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공자가 안색이 변하는 상황에 대한 기록
10-16A. 잠잘 때에는 시체처럼 대(大)자로 뻗어 주무시는 법이 없었으며, 사적으로 집에서 거하실 때는 일체 용태를 꾸미는 법이 없었다. 10-16A. 寢不尸, 居不容. |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아도 부부가 한 침대에서 반듯하게 누워 불을 끄는 것이 뭐 정도인 양 항상 그런 장면을 비추지만 참으로 유치한 발상이다. 부부가 꼭 한 침대에서 자야한다는 서양식 발상도 이미 우리나라의 절대 보편적 규범인 것처럼 미신화되어 버렸다. 방의 여유가 있다면 각방과 합방은 자유롭게 운용되어야 한다. 그런 문제에 관해 하등의 사랑을 운운할 계제가 아닌 것이다. 잠은 완벽하게 깊은 잠을 자는 것이 다음날의 일과를 위해 좋은 것이요, 꼭 한 침대에서 같이 자야만 좋은 잠을 자는 것도 아니다. 공자의 감각에서 본다면 두 남녀가 한 침대에서 반듯이 드러누워 있는 모습은 두 시체를 눕혀놓은 듯하다 고 할 것이다.
반듯이 배를 위로 향하고 눕는 것을 여기 강시(殭屍) 같다고 표현한 것이다. 인간이 잠을 자는 포즈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역시 엄마 자궁 속에서 있던 모습이다. 공자도 ‘곡굉이침지(曲肱而枕之)’라고 한 것을 보면, 몸을 옆으로 세워 잤다. 그리고 다리는 살짝 구부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잠잔다는 것은 모든 것이 수렴되는 상태이므로 뻗고 자는 것보다는 약간 옹크리고 자는 것이 정상이다. 뻗는 모습을 시체 같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양생가(養生家)들의 공통된 견해이며 나 도올도 경험상 그렇게 생각한다. 인간이 잠을 잔다는 것은 화이트헤드의 말로 하면 상향(上向)의 작용이며, 엔트로피의 감소작용이며, 새로운 신(神)을 위한 굴(屈)의 작용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잠자는 모습도 생명력이 넘쳐야 한다. 생명력이 넘치는 모습은 ‘원반던지는 사나이’ 같은 희랍조각이 있듯이 원반을 던지는 순간의 모습이 아니라, 던지기 직전의 옹크린 모습인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는 동안 계속 움직인다. 미세하게든, 크게든 무의식중에 계속 움직인다. 옹크린 양태도 좌로 우로 바뀌는 것이 정상이다. 그렇지 않으면 욕창이 생기고 시체형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잠자는 공간은 넉넉하게 혼자 자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좋다. 어찌 한 시트, 한 침대 위에서 옹크리고 자는 남녀의 모습이 바람직한 모습인가? 서양인들의 생활문화는 도 무지 이해가 안 되는 저급성이 많다. 그런데 20세기 동안에 조선인들은 자기네 생활습관을 다 잃어버렸다. 어찌 스프링침대 위에서 지는 것이 좋단 말인가? 어떠한 경우에도 딱딱한 평상 위에 요를 깔고 자는 것만큼 좋을 수는 없다. 침대는 결코 과학이 될 수가 없다. 평상이나 온돌방이야말로 영원한 과학인 것이다.
여기 ‘거(居)’라는 것은 ‘연거(燕居)’ ‘한거(閑居)’를 말한다. 사적으로 편하게 거할 때는 일체, 모습이든, 옷이든, 마음이든 꾸밈이 없이 릴랙스 되어야 한다. 공자는 자연인이고 해탈인이었다.
‘시(尸)’라는 것은 딱딱하게 반듯이 누워있는 모습이 꼭 죽은 사람 같다는 의미이다. ‘거(居)’는 집에서 사적으로 거처하는 것이다. ‘용(容)’은 용의(容儀: 격식을 차리는 용태)이다.
尸, 謂偃臥似死人也. 居, 居家. 容, 容儀.
범순부가 말하였다: “‘침불시(寢不尸)’는 죽은 사람과 유사해서 보기 싫다는 겉모양의 문제가 아니라, 태만한 기운을 신체에 베풀지 아니 하며, 비록 사체(두 손과 두 발)를 편안히 편다 할지라도 방자하게 풀어 제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거불용(居不容)’이란 나태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단지 제사를 받들고 빈객을 대접하는 때와 같지는 않다는 정도의 말이다. 앞에서 ‘신신요요(申申夭夭)’(7-4)라고 표현한 그 모습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것과 일치한다.”
范氏曰: “寢不尸, 非惡其類於死也. 惰慢之氣不設於身體, 雖舒布其四體, 而亦未嘗肆耳. 居不容, 非惰也. 但不若奉祭祀, 見賓客而已, 申申夭夭是也.”
10-16B. 공자께서는 거친 상복을 입은 자를 보시면 가까운 사이라도 표정을 가다듬어 슬픔을 표시하시었다. 사모관대를 제대로 갖춘 사람과 눈먼사람을 보시면 비록 자주 만나는 허물없는 사이라도 용모를 가지런히 다듬으시었다. 10-16B. 見齊衰者, 雖狎, 必變. 見冕者與瞽者, 雖褻, 必以貌. |
9-9에서 이미 해설되었다. 새로 나온 정현 주본 텍스트에는 제일 앞에 자(子)가 붙어있다[子見齊衰]. ‘자최(齊衰)’는 상복의 단계에서 두 번째로 거친 것이다. 제일 거친 것으로부터 참최(斬衰, 3년 복상), 자최(齊衰, 3년), 대공(大功, 9개월), 소공(小功, 5개월), 시마(媤麻, 3개월)이다. 유대인들이나 팔레스타인지역 사람들에게도 이런 풍속은 비슷하며 염소털을 꼬아서 만든 상복을 입는데 가까운 사람일수록 거친 옷을 입고, 더 큰 슬픔을 표하는 방식으로는 재를 뒤집어쓴다.
‘설(褻)’은 ‘사복(평복)을 입었더라도’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으나, 고주ㆍ신주 모두 ‘자주 만나는 허물없는 사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褻, 謂數相見也. 고주. 褻, 謂燕見. 신주].
‘압(狎)’은 평소에 절친한 사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고, ‘설(褻)’은 보통 때 한가롭게 항상 만나는 사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모(貌)’는 예모(禮貌)를 갖추는 것이다. 나머지는 전편(9-9)에 나왔던 것이다.
狎, 謂素親狎. 褻, 謂燕見. 貌, 謂禮貌. 餘見前篇.
10-16C. 수레를 타고 가실 때 복상중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수레 앞쪽에 있는 가로막대 식(軾)을 잡고 허리를 굽혀 절하시었다. 죽은 자의 물건들을 짊어지고 가는 자에게도 식을 잡고 허리를 굽혀 절하시었다. 10-16C. 凶服者式之. 式負版者. |
공자시대에 수레에 방이 따로 있는 것도 있지만, 보통 출근할 때 쓰는 수레는 전차 스타일의 수레로서 탄 사람이 서서[倚立] 가는 것이다【황간 시대에 이런 수레를 ‘용기차(龍旂車)’라고 불렀다 한다】. 덜컹거리고 쓰러지기 쉬우니깐 수레 앞쪽에 서서 두 손으로 붙잡는 횡목(橫木)이 있는데 그 횡목을 교(較)라고 불렀다. 그 교와 바닥 중간쯤에 또 하나의 횡목이 있는데 그 아래쪽 횡목을 식(軾)이라고 불렀다. 그 식을 잡으면 허리가 구부러진다. 그렇게 하는 경례(敬禮)를 식(式)이 라고 했다(이상은 황간의 설).
다음에 ‘부판(負版)’의 ‘판’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인데, 전통적으로 나라의 도적(圖籍), 도판(圖版), 그러니까 국가의 지도나 호적으로 해석했는데 맥락상 너무 이상하다. 나는 죽은 자의 의물(衣物)을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는 유보남설을 따랐다[… 皆送死者衣物也. 哀敬死者, 故送死者衣物亦式之也].
여기 ‘흉복(凶服)’이란 ‘자최(齊衰)’보다는 가벼운 상복으로 대공 이하를 말한다. 그러니까 대공(大功)ㆍ소공(小功)ㆍ시마(媤麻)가 이에 해당된다.
‘식(式)’은 수레 앞의 횡목이다. 수레 타고 지나가다가 경의를 표해야 할 사람이 있으면 그것에 의지하여 허리를 굽힌다. ‘부판(負版)’이란 방국(邦國)의 지도나 호적을 짊어진 자이다【沃案. 종이가 없던 시절이라 이런 것을 모두 나무 판대기에 그리거나 새기거나 했다[古未有紙, 凡所書畫皆於版, 故云版也. 황소]】. 이 두 종류의 사람들에게 ‘식’의 경례를 하는 것은 상을 애도하는 것과 백성의 호구숫자를 중요하게 여기신 것이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요, 천자라도 하늘처럼 떠받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례』 추관 「사민(司民)」 백성들의 인구통계를 쓴 판(版)을 왕에게 올리면 왕도 그것을 절하고 받아 천부(天府)에 올린다고 했는데, 하물며 왕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감히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式, 車前橫木. 有所敬, 則俯而憑之. 負版, 持邦國圖籍者. 式此二者, 哀有喪, 重民數也. 人惟萬物之靈, 而王者之所天也. 故『周禮』“獻民數於王, 王拜受之”. 況其下者, 敢不敬乎?
10-16D. 성찬(盛饌)을 대접받으실 때에는, 반드시 얼굴빛을 가다듬고 일어나 성찬을 대접한 주인에게 절하였다. 10-16D. 有盛饌, 必變色而作. |
지금 중국에는 별로 이러한 예의가 남아있지 않으나, 지금도 우리나라에는 너무도 당연한 예의이다.
주인의 예우(禮遇)를 공경한 것이지, 성찬 그 자체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敬主人之禮, 非以其饌也.
10-16E, 번개와 우레, 맹렬한 바람이 일면 반드시 표정과 몸매를 가다듬으시었다. 10-16E. 迅雷風烈, 必變. |
천재지변에 대한 우려, 백성들이 또 태풍이나 수해로 당할 고통을 생각하면, 드러누워 있다가도 앉게 되고, 염려스러워 얼굴빛이 변한다. 천지신명께 백성들이 고통당하지 않도록 기도드리는 마음씨도 들어있을 것이다.
‘신(迅)’은 빠른 것이다. ‘열(烈)’은 맹렬한 것이다. ‘필(必)’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의 진노를 공경하는 것이다. 『예기』 「옥조」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빠른 바람, 번뜩이는 우레, 극심한 폭우가 일면 반드시 몸가짐을 바꾼다. 비록 한밤중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일어나 의관을 정제하고 앉는다.”
迅, 疾也. 烈, 猛也. 必變者, 所以敬天之怒. 『記』曰: “若有疾風, 迅雷, 甚雨則必變, 雖夜必興, 衣服冠而坐.”
○ 이 한 절은 공자의 용모(容貌)의 변화를 기록한 것이다.
○ 此一節, 記孔子容貌之變.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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