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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5부 내부에서 외부로 외부에서 내부로 - 2장 세 개의 첨점: 천하ㆍ주자ㆍ서양, 소박한 이단 본문

문집/열하일기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5부 내부에서 외부로 외부에서 내부로 - 2장 세 개의 첨점: 천하ㆍ주자ㆍ서양, 소박한 이단

건방진방랑자 2021. 7. 11.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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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이단

 

 

열하일기에 그려진 천주교는 그래서 매우 유치한 수준이다.

 

 

대저 저 서양인들이 말하는 야소(耶蘇, 예수)는 중국의 군자나 토번의 라마와 비슷합니다. 야소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늘을 공경하여 온 천지에 교리를 세웠지만, 나이 서른에 극형을 당하고 말았답니다. 해서, 그 나라 사람들이 몹시 애모하여 야소회를 설립하고는 그를 신으로 공경하여 천주라 부르게 되었지요. 그래서 야소회에 들어간 자는 반드시 비통해하면서 야소의 수난을 잊지 않는다고 합니다. 곡정필담(鵠汀筆談)

耶蘇者 如中國之語賢爲君子 番俗之稱僧爲喇嘛 耶蘇一心敬天 立敎八方 年三十遭極刑 而國人哀慕 設爲耶蘇之會 敬其神爲天主 入其會者 必涕泣悲痛 不忘天主

 

 

왕곡정은 이런 식으로 천주교를 간단히 정리한 뒤, 이것이 비록 부처를 배격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윤회의 설에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아마도 천당지옥설불교의 윤회설로 간주한 것 같다.

 

그래서 연암이 묻는다. 천당과 지옥의 설을 신봉하면서 불교를 공격하기를 마치 원수와 같이 하는 까닭은 무엇이냐고, 곡정의 대답은 이렇다. “서학이 어찌 감히 불교를 비방할 수 있겠습니까[西學安得詆釋氏]?” 중국에 들어와 중국인들이 불교를 배격하는 것을 보고는 거기에 편승하여 함께 비난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경전에서 상제나 주재자 같은 말을 빌려 와서 우리 유학에 아부하였습니다. 그 본령이 원래 명물과 도수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이는 우리 유학의 제이의(第二義)에 떨어진 셈입니다[於中國文書中 討出上帝主宰等語 以自附吾儒 然其本領 元不出名物度數 已落在吾儒第二義].” 한마디로 넘버 투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연암의 견해도 비슷하다. “그들 스스로는 자신들의 학문은 근원을 연구하고 근본을 따지는 학문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뜻을 세움이 지나치게 높고 말하는 것이 편벽되고 교묘해서, 하늘을 기만하고 사람을 속이는 죄과를 범하는 데로 귀결되고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이 보기에 천주교가 낯설게 느껴진 것은 이 종교가 수난과 원한에 휩싸여 있다는 점 때문이다. 앞서 곡정도 나이 서른에 극형을 입었으므로 그 나라 사람들이 몹시 애모하여 그 교에 들어간 자는 반드시 눈물지으며 슬퍼하여 잊지 않는다[年三十遭極刑 而國人哀慕 設爲耶蘇之會 敬其神爲天主 入其會者 必涕泣悲痛 不忘天主]’고 했는데, 연암의 인상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연암은 북경 천주당에서 양화(洋畵)’를 보고 이렇게 묘사했다.

 

 

그림 속에는 한 부인이 대여섯 살쯤 된 어린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있는데, 어린애는 병들어 파리한 몸으로 눈을 흘기며 빤히 쳐다보고, 부인은 고개를 돌려 차마 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있다. 곁에서 시중드는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병든 아이를 굽어보고 있는데, 처참한 광경에 고개를 돌린 자도 있다 황도기략(黃圖紀略)

有婦人膝置五六歲孺子 孺子病羸白眼直視 則婦人側首不忍見者 傍側侍御五六人 俯視病兒 有慘然回首者

 

 

이렇듯 그가 본 기독교는 비탄과 수난의 종교였다. 원죄, 십자가의 수난, 마리아의 탄식 등. 동양의 종교에서는 이런 식의 구조를 찾기 힘들다. 잘 알다시피 불교도교든 동양의 종교는 생에 대한 무한한 긍정과 생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은가. 그와 더불어 기독교의 교리적 근원이 되는 인격신이라는 설정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원시유학에 상제(上帝)라는 개념이 있긴 했지만, 인격신적 요소는 사라진 지 오래다. 결국 연암이나 곡정이 보기에 그것은 원한에 찬 슬픔의 종교일 뿐 아니라, 소박하기 그지없는 이단에 지나지 않았다.

 

20세기 초 근대계몽기에 이르면, 이런 견해는 완전히 뒤집힌다. 창조설이나 천당지옥설 등 연암 당시엔 황탄하기 그지 없다고 평가되던 것들이 유불도를 넘는 최고의 원리로 격상되면서 문명의 빛, 진리의 빛으로 떠오른다. 옥시덴탈리즘은 역사 저편으로 사라지고, 오리엔탈리즘이 도래한 것이다. 역사는 이렇게 윤전을 거듭하는가?

 

 

 ▲ 100년 전 명동의 천주당

지금은 평범한 교회당이지만, 연암 당시에는 서구문물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당시 국내에선 서학이 점차 정치적 쟁점으로 불거지고 있었음을 염두에 두면 연암에겐 더한층 의미심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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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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