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인의 등장
오리엔트 세계가 산고를 치를 무렵,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세력 판도에는 새로운 변화가 발생했다. 인도·유럽어족의 국가들이 새로 생겨난 것이다【원래 민족 구분은 혈통이 아니라 언어를 기준으로 한다(최근 유전학의 발달로 고대 민족들의 혈통을 추적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충분치 않다). 그러므로 셈족과 인도유럽어족이라는 명칭은 언어의 계통 분류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 하위 구분으로 고대사에 등장하는 여러 민족 이름들은 대부분 지역의 이름에서 나온 것들이다】. 당시 이 일대의 여러 나라는 특별히 동질적인 민족의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으나 기본적으로는 셈족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런 판도에 느닷없이 등장한 인도ㆍ유럽어족은 과연 어디서 온 걸까?
그 해답은 인도의 초기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기원전 3000년경 찬란한 인더스 문명을 이루었던 인도의 원주민 드라비다족은 기원전 16세기부터 북쪽에서 철기를 사용하는 강력한 부족의 침략을 받아 손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정복당했다. 그들은 바로 중앙아시아를 고향으로 하는 유목민족인 인도ㆍ유럽어족의 아리아인이었다.
기원전 18세기~기원전 17세기부터 아리아인들은 인구가 증가하고 농경이 발전함으로써 태고 때부터의 유목 생활을 청산하고 민족대이동을 시작했다. 북쪽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추운 곳이었고, 동쪽은 ‘세계의 지붕’인 파미르 고원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들이 갈 곳은 남쪽과 서쪽밖에 없었다.
남쪽으로 간 일파는 인도를 정복하고 그대로 눌러앉았다(『종횡무진 동양사』, 66~68쪽 참조). 반면 서쪽으로 길을 잡은 무리는 예상보다 훨씬 멀리까지 가야 했다. 남서쪽은 강력한 오리엔트 문명권이 태동하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인더스 문명 이래 쇠퇴를 거듭한 인도의 드라비다족에 비하면 셈족 문화권은 아리아인으로서 범접할 수 없는 선진 문화였다. 서쪽으로 간 아리아인은 소아시아를 거쳐 멀리 유럽 중심부에까지 이르렀다. 원래 중앙아시아 출신인 아리아인을 오늘날 유럽인의 조상으로 여기는 것은 그 때문이다(훗날 유럽 고대사에 등장하는 게르만족도 이들의 후손이었을 것이다).
아리아인의 이동은 계획된 게 아니었고, 계획할 만한 지배 세력도 없었다. 그러므로 일사불란하게 이동한 게 아니라 그저 수백년에 걸쳐 되는 대로 이동했을 뿐이다. 이동하는 도중에 부족이나 가족 단위로 대열에서 이탈해 여기저기에 눌러앉은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폭은 좁지만 바다를 바로 앞에 둔 소아시아 서쪽에 이르렀을 때는 이탈하는 규모가 더욱 크지 않았을까? 아리아인은 소아시아에서 여러 부족이 이동에서 뭉텅이로 빠져나가고 나머지가 바다 건너 유럽으로 갔을 것이다.
소아시아의 아나톨리아 고원이라면 맨 처음에 등장한 ‘산 사람들’의 고향이 아닌가? 그러나 알맹이가 빠져나간 ‘문명의 고향’은 이제 아무런 힘이 없었다. 기원전 17세기 무렵 아리아인은 아직까지 고원지대에 남아 있던 부족들을 손쉽게 정복하고 국가를 이루어 남쪽의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북부로 진출했다. 북쪽으로 밀고 올라오는 이집트 신왕국의 도전에 맞선 것은 바로 이들이었다.
기원전 16세기~기원전 15세기경 아리아인의 후예답게 사납고 호전적인 후르리인은 메소포타미아 북부에 미탄니라는 국가를 세웠다. 미탄니는 군사력이 강한 나라였으나 당시 단일국가로서는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이집트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더욱이 미탄니의 걱정거리는 이집트의 침공보다 오히려 북쪽 소아시아에서 더욱 강성한 국가로 성장한 히타이트였다【아리아인의 후예답게 히타이트는 오리엔트에서 가장 먼저 철기 제조법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히타이트는 그 방법을 비밀로하고 다른 나라에 전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오리엔트에서 철기 사용이 일반화되는 것은 히타이트가 멸망하고 난 기원전 12세기부터의 일이다. 히타이트에 관해서는 20세기에 수도였던 보아즈쾨이가 발굴되면서 그 역사가 상세히 알려졌다】. 미탄니는 등 뒤의 히타이트를 견제하기 위해 눈앞의 이집트와 굴욕적인 타협을 맺고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의 지배권을 넘겨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최악의 선택이었다. 그것을 계기로 미탄니는 쇠퇴를 거듭해 결국 히타이트의 속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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