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자신의 허물을 알고 자책하는 사람
5-2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아~ 절망스럽구나! 자신의 허물을 보고서 내심 스스로 자책하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하였다.” 5-26. 子曰: “已矣乎! 吾未見能見其過而內自訟者也.” |
여기 ‘이의호(已矣乎)’라는 표현은 「위령공」 12, ‘오미견호덕여호색자야(吾未見好德如好色者也)’라는 구문 앞에 한번 다시 나오고 있다. 이것은 주자가 주석 한 대로 종내 그러한 사람을 얻지 못하고 마는 것을 깊게 탄식하는 말이다[已矣乎者, 恐其終不得見而歎之也]. ‘아~ 정말 이젠 틀렸구나!’ 정도의 의미가 될 것이다. 현대 중국어의 표현으로는 ‘쑤안러(算了)’정도의 느낌이 될 것이다.
‘송(訟)’이란 원래 공자의 시대에도 재판의 뜻이 있었다. 그런데 이 장은 그러한 법제적 용어를 내성적 자책의 용어로 내면화시키고 있다는데 그 특성이 있다. 인간의 위대함이란 법적인 시비를 가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요, 그에 앞서 인간다움의 부끄러움을 자각하는 데 있다(2-3). ‘내자송(內自訟)’이란 「학이(學而)」 8에서 말한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않는다[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라는 표현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앞 장의 ‘소자회지(少者懷之)’적 맥락에서 말한다면, 인간은 늙어갈수록 자신의 허물을 인식하기도 어렵고, 또 그것이 허물임을 분명히 알아도 또 고치기를 꺼려하는 성향이 짙어진다. 나이가 40만 넘어도 자기의 허물을 자인하고 그에 대하여 내면적인 부끄러움을 느끼는 상황이란 정말 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늙어갈수록 끊임없이 자기를 자책하고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탄식한 것이다. ‘아~ 이젠 틀렸구나! 자기의 허물을 발견하고 내면 스스로 자책하는 인간을 만난다는 것은!’ 인간은 늙어갈수록 ‘내자송(內自訟)’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성인의 길에 들어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위대한 역사적 인물상들을 나열하면서, 그들에게 관하여 일일이 평론한 끝에, 공자가 내리고 있는 결론이란 단순한 것이다. 허물이 있으면 언제고 그것을 고칠 줄 아는 인간이 된다면 우리는 ‘성인’이라고 하는 고정된 이상적 모습을 더 이상 그릴 필요가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역사적 인물을 만난다는 것은 결국 이들의 득실을 보고 나 자신을 자책하는데 그 궁극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의호(已矣乎)’라는 것은 끝내 그러한 사람을 만나보지 못할까 두려워 탄식하신 것이다. ‘내자송(內自訟)’이라는 것은 입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마음속으로 자신을 허물하는 것이다. 사람이 허물이 있을 때 스스로 아는 자가 드물며, 허물을 알고서 내심으로 자책할 줄 아는 자는 더더욱 드물다. 내심으로 자책한다면 그 뉘우침과 깨달음이 깊고 간절하여 허물을 고칠 것임에 틀림이 없다. 부자께서 스스로 끝내 만나보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탄식하셨으니 배우는 자들을 깨우치심이 깊다.
已矣乎者, 恐其終不得見而歎之也. 內自訟者. 口不言而心自咎也. 人有過而能自知者鮮矣, 知過而能內自訟者爲尤鮮. 能內自訟, 則其悔悟深切而能改必矣. 夫子自恐終不得見而歎之, 其警學者深矣.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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