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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한글역주, 양혜왕장구 하 - 1. 백성과 함께 즐겨라 본문

고전/맹자

맹자한글역주, 양혜왕장구 하 - 1. 백성과 함께 즐겨라

건방진방랑자 2022. 12. 16.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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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혜왕장구(梁惠王章句) ()

 

 

1. 백성과 함께 즐겨라

 

 

1b-1. 제선왕의 신하인 장포(莊暴)라는 자가 와서 맹자를 뵈옵고 말하였다: “최근 저 장포는 임금님께 불리어 가서 뵌 적이 있습니다. 그때 왕께서 저 포()에게 음악을 매우 좋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저는 무어라 대답할 길이 없었습니다.”
1b-1. 莊暴見孟子, : “暴見於王, 王語暴以好樂, 暴未有以對也.”
 
그는 이어 말하였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게 정말 어떤 걸까요? 좋은 겁니까, 나쁜 겁니까?”
: “好樂何如?”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왕께서 음악을 심히 좋아하신다면 제나라는 이상적으로 다스려질 희망이 보이는군요.”
孟子曰: “王之好樂甚, 則齊國其庶幾乎!”
 
며칠 지나고 나서, 맹자는 제선왕을 알현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말씀하시었다: “왕께서 일찍이 장 선생[莊子]장포를 높이어 부른 말인데 이것은 매우 어색하다. 왕 앞에서는 그 신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예의다. 높이어 장 선생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기록자의 착각에서 온 오류이다. 염약거(閻若璩)의 설인데 동의한다에게 음악을 좋아하신다고 말씀하셨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나이까?”
他日, 見於王曰: “王嘗語莊子以好樂, 有諸?”
 
왕은 그 말을 듣자 당혹하여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나는 선왕(先王)의 제례음악과 같은 고전음악을 좋아할 수 있는 능력은 없소. 단지 요즈음 세속에서 유행하는 자유로운 대중음악을 좋아할 뿐이외다.”
王變乎色, : “寡人非能好先王之樂也, 直好世俗之樂耳.”
 
이에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왕께서 음악을 심히 좋아하신다면, 실로 제나라는 이상적으로 다스려질 희망이 보이는군요. 왕께서 말씀하시는 대중음악이 곧 고전음악입니다. 음악에는 정악(正樂)과 속악(俗樂)의 구분이 없습니다.” 말한다: “거참 듣기 좋은 말이구려. 뭔 말인지 좀더 자세히 그 까닭을 설명해줄 수 있겠소?”
: “王之好樂甚, 則齊其庶幾乎! 今之樂猶古之樂也.” : “可得聞與?”
 
말씀하신다: “음악의 핵심은 정ㆍ속이나 고금에 있질 않습니다. 여쭙겠습니다. 나 홀로 음악을 즐기는 것과 타인과 더불어 음악을 즐기는 것, 이 중 어느 것이 더 즐겁습니까?” 말한다: “그야 물론 타인과 더불어 즐기는 것이 더 즐겁지요.”
: “獨樂樂, 與人樂樂, 孰樂?” : “不若與人.”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소수의 사람과 더불어 음악을 즐기는 것과 다중의 사람들과 더불어 음악을 즐기는 것, 이 중 어느 것이 더 즐겁습니까?” 말한다: “그야 물론 많은 사람과 더불어 음악을 즐기는 것이 더 즐겁지요.”
: “與少樂樂, 與衆樂樂, 孰樂?” : “不若與衆.”
 
그럼 이제 제가 임금님을 위하여 음악에 관하여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지금 바로 여기서 왕께서 음악을 연주하신다고 가정해봅시다. 백성들은 왕의 편종편경 소리, 타악기 소리, 관악기 소리, 생황류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며, 이때 이들은 모두 골치 아파하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서로 고하여 말하죠: ‘우리 임금님이 음악연주를 좋아하시니, 그것이 어찌하여 우리를 이런 곤궁에 빠지게 하느뇨? 아버지와 아들 이 서로를 볼 수가 없고, 형제와 처자가 다 흩어져버리고 마는구나!’ 또 지금 여기서 왕께서 말달리며 사냥을 하신다고 해봅시다. 백성들은 임금님의 수레와 말의 소리를 들을 것이고 찬란한 깃발과 행렬의 장을 쳐다볼 것입니다. 이때 이들은 모두 골치아파하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서로 고하여 말할 것입니다: ‘우리 임금님이 사냥을 좋아하시니, 그것이 어찌하여 우리를 이런 곤궁에 빠지게 하느뇨?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볼 수가 없고, 형제와 처자가 다 흩어져버리고 마는구나!’ 왜 이런 소리가 백성의 입에서 나오겠습니까? 이것은 딴 이유가 아니죠. 바로 백성들과 더불어 즐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臣請爲王言樂: 今王鼓樂於此, 百姓聞王鐘鼓之聲, 管籥之音, 擧疾首蹙頞而相告曰: ‘吾王之好鼓樂, 夫何使我至於此極也? 父子不相見, 兄弟妻子離散.’
 
지금 왕께서 여기서 음악을 연주하시면, 백성들이 편종편경 소리, 타악기 소리, 관악기 소리, 생황류의 소리를 듣고 모두 흔연히 얼 굴에 희색을 띠고 서로 고하여 말합니다: ‘우리 임금님께서 질병이 없으시고 건강하신 모양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저토록 아름답게 음악을 연주하실 수 있겠냐?’
今王鼓樂於此, 百姓聞王鐘鼓之聲, 管籥之音, 擧欣欣然有喜色而相告曰: ‘吾王庶幾無疾病與? 何以能鼓樂也?’
 
또 지금 여기서 왕께서 사냥을 하신다고 해봅시다. 백성들은 임금님의 수레와 말의 소리를 들을 것이고 찬란한 깃발과 행렬의장을 쳐다볼 것입니다. 이때 이들은 모두 흔연히 얼굴에 희색을 띠고 서로 고하여 말합니다: ‘우리 임금님께서 질병이 없으시고 건강하신 모양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저토록 힘차게 말 을 달리실 수 있겠냐?’ 왜 이런 소리가 백성의 입에서 나오겠습니까? 이것은 딴 이유가 아니죠. 바로 백성들과 더불어 즐기시기 때문이지요. 음악의 본질은 고전음악ㆍ대중음악의 구분에 있질 않습니다. 그 음악의 즐김을 민중과 더불어 하느냐 않느냐에 있을 뿐이올시다. 지금 왕께서 백성과 더불어 함께 즐기신다면 곧 왕도를 구현하시어 천하의 왕자가 되실 수 있습니다.”
今王田獵於此, 百姓聞王車馬之音, 見羽旄之美, 擧欣欣然有喜色而相告曰 吾王庶幾無疾病與? 何以能田獵也? 此無他, 與民同樂也. 今王與百姓同樂, 則王矣.”

 

최근 나는 유열ㆍ최성수ㆍ김동규 3인의 연말 디너쇼를 본 적이 있다. 유열과 최성수는 대중음악, 즉 유행가의 달인들이고, 김동규는 서양의 고전음악을 공부한 오페라가수(탁월한 바리톤)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 이 같이 어우러지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고 감성적인 조화가 탁월했다. 그런데 어느 음악대학 성악과 교수가 나에게 말하기를 동규가 너무 막 가.”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그대가 생각하는 음악과 동규가 생각하는 음악은 그 본질과 정의가 다르오. 그는 서양 오페라가수가 아니라, 그냥 노래부르는 것을 즐길 뿐이요. 그에게 음악이란 여민동락(與民同樂)이라오.”

 

얼마 전에 나는 일본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어느 일본 갑부의 사저에 초청받는 스케쥴이 끼어있었다. 세계적인 수장가라 하는데 어마어마한 미술품 컬렉션이 그의 사적 공간에 전시되어 있었다. 주로 서양 근대 화가. 조각가. 사진작가들의 작품이었는데 피카소ㆍ달리ㆍ고야는 물론 내가 아는 많은 작가들의 유수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웬만한 미술관을 초월하는 규모였다. 그런데 그것이 단지 한 사람의 사적인 공간이다. 그리고 그의 회사의 중역회의실 자체가 하나의 세계적 작품공간이었다. 왜 그것을 대중이 관람할 수 있는 미술관으로 만들 수가 없나?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그 작품의 소유주는 병들어 누워있었다.

 

미국 맨해튼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움(museum)엘 가면 인류역사상 모든 위대한 작품들이 다 전시되어 있는데, 그것도 공짜로 들어가볼 수 있다. 메트로에 갈 때마다 그 위대한 전시에 나는 무한한 감명을 받는다. 미국이 인류에게 가르쳐준 문화의 위대한 특질은 바로 이런 여민동락의 개방성에 있다.

 

우리나라 재벌들은 현재 돈을 버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여민동락(與民同樂)의 기쁨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돈을 버는 방식 그 자체가 인민 대중을 질수축알(疾首蹙頞)케 하는 방식으로만 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이 버는 돈은 모두 인민대중이 낸 것이다. 그들이 잘나서 긁어모았다고는 할지 모르지만 그 잘남도 결국 대부분은 국가권력과 결탁하거나 기존의 금권을 계승하여 이룩한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버는 돈의 잉여를 모두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도 결국 맹자의 사상에 의하면 혁명의 대상이 되어야 할 뿐이다.

 

우리나라 조선 초기이래 현재까지 궁중과 민간에서 연주되어오는 관 현합주곡으로서 여민락(與民樂)이라는 것이 있다. 1시간 20여분이 소요 되는 장엄한 곡인데 아마도 그 원형은 세종조에 성립한 것으로 보이나 그 후 다양한 변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물론 그 이름은 본 장의 맹자 언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맹자사상이 조선왕조에 미친 영향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인용

목차 / 맹자

전문 / 본문

중용 강의

논어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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