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세월 돌고 돌아 소화시평을 짓게 되다
소화시평서(小華詩評序)
홍만종(洪萬鍾)
중국에서의 시 평론집들은 엄정한 잣대로 했었다.
昔敖陶孫評漢ㆍ魏以下諸詩, 王世貞評皇明百家詩, 皆善惡直書, 與奪互見, 凛然有華袞斧鉞之榮辱.
嗚呼! 評詩之難尙矣. 評其所難評, 而使夫後學知所取舍, 則非具別樣眼孔能之乎?
시를 좋아해 많은 시집들을 모으다
余自髫齔有志于詩, 嘗見二公所評, 欣然慕之. 上自太師, 下逮近時, 凡吾東方所稱詩者, 無不博求而廣裒, 購之市, 借之人, 如是者積歲月, 而悉爲吾架上有矣.
자질이 부족해 스스로의 평론에 만족치 못하다
顧才質卑下, 學力魯莾, 其於立意之淺深, 造語之工拙, 格律之淸濁, 昧昧焉不得窺其藩籬, 闖其閫域. 每對人論詩, 或混淄澠, 以是有慊于心.
시에 마음 두고 읽다 보니 깨쳐져 짓게 되다
自遘大病以來, 憒憒焉筌蹄於文宇, 向所謂博求而廣裒者, 亦歸之束閣.
然藥餌之暇, 捨此無所用心. 故頗復收拾前見, 反復諷詠, 先覯立意之所在, 次察造語之如何, 終又協之以格律, 而後作者之精粗眞贗, 似若有會于吾心.
若是者又有年, 而淺者深者工者拙者淸者濁者, 如易牙之於味, 師曠之於聲, 了了然白黑分矣, 此『小華詩評』之所以作者也.
抑不知吾所謂淺者果淺, 深者果深, 而工拙淸濁不失其則, 能如敖ㆍ王二公之見重後學否耶?
이 책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或曰: “子之書善矣. 然吾東方以詩鳴者何限, 而今子所評若是之略, 奚哉?”
余曰: “不然. 桂林之樹, 非斧斤所盡; 渤海之鱗, 非網罟所窮, 百代風雅, 豈隻手所能盡收哉?
且余此書, 本爲取正於眞知者耳. 若夫兼收竝錄, 細大不遺, 採詩者之職, 余曷敢, 余曷敢!” 遂爲之序.
乙卯八月日豊山後人洪萬宗于海書.
해석
중국에서의 시 평론집들은 엄정한 잣대로 했었다.
昔敖陶孫評漢ㆍ魏以下諸詩,
옛적에 오도손은 한나라와 위나라 이후의 모든 시를 평론했고
王世貞評皇明百家詩,
왕세정은 명나라 시인들의 시를 평론했으니
皆善惡直書, 與奪互見,
모두 좋고 나쁨에 직필했고 부여해주거나 빼앗는 것을 서로 드러내
凛然有華袞斧鉞之榮辱.
엄정하게 빛나게 해주거나 비판하는 영애로움과 욕됨이 있었던 것이다.
嗚呼! 評詩之難尙矣.
아! 시를 평론하기의 어려움이 오래되었구나.
評其所難評, 而使夫後學知所取舍,
평론하기 어려운 것들을 평론하여 저 후학들에게 취사할 것을 알게 하려면
則非具別樣眼孔能之乎?
별도의 태도와 안목을 갖추지 않고서 그걸 할 수 있겠는가?
시를 좋아해 많은 시집들을 모으다
나는 어려서부터 시에 뜻이 있어 일찍이 오도손과 왕세정 두 분이 평론한 것을 보고서
欣然慕之.
신나서 그것을 좋아했다.
上自太師, 下逮近時,
위로 기자(箕子)의 「맥수가(麥秀歌)」로부터 아래로 최근의 시에 이르기까지
凡吾東方所稱詩者, 無不博求而廣裒,
대체로 우리 동방에서 시라고 말해지는 것들을 널리 구하고 널리 모으지 않음이 없어
購之市, 借之人,
저자에서 사기도 하고 사람에게 빌리기도 했으니
如是者積歲月, 而悉爲吾架上有矣.
이와 같이 한지 세월이 쌓여 모두 내 서가 위의 소유물이 되었다.
자질이 부족해 스스로의 평론에 만족치 못하다
顧才質卑下, 學力魯莾,
돌이켜보면 나의 재질은 낮고도 낮으며 학력은 노둔하고 부족하여
其於立意之淺深, 造語之工拙,
그 뜻을 세움의 깊음과 옅음, 조어함에 기교 있음과 졸렬함,
格律之淸濁,
격률의 맑음과 혼탁함에 있어서는
昧昧焉不得窺其藩籬, 闖其閫域.
안목이 어둡디 어두워 울타리도 엿보거나 깊은 경지를 살짝 볼 수도 없었다.
每對人論詩, 或混淄澠,
매번 사람을 대하고 시를 논의할 때마다 간혹 서로 다른 시의 맛이 섞여 있어
以是有慊于心.
이에 마음에 차지 못함이 있었다.
시에 마음 두고 읽다 보니 깨쳐져 짓게 되다
自遘大病以來, 憒憒焉筌蹄於文宇,
큰 병을 앓은 이후로부터 어수선해져 문자에 걸려 들까봐
向所謂博求而廣裒者, 亦歸之束閣.
접때에 말했던 널리 구하고 널리 모은 책들을 또한 돌려보내 장서각에 가둬뒀다.
然藥餌之暇, 捨此無所用心.
그러나 약물을 먹는 겨를에 시를 버리고선 마음을 쓸 곳이 없었다.
故頗復收拾前見, 反復諷詠,
그래서 매우 다시 전에 보던 걸 수습해 반복해서 읊어대니
先覯立意之所在, 次察造語之如何,
처음엔 뜻을 세움이 있는 곳을 보고 다음엔 조어가 어때야 하는지 살폈으며
終又協之以格律, 而後作者之精粗眞贗,
끝엔 또한 격률에 화합한 이후에 지은 시 작자의 정밀하거나 거침, 참과 거짓이
似若有會于吾心.
마치 내 마음에 이해됨이 있는 듯했다.
若是者又有年,
이와 같이하길 또한 여러 해 하니
而淺者深者工者拙者淸者濁者,
옅은 작품과 깊은 작품, 좋은 작품과 못난 작품, 맑은 작품과 혼탁한 작품이
如易牙之於味, 師曠之於聲,
요리사 역아가 맛에 있어서와 연주가 사광이 소리에 있어서와 같아져
了了然白黑分矣,
훤하게 흑백이 분명해졌으니
此『小華詩評』之所以作者也.
이것이 『소화시평』이 지어진 이유이다.
抑不知吾所謂淺者果淺, 深者果深,
그렇지만 내가 말한 얕은 작품이란 게 과연 얕은지, 깊은 작품이란 게 과연 깊은지 알지 못하겠고
而工拙淸濁不失其則,
뛰어남과 졸렬함, 맑음과 혼탁함이 그 법칙을 잃지 않아
能如敖ㆍ王二公之見重後學否耶?
오도손과 왕세정 두 분이 후학들에게 존중받는 것처럼 될 수 있을까?
이 책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或曰: “子之書善矣.
혹자는 말한다. “자네의 책은 좋네.
然吾東方以詩鳴者何限,
그러나 우리 동방에서 시로 세상에 이름 난 사람은 어떻게 한계 지었는가.
而今子所評若是之略, 奚哉?”
이제 그대가 평론한 것이 이와 같이 소략하기만 하니 어째서인가?”
余曰: “不然.
내가 말했다. “그렇지 않네.
桂林之樹, 非斧斤所盡;
계림의 나무는 도끼 때문에 다 없어지지 않고
渤海之鱗, 非網罟所窮,
발해의 기린도 그물 때문에 사라지지 않으니
百代風雅, 豈隻手所能盡收哉?
100대의 풍아가 어찌 한 쪽 손에 다 수습될 수 있겠는가.
且余此書, 本爲取正於眞知者耳.
또 나의 이 책은 본래 참된 앎의 사람들에게 교정될 뿐이지.
若夫兼收竝錄, 細大不遺,
겸하여 수록하고 아울러 기록하여 크고 작음도 버리지 않아
採詩者之職, 余曷敢, 余曷敢!”
시를 모으는 직분을 내가 어찌 감당하겠는가. 감당하겠는가.”
遂爲之序.
마침내 서문을 지었다.
乙卯八月日豊山後人洪萬宗于海書.
을묘(1675)년 8월 모일 풍산후인 우해 홍만종이 쓰다.
인용
'문집 > 소화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화시평 상권 - 18. 통일신라의 걸출한 시인, 최치원과 박인량 (0) | 2021.10.24 |
---|---|
소화시평 상권 - 16. 돌연히 우뚝 선 최치원 (0) | 2021.10.24 |
소화시평, 소화시평서 - 3. 소화시평의 특징과 가치 (0) | 2021.10.24 |
소화시평, 소화시평서 - 2. 시를 꿰뚫었고 성당풍 시를 짓는 우해가 지은 평론집 (0) | 2021.10.23 |
소화시평, 소화시평서 - 1. 태현경의 가치를 지닌 소화시평은 훗날 칭송받으리 (0) | 2021.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