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기계’와 ‘혁명시인’의 거리
蘆田少婦哭聲長 | 갈밭 마을 젊은 아낙네 울음소리 길어라 |
哭向縣門號穹蒼 | 고을문 향해 울다가 하늘에다 부르짖네 |
夫征不復尙可有 | 수자리 살러 간 지아비 못 돌아올 때는 있었으나 |
自古未聞男絶陽 | 남정네 남근 자른 건 예부터 들어보지 못했네 |
舅喪已縞兒未澡 | 시아버지 초상으로 흰 상복 입었고 갓난애 배냇물도 마르지 않았는데 |
三代名簽在軍保 | 할아버지 손자 삼대 이름 군보에 올라 있다오 |
薄言往愬虎守閽 | 관아에 찾아가서 잠깐이나마 호소하려 해도 문지기는 호랑이처럼 지켜 막고 |
里正咆哮牛去皁 | 이정은 으르대며 외양간 소 끌어갔네 |
磨刀入房血滿席 | 칼을 갈아 방에 들어가자 삿자리에는 피가 가득 |
自恨生兒遭窘厄 | 아들 낳아 고난 만난 것 스스로 원망스러워라 |
蠶室淫刑豈有辜 | 무슨 죄가 있다고 거세하는 형벌을 당했나요. |
閩囝去勢良亦慽 | 민땅의 자식들 거세한 것 참으로 근심스러운데 |
生生之理天所予 | 자식 낳고 또 낳음은 하늘이 준이치기에 |
乾道成男坤道女 | 하늘 닮아 이들 되고 땅 닮아 딸이 되지 |
騸馬豶豕猶云悲 | 불깐 말 불깐 돼지 오히려 서럽다 이를진대 |
況乃生民恩繼序 | 하물며 뒤를 이어갈 사람에 있어서랴. |
豪家終歲奏管弦 | 부잣집들 일 년 내내 풍류 소리 요란한데 |
粒米寸帛無所捐 | 낟알 한톨 비단 한치 바치는 일 없구나 |
均吾赤子何厚薄 | 우리 모두 다 같은 백성인데 어찌해 차별하나 |
客窓重誦鳲鳩篇 | 객창에서 거듭거듭 「시구편」(시구편: 통치자가 백성을 고루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뻐꾸기에 비유해 읊은 시경의 편명)을 읊노라 |
다산의 시 「애절양(哀絶陽)」 전문이다. ‘애절양(哀絶陽)’이란 ‘생식기를 자른 것을 슬퍼하다’라는 뜻이다. 다산은 이 작품의 창작 동기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것은 가경(嘉慶) 계해년 가을, 내가 강진에 있으면서 지은 시이다. 노전(蘆田)에 사는 한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사흘 만에 군보(軍保)에 등록되고 이정이 소를 빼앗아가니 그 사람이 칼을 뽑아 자기의 생식기를 스스로 베면서 하는 말이 ‘내가 이것 때문에 곤액을 당한다’ 하였다. 그 아내가 생식기를 관가에 가지고 가니 피가 아직 뚝뚝 떨어지는데 울며 하소연하였으나 문지기가 막아버렸다. 내가 그 사연을 듣고 이 시를 지었다.
此嘉慶癸亥秋, 余在康津作也. 時蘆田民, 有兒生三日入於軍保, 里正奪牛. 民拔刀自割其陽莖曰: “我以此物之故, 受此困厄.” 其妻持其莖, 詣官門, 血猶淋淋, 且哭且訴. 閽者拒之, 余聞而作此詩.
사실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그것을 직서적으로 담아낸 다산의 ‘뚝심’도 만만치 않다. 민중성, 리얼리즘, 전형성 등 80년대 비평 공간에서 다산의 시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도 바로 그런 점에 기인한다.
거기에 비하면 연암은 상당히 ‘기교파’에 속한다. ‘레토릭’에 기댄다는 뜻이 아니라, 의미를 몇 겹으로 둘러치거나 사방으로 분사하는 방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양반전(兩班傳)」을 예로 들어보자. 정선 부자가 가난한 양반에게 돈을 주고 ‘양반증’을 산다. 양반이란 무엇인가?
오경이면 늘 일어나 유황에 불붙여 기름등잔 켜고서, 눈은 코끝을 내리보며 발꿈치를 괴고 앉아, 얼음 위에 박 밀듯이 『동래박의(東萊博議)』를 줄줄 외워야 한다. 주림 참고 추위 견디고 가난 타령 아예 말며, 이빨을 마주치고 머리 뒤를 손가락으로 퉁기며 침을 입안에 머금고 가볍게 양치질하듯 한 뒤 삼키며 (중략) 손에 돈을 쥐지 말고 쌀값도 묻지 말고, 날 더워도 버선 안 벗고 맨상투로 밥상 받지 말고, 밥보다 먼저 국 먹지 말고 (중략)
五更常起, 點硫燃脂, 目視鼻端, 會踵支尻, 『東萊博議』 誦如氷瓢. 忍饑耐寒, 口不說貧, 叩齒彈腦, 細嗽嚥津 (中略) 手毋執錢, 不問米價. 暑毋跣襪, 飯毋徒髻, 食毋先羹 (中略)
이게 첫 번째 문서다. 이거야 뭐 몸만 잔뜩 피곤하고 옹색하기 짝이 없지 않는가. 고작 그게 양반이라면 한마디로 ‘밑천’이 아까울 뿐이다. 양반 문서를 산 부자가 “양반이라는 것이 겨우 이것뿐입니까[兩班只此而已耶]?”라고 투덜거리자, 두 번째 문서가 작성된다.
양반으로 불리면 이익이 막대하다. 농사, 장사 아니하고, 문사 대강 섭렵하면, 크게 되면 문과 급제, 작게 되면 진사로세. (중략) 방안에 떨어진 귀걸이는 어여쁜 기생의 것이요, 뜨락에 흩어져 있는 곡식은 학을 위한 것이라 궁한 선비 시골 살면 나름대로 횡포부려, 이웃 소로 먼저 갈고, 일꾼 이 김을 매도 누가 나를 거역하리. 네 놈 코에 잿물 분고, 상투 잡아 도리질치고 귀얄수업 다 뽑아도, 감히 원망 없느니라.
稱以兩班. 利莫大矣. 不耕不商, 粗涉文史, 大决文科, 小成進士. (중략) 室珥冶妓, 庭糓鳴鶴. 窮士居鄕, 猶能武斷, 先耕隣牛, 借耘里氓, 孰敢慢我? 灰灌汝鼻, 暈髻汰鬢, 無敢怨咨.
증서가 반쯤 작성될 즈음, 부자는 어처구니가 없어 혀를 빼면서 “그만두시오. 그만두시오. 참 맹랑한 일이오. 장차 날더러 도적놈이 되란 말입니까[已之已之! 孟浪哉! 將使我爲盜耶]?”하고 머리채를 휘휘 흔들면서 달아나버렸다. 거들먹거리며 호의호식하는 양반의 삶이 이 평민 부자가 보기에는 여지없는 ‘도둑놈 팔자’였던 것이다. “종신토록 다시 양반의 일을 입에 내지 않았다[終身不復言兩班之事].”는 게 마지막 문장이다.
결국 이 작품의 골격은 두 개의 문서가 전부다. 그것을 통해 양반의 위선과 무위도식, 패덕 등을 간결하게 압축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언표 주체들의 겹쳐짐, 해학과 풍자, 아이러니와 역설 등 다양한 수사적 전략이 담겨 있어 저자의 의도를 한눈에 간파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이런 형식을 소설로 볼 수 있는가도 상당히 난감한 문제다. 문서 두 개로 진행되는 소설이라? 만약 그렇다면, 이건 마땅히 전위적인 실험의 일종으로 간주해야 한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