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사(史)하기보다 야(野)하리라
6-1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질(質)이 문(文)을 이기면 야(野)하고, 문이 질을 이기면 사(史)하다. 문과 질이 골고루 배합된 연후에나 군자라 일컬을 수 있는 것이다.” 6-16. 子曰: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 |
너무도 유명한 문구이기에 별다른 해석을 요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말화 되어 있기에 풀어 번역하면 오히려 원의가 협애하게 축소될 뿐이다. ‘야(野)’는 가공되지 않은 투박함, 촌스러움, 생긴 그대로의 원초적 질박함이요, ‘사(史)’는 문명의 세련화를 거친 닳아빠짐, 반지르르함, 교양미를 지칭한다. 나 도올은 양자에 있어서 완벽한 빈빈(彬彬)을 기대할 수 없다면 항상 사(史)보다는 야(野)로 치우치는 것을 사랑한다. 야가 사보다 자유롭고 크고 더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공자의 ‘문질빈빈’과 같은 말은 그것이 어느 시공에서든지 그 상황에 따라 다양한 맥락으로 쓰여질 수 있다는 데 그 위대함이 존(存)하는 것이다. 「안연」 8에 관련된 내용이 있다.
‘야(野)’는 야인(野人)을 가리키는 것이니, 그것은 촌스럽고 소략한 것이다. ‘사(史)’는 문서를 관장하는 사람이니, 많이 듣고 사물을 익혀 지식의 끼는 있으나 성(誠)이 혹 부족할 수가 있다. ‘빈빈(彬彬)’은 얼룩반점이 고르게 분포되어 문채 나는 모습[班班]이니, 사물이 잘 섞이어 적당한 균형을 이룬 모습이다. 배우는 지는 당연히 남은 것을 덜어 부족한 곳에 보태야 하니, 인격을 완성하는데 이르게 되면, 그렇게 되리라고 기대하지 않아도 그렇게 빈빈한 모습으로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공자님께서 특별히 말씀하신 것이다.
野, 野人, 言鄙略也. 史, 掌文書, 多聞習事, 而誠或不足也. 彬彬, 猶班班, 物相雜而適均之貌. 言學者當損有餘, 補不足, 至於成德, 則不期然而然矣.
○ 양시가 말하였다: “문과 질은 어느 것이 더 승(勝)해서는 아니 된다. 그러나 질이 문을 승하는 것은, 아직도 단맛이 여러 맛을 수용할 수 있는 것과 같고, 흰색이 여러 가지 색깔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아 가능성이 있지만, 문이 승해 버려 질이 파멸되는데 이르게 되면, 진실로 그 근본이 망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문이 있다 한들 그 놈의 문을 어디다 쓰겠는가? 그러하니 사(史)하려면 차라리 야(野)한 것이 좋다.”
○ 楊氏曰: “文質不可以相勝. 然質之勝文, 猶之甘可以受和, 白可以受采也. 文勝而至於滅質, 則其本亡矣. 雖有文, 將安施乎? 然則與其史也, 寧野.”
귀산(龜山)의 말이 내 생각과 같다. 귀산만 해도 노불(老佛)에 깊은 이 해가 있는 사람이라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질(質)은 노자가 말하는 박(樸)과 같다. 유ㆍ도를 나누어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은 없다. 한자문명권의 가능성을 스스로 제약시키는 우행(愚行)일 뿐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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