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중용의 덕이 지극하다
6-2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중용의 덕됨이 지극하도다! 중용을 실천하는 백성이 드문지가 오래되었도다.” 6-27. 子曰: “中庸之爲德也, 其至矣乎! 民鮮久矣.” |
『중용(中庸)』 제3장에도 같은 말이 실려 있는데, 그 파편에는 마지막 구가 ‘민선능구의(民鮮能久矣)’로 되어있다. 뜻에는 대차가 없다. 『중용』 제3장과 「옹야」 본 장이 동일한 로기온이라고 본다면 이 27장은 증자학파 계열의 전승이 「옹야」로 편입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그 사상적 맥락은 정확하게 꼬집어 말하기는 어려우나 증자-자사의 학통의 본원이 역시 공자에게 있다고 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편집일 것이다. 하여튼 공자의 사상의 어느 측면이 ‘중용’이라는 개념으로 확대되어 나아갔을 것이다.
‘중(中)’은 어디까지나 ‘시중(時中)’이므로 오늘날의 ‘호미오스타시스(homeo-stasis)’와 같은 유기체론적 측면에서 고찰되어야 할 것이다. ‘용(庸)’은 일상성(commonality)이다. 후대의 사람이지만 조주(趙州)의 평상심(平常心) 개념은 중용의 용을 극적으로 표현한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선(鮮)’은 상성이다. ○ ‘중(中)’이라는 것은 과(過: 지나침)ㆍ불급(不及: 못 미침)이 없는 것을 이름한 것이다. ‘용(庸)’은 평상(平常)의 뜻이다. ‘지(至)’는 극도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다. ‘선(鮮)’은 적다이다. 이 장의 대의는 사람들에게 이 덕이 결핍된 지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鮮, 上聲. ○ 中者, 無過ㆍ無不及之名也. 庸, 平常也. 至, 極也. 鮮, 少也. 言民少此德, 今已久矣.
정자가 말하였다: “치우치지 않는 것을 ‘중(中)’이라 하고, 변하지 않는 것을 ‘용(庸)’이라 한다. 중이라는 것은 천하의 정도(正道)요, 용이라는 것은 천하의 정리(正理)이다. 세상의 가르침이 쇠퇴 한 이래 백성들은 이 중용을 실천하려 분발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덕을 지니지 못하게 된 지가 오래되었다.”
○ 程子曰: “不偏之謂中, 不易之謂庸. 中者天下之正道, 庸者天下之定理. 自世敎衰, 民不興於行, 少有此德久矣.”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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