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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옹야 제육 - 13. 패주할 땐 후미에서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은 맹지반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옹야 제육 - 13. 패주할 땐 후미에서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은 맹지반

건방진방랑자 2021. 6. 24.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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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패주할 땐 후미에서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은 맹지반

 

 

6-1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맹지반(孟之反)은 공을 자랑하지 않는구나! 노 나라의 군대가 퇴각할 때에 후미를 맡아 싸웠다. 노나라의 북성 문을 최후로 들어갈 때 말 궁둥이를 채찍질하면서 말했다. ‘내가 용감해서 후방을 맡은 것은 아니다. 말이 시원찮아 뒤처졌을 뿐이다.’”
6-13. 子曰: “孟之反不, 奔而殿. 將入門, 策其馬, : ‘非敢後也, 馬不進也.’”

 

맹지반(孟之反, 멍 즈환, Meng Zhi-fan)은 공자 당대의 인물로서 노나라의 대부라고 한다. 이름이 측(), 또는 자측(子側). 지반(之反)은 자()인데, 그냥 반()이라고도 쓴다. 맹자반(孟子反)이라고도 쓴다.

 

이 전투의 상황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애공(哀公) 11년 봄 기사에 실려있다. BC 484, 공자 68세 때의 사건이었다. 제나라가 식()의 싸움에 대한 보복으로 노나라를 쳤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노나라의 우군(右軍)은 퇴각해야만 했다. 본 장의 기사에 의하면 이 퇴각하는 군대의 후미를 맡은 것은 맹지반이었다. 제일 늦게 노성 속으로 퇴각해 들어가면서도 그는 자기의 공을 자랑하지 않았다. 제일 어려운 역할을 맡아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면서도 말이 시원찮아 뒤처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책임 있고 겸허한 장수였던 것이다. 전투에서는 패했지만 맹지반의 책임 있는 후방방위는 많은 사람의 생명을 건졌다. 그러나 아무도 패군의 공을 기억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그 공을 기억한 사람은 명장 숙량흘의 아들 공자였다. 공자는 맹지반의 모습에서 엄마를 통해 들은 자기 아버지의 무용담을 연상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 논어의 구절에도 공수신퇴(功遂身退)’(노자8)라든가 자벌자무공(自伐者無功)’(노자24)이라는 노자의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모두 비슷한 사유의 패러다임 속에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막상 좌전애공 11 봄 기사를 보면, 이러한 공자의 평어를 정당화 시킬 수 있는 충분한 맥락이 드러나지 않는다.

 

 

맹지측이 뒤늦게 도망해 들어가면서 꽁무니가 되었다. 화살을 하나 뽑아 말 궁둥이를 때리며 말했다: “이놈의 말아! 왜 이렇게 안 가니?”

孟之側後入以爲殿, 抽矢策其馬曰: “馬不進也.”

 

 

공자가 말하듯이 자랑하지 않았다[不伐]’라는 말도 없고, ‘내가 용감해서 후방을 맡은 것은 아니다[비감후야(非敢後也)]’라는 변명조의 이야기도 없다. 최악으로 해석하면, 그냥 뒤처져서 말에게 화풀이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다. 더구나 채찍도 없고 화살을 하나 뽑아 말 궁둥이를 때리고 있으니 장수로서 채찍조차 잃어버린 상태였다. 이토오 진사이(伊藤仁齋)는 이것은 겸손의 메시지라기보다는 자기 패전의 실상을 먼저 자기가 폭로해버리는 용기의 메시지일 뿐이라고 말한다[先自暴其實]. 그러나 이렇게 진사이처럼 해석해버리고 나면 공자 말은 쑥스럽게 되어버리고 만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은 없다. 정보가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논어의 맥락 그대로 그냥 읽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산도 별 이야기가 없다.

 

 

(殿)’은 거성이다. 맹지반(孟之反)’ 노나라의 대부이다. 이름이 측()이다. 호인이 말하였다: “‘()’은 장주(莊周)가 칭하는 바, 맹자반(孟子反)이라는 사람이다(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 ‘()’은 공을 자랑하는 것이다. ‘()’은 패주하는 것이다. 군대의 후미를 (殿)’이라고 말한다. ‘()’은 채찍질함이다. 전투에서 패하고 퇴각할 때는 후미에 있는 것을 공으로 삼는다. 맹지반은 도망가면서도 후미를 맡아 싸웠다. 그러므로 이런 말로써 자신의 공을 겸손하게 가린 것이다. 이 사건은 애공 11 기사에 나온다.’”

殿, 去聲. 之反, 魯大夫, 名側. 胡氏曰: “反卽莊周所稱孟子反者是也.” , 誇功也. , 敗走也. 軍後曰殿. , 鞭也. 戰敗而還, 以後爲功. 反奔而殿, 故以此言自揜其功也. 事在哀公十一年.

 

사량좌가 말하였다: “사람이 능히 사람 위에 올라서려 함이 없는 마음을 유지시킬 수 있다면, 사람의 욕심이 날로 사라지고 천리가 날로 밝아져서, 굳이 자기를 뽐내고 남에게 과시한다는 것은 족히 말할 건덕지도 없어진다. 그러나 배움을 알지 못하는 자는 사람 위에 올라서려는 마음을 항시 잊는 법이 없다. 맹지반과 같은 삶의 태도는 모범으로 삼을 만하다.”

謝氏曰: “人能操無欲上人之心, 則人欲日消, 天理日明, 而凡可以矜己誇人者, 皆無足道矣. 然不知學者欲上人之心無時而忘也, 若孟之反, 可以爲法矣.”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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