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각개약진의 시대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
17세기 초 30년 전쟁 이래 나폴레옹 전쟁에 이르기까지 200년에 걸친 전란의 시대는 유럽인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오늘날의 유럽 세계를 탄생시키는 과정이기도 했다. 진통 없이 새 생명을 얻을 수 없듯이, 유럽이 중세의 오랜 틀을 깨고 진정한 ‘르네상스’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희생이 필요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의 역사에도 고통과 고난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 시기 유럽의 진통은 유례없이 길고 고통스러웠다.
어쨌든 유럽인들은 고통의 대가를 얻었다. 이 근대 이후 유럽 세계를 휩쓴 전란의 시발점은 16세기 초 종교개혁으로 잡을 수도 있고, 17세기 초 30년 전쟁으로 잡을 수도 있다(후자의 입장을 택할 경우, 16세기의 전란은 종교전쟁이 되고 17세기부터 영토 전쟁으로 분류된다). 이 전란의 최종 마무리는 19세기 초의 나폴레옹 전쟁이 아니라 20세기 중반의 제2차 세계대전이다. 하지만 이 350년 혹은 450년에 달하는 전란기는 나폴레옹 전쟁을 전후로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19세기 초를 반환점으로 볼 수 있다. 오랜 힘겨루기 끝에 유럽 각국은 일국적으로는 국민국가를 이루었고, 국제적으로는 나름대로 서열을 지었으며, 서로 싸워봤자 득이 될 게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에서의 다툼이 일단락되었으니 다음 행보가 바깥을 향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18세기까지도 유럽 세계의 대외 진출은 꾸준히 지속되었지만 19세기부터는 전보다 규모도 커지고 참가국의 수도 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차이는 이때부터 대외 진출이 제국주의적 침략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는 점이다.
유럽이 밖으로 나가게 된 데는 정치적 요인만 작용한 게 아니었다. 통합적이던 유럽 세계의 정치가 각국별로 분해되면서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경제체제가 싹텄음은 앞에서 본 바 있다. 전란의 시대 동안 국민국가들이 형성되는 것과 동시에 각국에는 국민경제가 발달했다. 유럽은 이제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각국 별로 분권화된 것이다. 유럽 각국은 각자 자국의 경제력을 키우기 위해 현실의 전쟁에 못지않은 경제 전쟁에 돌입했으며, 앞다퉈 자본주의를 도입하고 육성하기 시작했다. 그 성과가 산업혁명이다.
산업혁명의 불씨가 처음 피어난 곳은 영국이다. 1688년 명예혁명으로 정치권력이 왕에게서 의회로 옮겨온 것은 곧 신흥 부르주아지가 권력을 장악했다는 것을 뜻했다. 사실 18세기에 영국이 유럽의 패권을 놓고 프랑스와 겨룬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정치적 변화의 덕분이었다. 법적·정치적 자유와 권력을 얻은 데다 국제적으로도 패권을 장악한 영국 부르주아지는 본격적으로 자본주의적 경제 발전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이윤의 극대화를 모토로 내걸고 효율성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제도다. 이 효율성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생산기술의 발전이다. 이와 관련해 당시 영국에서는 숱한 발명이 이루어졌는데, 여기서는 방적기 하나만 예로 들어보자. 1764년 하그리브스는 제니 방적기를 발명했고, 5년 뒤 아크라이트는 그것을 개선해 수력방적기를 개발했으며, 다시 10년 뒤 크롬프턴은 그것을 뮬 방적기로 개량했고, 1769년 카트라이트가 역직기를 발명했다. 불과 20년 만에 면화에서 실을 뽑아 옷감을 만드는 공정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생산력은 열 배 이상으로 증대했다. 더구나 그 원료인 면화는 18세기 초부터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인도에서 들여오기 시작한 것이었으니, 생산기술의 변화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실감할 수 있다.
둘째, 생산 제도의 측면이다. 자본주의 이전까지 상품이란 주로 소비와 사용을 목적으로 했고, 상품의 생산도 소비에 종속되어 있었다. 쉽게 말해 누가 의자를 필요로 하면 목수는 그것을 만들어 파는 식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생산의 개념은 처음부터 판매를 겨냥한 생산으로 바뀌었다. 목수는 이제 누가 주문하지 않아도 의자를 미리 만들어 시장에 내놓는다【이 점은 예술품에도 적용된다. 앞에서 본 것처럼(61~62쪽 참조),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 화가와 조각가, 건축가 들은 교회나 귀족의 주문을 받아 작품을 제작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의 개념이 예술에도 도입되면서 예술가들은 미리 작품을 제작한 다음 시장에 내놓게 되었다(그 덕분에 예술가들은 전보다 더 ‘내적인 동기’에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팔리는 작가’에 한하지만). 이 새로운 방식은 19세기에 화랑과 화상이라는 자본주의적 미술 시장을 낳았고, 이후에는 거꾸로 시장이 예술가들을 지배하는 현상을 유발했다】. 결국에는 누군가 그 의자를 구매해서 소비(사용)하겠지만, 소비를 위한 생산과 시장을 위한 생산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무엇보다 시장에 상품을 내놓으려면 대량생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대량생산의 필요성이 분업이라는 획기적인 생산방식을 낳았고, 자본주의적 기업이라는 획기적인 생산 단위를 만들어냈다.
생산기술의 발전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지만 생산 제도의 변화는 그렇지 않다. 효율성이라는 지고의 목표 아래 모든 노동력이 편제되면 자본과 상품의 소유주, 즉 자본가는 대만족이지만 노동력의 소유자, 즉 노동자는 불만이다. 노동자는 자신이 직접 노동력을 투입해 상품을 생산하면서도 자기 노동력의 산물을 소유하지는 못한다. 생산은 사회적이고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데 반해, 생산물의 소유는 사적이고 개인적이다. 이러한 사회적 생산과 사적 소유의 모순은 자본주의의 초창기부터 문제로 떠올랐다. 19세기에 사회주의 이념이 발생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 세대교체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게 마련이다. 공장을 이용한 대량생산 방식은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것 같았지만 그 때문에 전통적인 집 안 수공업은 사양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림은 산업혁명의 여파로 가동이 중지된 집 안 수공업장이다. 전통적인 방식으로도 질 좋은 물건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자본주의의 큰 특징은 바로 질이 아니라 양이 지배하는 시대라는 점이다.
그러나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가 한창이던 19세기 초 영국에 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시장의 문제였다. 생산은 비약적으로 성장하는데 시장은 한계가 있다. 영국의 자본가들은 대량생산된 상품을 구매해줄 소비 인구가 필요했다.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만큼 국내의 인구만으로는 구매를 전부 충당할 수 없었고, 유럽 각국은 저마다 보호관세와 무역 장벽을 높이 세워 영국의 경제 침략에 대항하고 있었다.
해외 식민지의 새로운 ‘용도’가 발견된 것은 그때였다. 그전까지 식민지는 주로 물품의 수입처라는 의미가 강했다. 예를 들어 영국은 인도 식민지를 향료와 차 같은 소비품과 면화를 비롯한 공업 원료를 공급하는 용도로 이용했다. 그러나 시장에 눈뜨고 보니 인도라는 식민지가 전혀 다르게 보였다. 차와 향료, 면화를 생산하는 인도 농민들에게 영국의 공업 상품을 판매하면 어떨까? 나아가 인도만이 아니라 모든 해외 식민지를 시장으로 이용한다면 어떨까?
산업혁명이 자본주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진짜 혁명적인 것은 산업혁명보다도 그런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제 해외 식민지는 원료 공급지만이 아니라 해외시장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 나아가 식민지 개척은 국내의 정치적·경제적 모순을 완화하고 해소하는 통로도 될 수 있다. 이런 영국의 발상은 금세 다른 나라들로 확산되었다.
새로운 진출의 이유와 방식이 생겨났다. 마침 오랜 전란기가 끝났으니 유럽 각국은 바깥으로의 진출이 더욱더 절실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유럽 내에 새로운 전후 질서를 수립해야 했다. 전란의 시대가 길었던 만큼 그 마무리도 쉽지 않아 이 기간은 예상외로 19세기 중반까지 끌게 된다.
▲ 산업화와 그 그늘 하그리브스의 제니 방적기(아래쪽)는 방적 기술을 획기적으로 발달시켜 영국의 산업혁명을 선도했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혁명은 화려한 산업화의 빛만큼 깊고 어두운 그늘을 만들었다. 런던에 산업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대규모 빈민촌(위쪽)이 생겨난 것이다. 앞서의 인클로저 운동에서와 같이 역사에서 진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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