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안연의 호학(好學)
哀公問: “弟子孰爲好學?” 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貳過.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未聞好學者也.”
好, 去聲. 亡, 與無同.
○ 遷, 移也. 貳, 復也. 怒於甲者, 不移於乙; 過於前者, 不復於後. 顔子克己之功至於如此, 可謂眞好學矣. 短命者, 顔子三十二而卒也. 旣云今也則亡, 又言未聞好學者, 蓋深惜之, 又以見眞好學者之難得也.
○ 程子曰: “顔子之怒, 在物不在己, 故不遷. 有不善未嘗不知, 知之未嘗復行, 不貳過也.”
又曰: “喜怒在事, 則理之當喜怒者也, 不在血氣則不遷. 若舜之誅四凶也, 可怒在彼, 己何與焉. 如鑑之照物, 姸媸在彼, 隨物應之而已, 何遷之有?”
又曰: “如顔子地位, 豈有不善? 所謂不善, 只是微有差失. 纔差失便能知之, 纔知之便更不萌作.”
張子曰: “慊於己者, 不使萌於再.”
或曰: “詩書六藝, 七十子非不習而通也, 而夫子獨稱顔子爲好學. 顔子之所好, 果何學歟?” 程子曰: “學以至乎聖人之道也.” “學之道奈何?” 曰: “天地儲精, 得五行之秀者爲人. 其本也眞而靜. 其未發也五性具焉, 曰仁, 義, 禮, 智, 信. 形旣生矣, 外物觸其形而動於中矣. 其中動而七情出焉, 曰喜, 怒, 哀, 懼, 愛, 惡, 欲. 情旣熾而益蕩, 其性鑿矣. 故學者約其情使合於中, 正其心, 養其性而已. 然必先明諸心, 知所往, 然後力行以求至焉. 若顔子之非禮勿視, 聽, 言, 動, 不遷怒貳過者, 則其好之篤而學之得其道也. 然其未至於聖人者, 守之也, 非化之也. 假之以年, 則不日而化矣. 今人乃謂聖本生知, 非學可至, 而所以爲學者, 不過記誦文辭之間, 其亦異乎顔子之學矣.”
해석
哀公問: “弟子孰爲好學?” 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貳過.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未聞好學者也.”
애공이 “제자 중에 누가 호학합니까?”라고 물으니, 공자께서 “안회라는 사람이 배우길 좋아하여 화를 남에게 전이하지 않으며 잘못을 두 번 다시 하지 않았는데 불행히 단명하여 죽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없으니, 배우길 좋아하는 사람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하셨다.
好, 去聲. 亡, 與無同.
○ 遷, 移也. 貳, 復也.
천(遷)은 옮긴다는 것이다. 이(貳)는 다시 한다는 것이다.
怒於甲者, 不移於乙;
갑에게 화가 나서 을에게 옮기지 않고
過於前者, 不復於後.
전에 잘못했는데 후에 다시 하지 않는다.
顔子克己之功至於如此,
안자는 극기(克己)의 공이 이런 경지에까지 이르렀으니,
可謂眞好學矣.
참으로 호학했다고 할 만하다.
短命者, 顔子三十二而卒也.
단명(短命)은 안자가 32살에 죽었다는 것이다.
旣云今也則亡, 又言未聞好學者,
이미 지금은 없다고 말하고 또한 호학하는 자를 듣지 못했다고 말했으니,
蓋深惜之,
대저 깊이 애석해한 것이고
又以見眞好學者之難得也.
또한 진짜 호학하는 사람을 얻기 힘듦을 보여준 것이다.
○ 程子曰: “顔子之怒,
정이천이 말했다. “안자의 화냄은
在物不在己, 故不遷.
사물에 있고 자기에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옮기지 않았다.
有不善未嘗不知,
자신에게 불선(不善)함이 있으면 일찍이 알지 않음이 없었고
知之未嘗復行, 不貳過也.”
그걸 알면 일찍이 다시 행하지 않아서 다시 잘못을 두 번 하지 않았다.”
又曰: “喜怒在事, 則理之當喜怒者也,
또 말했다. “희노(喜怒)가 일에 있으면 마땅히 희노(喜怒)해야 하고
不在血氣則不遷.
혈기에 있지 않으면 옮기지 말아야 한다.
若舜之誅四凶也,
마치 순임금이 사흉(共工ㆍ驩兜ㆍ三苗ㆍ鯀)을 주륙함에
可怒在彼, 己何與焉.
화낼 만한 게 저들에게 있었으니,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如鑑之照物, 姸媸在彼,
마치 거울이 물건을 비춤에 곱고 추함이 저에게 있어
隨物應之而已, 何遷之有?”
물건에 따라 응할 뿐이니 어찌 옮김이 있겠는가?”
又曰: “如顔子地位, 豈有不善?
또한 말했다. “안자와 같은 경지에 어찌 불선(不善)함이 있겠으리오.
所謂不善, 只是微有差失.
불선(不善)하다고 말한 것은 다만 미세한 어긋남이 있는 것이다.
纔差失便能知之,
조금이라도 어긋나 잃은 것이면 곧 그것은 알게 되고,
纔知之便更不萌作.”
조금이라도 그것을 알면 곧 고쳐 싹트지 않게 한다.”
張子曰: “慊於己者, 不使萌於再.”
장자가 “자기에게 만족하는 사람은 다시 싹트지 않게 한다.”라고 말했다.
或曰: “詩書六藝, 七十子非不習而通也,
어떤 이가 말했다. “시서육례는 70명의 제자가 익혀 통달하지 않음이 없지만
而夫子獨稱顔子爲好學.
부자께서 유독 안자를 호학한다고 칭찬하셨으니
顔子之所好, 果何學歟?”
안자가 좋아하는 것은 과연 어떠한 배움인가?”
程子曰: “學以至乎聖人之道也.”
정자가 “배워서 성인의 도에 이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學之道奈何?”
“배움의 도는 어떤 것인가”라고 물었다.
曰: “天地儲精,
말하겠다. “천지가 정(精)을 저장함에
得五行之秀者爲人. 其本也眞而靜.
오행의 빼어남을 획득한 것이 사람이 되니 본래 참되고 고요했다.
其未發也五性具焉,
발동하지 않았을 때에 오성(五性)이 구비되었으니,
曰仁, 義, 禮, 智, 信.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라 한 것이다.
形旣生矣, 外物觸其形而動於中矣.
형체가 이미 생김에 외물이 그 형체에 접촉하여 내부를 동요시킨다.
其中動而七情出焉, 曰喜, 怒, 哀, 懼, 愛, 惡, 欲.
내부가 동요되면 칠정(七情)이 나오니,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이라 하는 것이다.
情旣熾而益蕩, 其性鑿矣.
정(情)이 이미 타올라 더욱 끓게 되면 그 본성이 뚫리게 된다.
故學者約其情使合於中,
그러므로 깨우친 사람은 그 정을 단속하고 중용에 합치시켜
正其心, 養其性而已.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 그 성(性)을 기를 뿐이다.
然必先明諸心, 知所往,
그러나 반드시 먼저 마음에 밝혀 갈 바를 안 후에
然後力行以求至焉.
힘써 행하여 구하는 것이다.
若顔子之非禮勿視, 聽, 言, 動,
마치 안자가 예가 아닌 봄, 들음, 말함, 움직임을 안 하는 것과
不遷怒貳過者,
화냄을 옮기지 않는 것과 잘못을 두 번 다시 않은 것은
則其好之篤而學之得其道也.
좋아함이 독실해져 배움이 도를 획득한 것과 같다.
然其未至於聖人者, 守之也, 非化之也.
그러나 성인에 이르지 못한 것은 지키긴 했으나 변화되진 않은 것이니
假之以年, 則不日而化矣.
수명을 빌려주어 더 살게 했다면, 오래지 않아 교화됐으리라.
今人乃謂聖本生知, 非學可至,
지금 사람은 ‘성인은 본래 생지(生知)의 자질로 배워도 이를 수 없다’고 여겨
而所以爲學者, 不過記誦文辭之間,
배우는 것이 암기하고 외운 문장을 지나지 않았으니,
其亦異乎顔子之學矣.”
또한 안자의 배움과는 다른 것이다.”
○ ‘논어’ 옹야(雍也)편의 이 장에서 공자는 제자 안회(顔回)의 죽음을 비통해하였다. 안회의 자(字, 성인 때 이름)는 자연(子淵)이므로 안연(顔淵)이라고도 한다. ‘사기(史記)’에서는 29세로 머리가 희어져 죽었다고 했으나 ‘공자가어(孔子家語)’에서는 32세로 죽었다고 했다. 노(魯)나라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문인(門人, 제자) 중 누가 가장 학문을 좋아합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안회가 그런 제자였으나 불행하게도 단명했다고 말했다.
유안회자(有顔回者)는 ‘안회라는 자가 있다’로 풀이하지만 조선시대 언해에서는 유(有)를 새기지 않아서 유안회자(有顔回者) 다음에 주격 조사 ‘가’를 붙였다. 호학(好學)은 ‘학문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불천노(不遷怒)는 ‘노여움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단 정약용은 ‘하늘을 탓하거나 다른 사람을 원망하거나 하지 않는다’로 보았다.
불이과(不貳過)는 ‘잘못을 두 번 거듭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貳)는 세발 솥 정(鼎)의 새김 글자를 창으로 깎아 고치는 일을 가리켰으나, ‘거듭’이나 ‘둘’의 뜻으로 쓰인다. 불행(不幸)의 행(幸)은 수갑을 나타냈지만, 형벌을 받되 수갑 차는 정도로 그치면 다행이라 ‘행복하다’의 뜻을 갖게 된 듯하다. 단명(短命)은 수명(壽命)이 짧은 것을 말한다. 의(矣)는 종결의 어조를 지닌다.
안회가 인(仁)에 대해 묻자 공자는 “자기의 사사로움을 극복하여 예로 돌아가는 극기복례(克己復禮)가 인(仁)이다[克己復禮爲仁]”라고 가르쳤다. 주자(주희)는 안회가 극기(克己) 공부를 했기에 ‘불천노 불이과(不遷怒 不貳過)’했다고 해설했다. 안회는 인격 주체를 성장시키는 참된 공부를 했던 것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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