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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5부 내부에서 외부로 외부에서 내부로 - 3장 인간을 넘어 주체를 넘어, 만물의 근원은 ‘먼지’ 본문

문집/열하일기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5부 내부에서 외부로 외부에서 내부로 - 3장 인간을 넘어 주체를 넘어, 만물의 근원은 ‘먼지’

건방진방랑자 2021. 7. 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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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인간을 넘어 주체를 넘어

 

 

만물의 근원은 먼지

 

 

연암은 연행이 시작되자, 말 위에서 중원의 선비들과 만나면 어떻게 논변을 펼칠까를 궁리한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지전설, 지동설로 한판 붙어보는 것.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이미 일반적인 상식이 되었지만, 지구가 돈다는 것은 아직 서양에서도 밝히지 못한 논변이다. 물론 그건 연암이 독자적으로 밝힌 이론이 아니라, 친구 정철조(鄭喆祚)홍대용(洪大容)에게서 귀동냥한 것이다.

 

곡정필담(鵠汀筆談)에서 드디어 실전이 벌어진다. 곡정이 묻는다.

 

 

우리 유학자들도 근래에는 땅이 둥글다는 설[地球之說]을 자못 믿습니다. 대저 땅은 모나고 정지되어 있고, 하늘은 둥글고 움직인다고 하는 설은 우리 유학자의 명맥이지요. 한데, 서양 사람들이 그것을 혼란스럽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선생은 어떤 학설을 지지하시는지요?

吾儒近世頗信地球之說 夫方圓動靜 吾儒命脈 而泰西人亂之 先生何從也

 

 

연암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한다.

 

 

하늘이 만든 것치고 모가 난 것은 없습니다. 모기 다리, 누에 궁둥이, 빗방울, 눈물, 침 등속이라 해도 둥글지 않은 건 없습니다. 저 산하와 대지, 일월성신도 모두 하늘이 만든 것이지만 그중에 모난 별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요.

天造無有方物 雖蚊腿蚕尻雨點涕唾 未甞不圓 今夫山河大地 日月星宿 皆天所造 未見方宿楞星則可徵地球無疑 鄙人雖未見西人著說 甞謂地球無疑

 

 

언뜻 보기에도 이런 전제와 논증은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오의 방식과는 좀 성격이 다르다. 이어지는 설명에 따르면, 그는 서양서적을 하나도 접하지 않았지만 지동설을 확신했다. 둥근 것은 반드시 움직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변증을 좀더 따라가보면,

 

 

대저 그 형태는 둥글지만 그 덕은 반듯하며, 그의 사공(事功)은 움직이지만 그 성정은 고요합니다. 만일 저 허공이 이 땅덩이를 편안히 놓아둔 상태에서 움직이거나 구르지 못하게 우두커니 공중에 매달려 있게만 한다면 이는 곧 썩은 물과 죽은 흙에 지나지 않으니, 즉시 썩어서 사라져버렸을 겁니다. 어찌 저토록 오랫동안 한곳에 멈춘 채 수많은 사물을 지고 실을 수 있으며, 황하와 한수처럼 큰 물들을 담고서도 쏟아지지 않도록 지탱할 수 있겠습니까.

大抵其形則圓 其德則方 事功則動 性情則靜 若使太空 安厝此地 不動不轉 塊然懸空 則乃腐水死土 立見其朽爛潰散 亦安能久久停住 許多負載 振河漢而不洩哉

 

 

움직이지도 않고, 돌지도 않고, 생명도 없는 덩어리가 어떻게 써지도 부서지지도 흩어지지도 않고 그대로 견딜 수있단 말인가? 이것이 그의 지전설의 기본전제이다. 그러니 서양인들이 땅덩어리가 둥글다고 하면서도 그것이 구른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으니, 이는 둥근 것은 반드시 굴러간다는 이치를 모르는격인 셈이다.

 

연암의 논리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서양인들이 지전설을 말하지 않은 건 만일 땅덩어리가 돈다면 모든 전도(躔度, 천체운행의 도수가 예측 불가능해질 것이므로, 이 땅덩어리를 붙들어서 말뚝을 꽂듯이 한곳에다 안정시켜놓아야 측량하기에 편리하리라는 생각이었을 겁니다[大約西人不言地轉者 妄意以爲若一轉地則凡諸躔度 尤難推測 所以把定此地 妥置一處 如揷木橛 然後便於推測也].” 예리한 반격! 의도했건 안했건 서구의 사고방식을 말뚝에 빗대고 있는 것은 정말 통렬한 바가 있다. 뉴턴 물리학을 비롯해 20세기 이후 서구에서 도래한 근대적 사고의 핵심은 그야말로 모든 사물과 사건들을 단선적 인과관계 안에 묶어놓는 것이 아니었던가. 정체성이나 자의식 혹은 민족, 인종 같은 인식론적 틀은 말할 것도 없고.

 

흔히 지전설이나 지동설은 서양서적을 통해 수입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처럼 서구적 경로와는 무관한 방식으로 도출되었다. 그 이치에 관한 한, 연암은 서구사상의 한계까지 지적할 정도로 자신의 논리에 강한 자신감을 표명한다. 물론 그의 변증은 과학적 원리의 습득을 통해 획득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철학적 입장, 즉 만물의 근원은 먼지라고 보는 만물진성설(萬物塵成說)’에 젖줄이 닿아 있다.

 

 

티끌과 티끌이 서로 결합하여, 그 엉기는 것은 흙이 되고, 거친 것은 모래가 되며, 단단한 것은 돌이 되고, 축축한 것은 물이 되며, 따스한 것은 불이 되고, 단단히 맺힌 것은 쇠가 되고, 매끄러운 것은 나무가 되지요. 움직이면 바람이 되고, 찌는 듯 무더워 기운이 빽빽하면 여러 가지 벌레로 변화하게 됩니다. 우리 인간들이란 바로 그 여러 벌레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곡정필담(鵠汀筆談)

塵塵相依 塵凝爲土 塵麤爲沙 塵堅爲石 塵津爲水 塵煖爲火 塵結爲金 塵榮爲木 塵動爲風 塵蒸氣鬱 乃化諸蟲 今夫吾人者 乃諸蟲之一種族也

 

 

만물의 기원은 먼지다. 먼지에서 물, , 나무, 바람이 만들어지고, 벌레가 만들어진다. 사람 또한 벌레 중의 한 부류이니 결국은 먼지에 속할 따름이다. 그리고 지구는 이 먼지들의 입자가 모여 만들어진 거대한 ()’인 것이다. 사실 지전설이나 지동설보다 훨씬 문제적인 테제가 바로 이 만물진성설이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기본적으로는 먼지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걸 기꺼이 인정하기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연암에게 천주교의 창조론 혹은 인격신 따위가 어필하기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도무지 마주칠 접점이 없는 것이다. 나란히 달리는 평행선처럼.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을 연상시키는 이런 논리는 일종의 연암식 유물론이다. ‘인성론(人性論)’ 역시 만물진성설이라는 유물론이 뻗어나가는 또 하나의 방향이다.

 

 

혼천의

홍대용이 나경적에게 의뢰해서 제작한 우주모형이다. 나경적은 나주 출신의 과학자로 1759년부터 1762년까지 3년에 걸쳐 이 모형을 만들었다. 홍대용(洪大容)과 그의 친구들, 곧 북학파 지식인들의 우주에 대한 꿈과 상상이 담겨 있는 기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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