 전14장 또한 고금인물들의 현부 득실을 논하는 성격에서 그 대의가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옹야」편의 전14장은 「공야장(公冶長)」편의 연장선상에서 편집된 것으로 파악되어야 할 것인가?
우선 「옹야」편이 1~14장과 15~28장의 다른 성격으로 대비된다는 주자의 통찰은 일견(一見) 정당성이 있다. 전 14장은 모두 특정한 개인과 그 개인과 관련된 특정한 사태를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는데 반하여, 후 14장은 인물이 등장한다 해도 그것은 공자의 메시지를 유발시키기 위한 방편적 계기에 불과한 것이며, 그 주된 성격은 보편타당한 공자의 교훈을 표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후14장은 ‘자왈(子曰)’로 시작되는 「이인(里仁)」편적 성격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옹야」편은 두 개의 다른 편집체계가 합성된 것으로 보아야할 것인가? 물론 이러한 질문에 단안을 내릴 수 있는 확정적인 근거자료를 제시할 수는 없다. 우리는 전14장과 후14장 사이에 내재하는 성격의 같고 다름과, 연속과 단절의 양면성을 고찰할 수밖에 없다. 우선 전14장이 「공야장」의 고금인물들의 현부득실을 논하는 성격과 연속적인 것이라는 주희의 주장을 어떻게 이해해야할 것인가?
우선 전14장이 인물들의 현부득실을 논하고 있다 해도 「공야장」과는 매우 그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지적할 수가 있다. 「공야장」의 경우는 등장하는 인물들이 공자의 평가의 대상으로서 객관화되어 있다. 그리고 그 인물들은 공자 당대의 인물들뿐만 아니라 공자에게서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전대의 인물들까지를 포괄하고 있다. 그러나 「옹야」의 경우는 등장하는 사람들이 모두 공자 당대의 인물들일 뿐만 아니라, 대체적으로, 평가의 대상으로서 객관화되어 있기보다는 공자의 일상적 삶에서 해후하는 어떤 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평가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기설법(對機說法)인 것이다. 그리고 그 평가라는 것도 객관적 인물평이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어떤 주관적인 교훈적 요소를 내포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공야장」편이 공자의 말씀을 채록한 것들 중에서 어떤 기자가 고금인물(古今人物)의 현부득실(賢否得失)을 논(論)하는 자료들을 일관되게 수집하고 그 뒤에 그와 관련하여 입수된 공자 자술(自述)의 명언(名言)들을 덧붙인 것이라고 한다면, 이 「옹야」편의 전14장은 어디까지나 공자만년의 학단 속에서 일어났던 공자와 제자간의 문답과 그 제자들에 대한 교훈의 말씀이 직전제자들의 말로서 전송되어 내려오던 것이 노나라 후학들에 의하여 채록된 것으로 보여진다. 다시 말해서 「옹야」 편의 전14장의 내용은 공자말년의 학단의 생생한 모습을 전달하는 것으로, 공자의 사후에 그리 멀지 않은 시대의 전승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따라서 「옹야」편의 편찬의 목적과 유래는 「공야장(公冶長)」편과 다소 공통된 성격을 지닐지라도, 근원적으로는 구별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전14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들을 쭉 나열해보면 우리는 매우 충격적인 사실에 봉착하게 된다. 전 14장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14명인데 이들은 바로 「선진」 편에서 나열한 그 유명한 사과십철(四科十哲)의 10인을 전부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덕행(德行)의 안연(顔淵)ㆍ민자건(閔子騫)ㆍ염백우(冉伯牛)ㆍ중궁(仲弓), 언어(言語)의 재아(宰我)ㆍ자공(子貢), 정사(政事)의 염유(冉有)ㆍ계로(季路), 문학(文學)의 자유(子游)ㆍ자하(子夏), 10인이 모두 등장하고 있으며 그 외로 공서화(公西華)ㆍ원헌(原憲)ㆍ담대멸명(澹臺滅明)ㆍ번지(樊遲) 4인이 추가되어 있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공자 말년의 학단에서 실제적으로 중시된 인물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옹야」편 전14장의 성격을, 「선진(先進)」편과 동일한 전승의 다른 두 텍스트로 간주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방증하는 자료로서는 공자의 가장 사랑했던 애제자 안회에 대한 기술이 「옹야」에는 3번(2ㆍ5ㆍ9장)나오고, 「선진」에는 8번(3ㆍ6ㆍ7ㆍ8ㆍ9ㆍ10ㆍ18ㆍ22장)나오고 있는데 그 형식과 느낌의 톤이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들 수가 있다. 그중에 특히 6-2와 11-6, 두 장을 비교해보면, 그것은 나중에 본문에서 상술하겠지만, 동일한 사태의 다른 기술임이 분명한 것이다. 민자건(閔子騫)에 관한 양편의 기술도 같은 맥락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사실이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키무라 설).
전14장과 후14장이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 14장이 자주변의 인물에 관한 응기설법(應機說法)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면, 후14장은 그러한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특정성이 없으며, 보편타당한 추상적 도덕을 논구하고 있다는 맥락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후14장이 하나의 추상적 주제를 중심으로 일관되게 편찬된 것은 아닌, 잡찬(雜纂)의 체계라는 것은 본문의 정사(精査)에서 드러나지만, 제15장이 사도(斯道)를 말하고 있고 제28장이 사도의 현실적 실현의 방편으로서 인지방(仁之方)을 논하고 있으며, 그 사이에 나열된 대부분의 공자의 언급이 그러한 도(道)의 당연한 모습과 관련된 어떤 추상적 맥락의 흐름이 감지될 수 있다고 한다면, 후 14장도 어느 시점에서 어느 기자의 주관 속에서 일관된 의도로서 편집된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더구나 제 13장과 제14장이 인물에 대한 평어적 성격을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자왈(子曰)’의 형식과 어떤 연속적 느낌을 유발시키면서 전 14장과 후 14장의 매개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전 14장과 후 14장이 완전히 별개의 파편으로서 후대에 합성되었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옹야」편 전체가 어느 시점에서 일관된 맥락 속에서 편집되었다고 추론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후14장의 내용도 공문(孔門)의 직전제자들이 공자의 말로서 암송한 것이 전승된 것으로 보여지며, 전14장이나 후 14장이나 모두 어느 한 학단내에 전승된 다른 성격의 파편들이 같이 편찬된 것으로 간주된다. 다시 말해서 전14장이나 후14장이나 그 성격은 달라도 모두 공자만년의 학단 내의 직전제자들의 기억이 전승된 것으로 보여지며 그것은 공자사후, 몇 대를 거치지 않은 시대에 형성된 비교적 초기편찬으로 비정된다.
브룩스는 「공야장(公冶長)」편을 자유 공문학단을 리드했을 때 성립한 것으로 보고, 「옹야」편은 자유(子游)를 계승한 유자(有子, 유약有若)가 편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Yǒudž may have been the compiler of LY6.), 나는 이러한 추정이 너무 인위적인 단정이라고 생각한다. 즉 공단(孔團)의 리더들을 너무 정교하게 연대순으로 배열해놓고 『논어』의 파편들을 그 연대에 맞추어 연역적으로 꿰맞추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오히려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애매한 문헌은 애매한 그 모습대로 추론하는 것이 더 정교로울 수도 있는 것이다.
본 편은 모두 28장으로 되어 있다. 편 내의 제14장 이전은 대의가 전편 「공야장(公冶長)」과 같다.
凡二十八章. 篇內第十四章以前, 大意與前篇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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