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비평가의 세 가지 자격
홍만종은 십대 시절부터 시학에 관심을 갖고 오래도록 공부하여 안목을 키웠노라고 스스로 밝혔다. 그만큼 비평에 남다른 열정과 전문성을 갖추었고, 노년에 이르기까지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젊은 시절에 지은 첫 번째 저술부터 전문 비평가로서 갖추어야 할 자격을 논하고 있다. 비평가의 자격으로 그가 내세운 조건을 간추려 살펴보면 대략 다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시를 정밀하게 읽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자료의 수집과 독서가 그 기초이다. 『순오지』에는 그가 파악한 문집 목록이 제시되어 있는데 그가 수집하고자 한 문헌의 방대한 수량을 보여주고 있다. 『소화시평』 서문에서 “위로는 태사(太師, 기자箕子)로부터 아래로는 최근의 시에 이르기까지 무릇 우리나라에서 시라고 칭해지는 것이면 널리 구하고 광범위하게 모았다. 이를 시장에서 사들이고, 다른 사람에게 빌리는 일을 많은 세월에 걸쳐 하고 보니 책이 모두 내 서가의 물건이 되었다[上自太師, 下逮近時, 凡吾東方所稱詩者, 無不博求而廣裒, 購之市, 借之人, 如是者積歲月, 而悉爲吾架上有矣.]”라고 밝힌 것처럼 비평의 기초로서 문헌의 확보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두 번째로는 시의 텍스트를 엄밀하게 고증하는 문제를 중시하였다. 그는 텍스트 비평의 충실한 기초 위에서 작품을 비평하는 자세를 강조하였다. 실제로 대체로 신뢰할 만한 텍스트를 제시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의 소화시평」에는 작자를 잘못 제시하거나 작품을 수록한 근거를 찾기 힘든 사례들이 얼마간 나오지만, 그렇다 해도 고증과 교감을 치밀하게 하려 한 자세를 인정할 만하다.
세 번째로 비평가에게 높은 수준의 안목과 엄정한 태도를 요구하였다. 그는 문장을 다루는 일은 직업 가운데 가장 정밀한 것이라서 “마음이 거칠고 덤벙대는 사람이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蓋非麤心大膽之所可易言].” (『시화총림」, 「증정」 제9칙)라 말하고, 『순오지』에서 비평가에게 요구되는 식견(識見)과 학력(學力)과 공정(功程)의 세 가지 자격을 제시하였다. 스승으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식견을 가질 수 없고, 옛것에 해박하지 않으면 학력을 얻을 수 없으며, 부단히 익히지 않으면 공정을 지닐 수 없다고 설명하였다. 이 세 가지 자격을 갖추지 않고서는 깊이 있는 비평의 수준에 도달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비평의 어려움과 비평가의 위의에 대한 그의 태도는 단호하다.
홍만종은 전문 비평가로서 능력을 『소화시평』에서 분명하게 보여 주었고, 그 뒤 2종의 후속작에도 함께 발휘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가 소화시평』 이래로 자신의 비평서에 시화(詩話)라는 명칭을 붙이지 않고 시평(詩評)이라는 명칭을 붙였다는 것이다. 이 명칭은 우연한 작명이 아니라 저자의 의도가 명확하게 담겨 있다. 시화가 시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뜻한다면, 시평은 시를 미적으로 평가하는 비평가의 비평적 성찰이 담긴 저술을 표방한다. 시평은 틀림없이 시화의 일부이지만 시평이라 표방한 것은 평가한다는 비평 행위에 큰 가치를 부여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개념이다. 그는 그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서 자신을 전문적 비평가로 규정하여 조선 한시에 대한 비평적 성찰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였다. 한가로운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資閒談] 시화나 창작의 지침서 구실을 하는 시화가 일반화된 현실과 의도적으로 차별화한 것이다. 그처럼 그의 시평 3부작은 한시의 역사적 이해를 기초로 하여 엄격한 비평적 행위가 가해진 저술이다.
인용
1. 가치
3. 홍만종의 시화집들 특징
4. 성격
5. 비평가의 세 가지 자격
6. 품평용어
7. 사본의 문제점
8. 텍스트 비평과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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