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부터의 도피
호열자? 죽음의 귀신? 순간 모골이 송연해지면서 쭈뼛, 동욱의 의식 속에서 삶과 죽음의 기로가 엇갈렸지요. 이 동네를 내리 깔고 있는 죽음의 적막, 그 실체를 알고 나자 엄습하는 것은 공포였습니다. 그 순간, 살고 싶으면 멀리 도망치라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든 말든 맨살이 터져 피가 배어나는 것도 모르고, 오직 죽음의 영역을 벗어나야겠다는 일념으로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먼 언덕바지에 있는 느티나무 밑에 기대어 한숨을 돌렸을 때, 공포와 피곤의 극에 달한 동욱이는 비를 맞으면서도 그냥 깊은 잠에 떨어지고 말았지요.
‘호열자(虎列刺)’라는 말은 본시 콜레라(Cholera)의 음역에서 생겨난 말이에요. 끝 글자가 원래는 ‘호열랄(虎列剌)’인데 ‘어그러질 랄[剌]’과 ‘찌를 자[刺]’가 너무도 비슷하게 생겨서 그만 ‘호열랄’이 ‘호열자’
로 와전되고 말았지요. 중국에서는 보통 ‘虎列拉(hu-lieh-la)’로 쓰죠. 19세기 세계 최대의 전염병이었던 콜레라(호열자)가 우리나라에 대규모로 상륙한 것은 순조 21년 신사(辛巳, 1821) 때였습니다. 이때만 해도 콜레라라는 이름은 없었고, 『실록』 기사를 보면 ‘괴질(怪疾), 윤질(輪疾), 윤행괴질(輪行怪疾), 려질(沴疾), 괴려(乖沴), 습온(濕瘟)’ 등의 표현이 쓰였습니다. 의가들도 헌종 때는 ‘마각온(麻脚瘟)’, 고종 때는 ‘서습곽란(暑濕霍亂), 윤증곽란(輪症霍亂)’이라는 병명을 썼지 콜레라라는 이름은 쓰지 않았습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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