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강에 달이 비치다
이어지는 글에서 주희의 설명을 들어보도록 하지요.
이 세계는 ‘만물을 낳는 것[生物]’을 마음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사람과 사물들은 각각 ‘세계의 마음[天地之心]’을 얻어서 그것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마음의 덕을 말하면, 비록 그것이 모든 것을 포괄해서 모두 다 갖추고 있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인(仁)일 따름이다. (…) 세계의 마음이 운행될 때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순서가 있지만, 봄의 생성하는 기(氣)는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모두 갖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사람 마음의 경우, 덕에는 인의예지(仁義禮智) 네 가지가 있지만, 인이 네 가지에 모두 작용하고 있고, 마음이 드러날 때에는 측은지심, 사양지심, 수오지심, 시비지심 네 가지 감정이 있지만 측은지심이 네 가지를 모두 관통하고 있다. 『주희집』 「인설」
天地以生物爲心者也. 而人物之生又各得夫天地之心以爲心者也. 故語心之德, 雖其總攝貫通, 無所不備, 然一言以蔽之, 則曰仁而已矣. (…) 其運行焉則爲春夏秋冬之序而春生之氣無所不通. 故人之爲心, 其德亦有四曰仁義禮智而仁無不包, 其發用焉則爲愛恭宜別之情, 而惻隱之心無所不貫.
천지이생물위심자야. 이인물지생우각득부천지지심이위심자야. 고어심지덕, 수기총섭관통, 무소불비, 연일언이폐지, 즉왈인이이의. (…) 기운행언즉위춘하추동지서이춘생지기무소불통. 고인지위심, 기덕역유사왈인의예지이인무불포, 기발용언즉위애공의별지정, 이측은지심무소불관.
주희는 세계가 생겨나기 전에 이미 하나의 절대적인 세계정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세계의 마음, 즉 천지지심(天地之心)이라는 것이지요. 이 천지지심이 주희가 말한 초월적인 이(理)와 같은 것입니다. 주희는 천지지심의 목적은 만물을 생성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에 따르면 천지지심에 있었기에 만물이 세상에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태어난 만물은 모두 천지지심을 나누어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도 역시 주희가 말한 월인천강(月印千江)의 비유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개별자들 모두 천지지심을 자기 것으로 삼아 그와 똑같은 마음을 갖게 되니까요. 뿐만 아니라 개별자의 마음도 천지지심과 마찬가지로 만물을 ‘생성[生]’하는 것을 자신의 목적으로 삼게 되지요. 다양한 만물이 서로 짝을 이루어 끊임없이 후손을 낳는 과정을 주희는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개체 속에 만물을 낳으려는 천지지심이 그대로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이렇듯 주희는 초월적으로 있든 개체에 내재해 있는 관계없이 천지지심으로서의 이(理)의 성격을 ‘인(仁)’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공자나 맹자와는 달리 주희에게서 ‘인’이란 단순한 인간의 도덕적 덕목이 아니라, 우주적인 차원의 이치로 승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그 거대한 형이상학의 구조를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지요. 천지지심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실현됩니다. 이 네 계절 중 봄은 매우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천지지심이 기본적으로 생성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지요. 봄에 온갖 생물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장면을 연상해보세요. 주희는 봄이 하나의 계절이지만 동시에 나머지 세 계절들의 기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의 생각은 기본적으로 사계절의 변화에 대한 관찰에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봄이 지닌 이미지, 즉 ‘따뜻함’ ‘태어남’ 등의 이미지와 가장 먼 계절은 바로 겨울입니다. 그러나 겨울의 혹독한 추위는 새로운 탄생을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겨울 안에도 봄의 계기가 이미 존재한다고 주희가 생각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지요.
봄, 여름, 가을, 겨울과 유사한 구조로 주희는 인간의 본성을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네 가지 요소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주희에 따르면, 세계의 구조는 인간의 구조 속에서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인의예지’ 중 ‘인’은 스스로 인간의 본성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이면서 동시에 다른 세 가지 요소, 즉 ‘의예지’를 기초하는 것으로 사유됩니다. 그리고 이런 구성은 ‘인의예지’라는 인간 본성의 네 가지 요소가 실현된 감정[情]인 측은지심, 사양지심, 수오지심, 시비지심에서도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다시 말해, 측은지심은 하나의 마음으로 드러나지만 동시에 다른 세 가지 마음에 기초한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시비지심을 예로 들어볼까요? 이 마음은 측은지심의 동정심과는 가장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마음입니다. 시비지심은 타인에 대해 동정심을 갖는 것과는 달리 타인의 잘잘못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엄격한 마음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주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 옳음과 그름을 따지는 마음 안에는 그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이 전제되어 있다고 본 것이지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자식이나 제자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측은지심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가, 이제 거꾸로 올라가 봅시다. 측은지심에서 인으로, 그리고 인에서 봄으로, 최종적으로 모든 것을 생성하는 천지지심으로까지 말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음 사례에 이 구조적 관계를 적용해보기로 할까요? 아이가 우물에 빠질 때 그 상황을 본 순간 우리 마음에는 측은지심이 발생합니다. 이 측은지심에서 주희는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본성, 즉 내재적 이(理)가 존재한다는 것을 직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재적 이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물이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로써 주희는 바로 천 개의 강에 비친 달그림자를 가능하게 했던 하나의 달, 즉 초월적 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어떻게 해서 주희가 하나의 절대적인 이를 믿어 의심치 않았는지 조금 이해가 되지요? 주희는 이 절대적인 하나의 이를 다른 말로 ‘태극(太極)’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럼, 이제 주희가 어떻게 이 또는 태극을 찾아나갔는지 그 방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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